달빛은 늘 조용히 세상을 비추었다.
말이 없었고 표정도 없었지만 누구보다 깊고 오래 모든 걸 바라보았다.
그 빛은 거리의 돌멩이도 잊힌 벤치도 혼자 걷는 나도 고요히 감쌌다.
나는 몰랐다. 달이 나를 비추고 있었단 걸.
세상이 어두운 날, 가장 환하게 빛났던 것이 달빛이었음을.
어느 밤, 우연히 골목 끝 물웅덩이에 비친 달을 보았다.
물 위에 떠 있는 줄 알았지만 달은 하늘 위에도 내 마음속에도 있었다.
그 작고 얕은 웅덩이 속에서 달빛은 출렁였고 나도 따라 흔들렸다.
그날 이후,
나는 어디를 가도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달을 보며, 그냥 하염없이 쳐다봤다.
그저 조용히
달은 내가 가장 약한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가장 외로운 순간에도 침묵으로 곁에 있어주었다.
우리는 종종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까’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잘했는지, 얼마나 이뤘는지로 평가받는 삶 속에서
말을 꺼낼 용기도 기대할 마음도 잃곤 한다.
그럴 때, 문득 창밖 하늘을 보면 흐린 밤 사이로 떠 있는 달을 보게 된다.
달빛은 사람의 마음을 닮았다.
크게 빛나는 날도 있고 가늘게 숨어 있는 날도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늘 그 자리에 머물러,
누군가의 밤을 밝혀준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말이 없어도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때로는 수천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조용한 밤을 지켜주는 달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그저 곁에 머무는 존재.
빛나지 않아도 바라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고 삶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멈춰야 한다.
잠깐이라도 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봐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그 단순하고도 깊은 믿음에서.
달은 우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을 들추지 않고 상처를 묻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물웅덩이 하나에 몸을 담그며,
우리의 마음을 받아낸다.
나도 그랬다.
수없이 울던 밤, 달은 내 창문 너머로 나를 비췄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날에도,
달은 나를 잊지 않았다.
그것은 말 없는 약속이었다.
나는 오늘도 달을 본다.
그리고 내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든다.
누군가가 다녀갈 수 있도록, 그 마음을 비출 수 있도록.
그 속에, 당신의 달이 머무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