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노래가 흐르는 골목

by 리도씨

나는 오래된 골목 앞에 멈춰 서 있었다.

한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었을 텐데, 이제는 발걸음 소리조차 드문 적막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허물어진 담벼락 위로 덩굴이 무심히 뻗어 있었고, 벽마다 남겨진 흔적은 마치 오래된 필름의 잔상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은 줄었지만, 그 골목만큼은 여전히 시간을 품은 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왔다. 오래전에 자주 흘러나오던 가요였는지, 아니면 내 기억 속에서만 울려 퍼지는 멜로디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선율은 분명히 내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이 아니었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다져진 기억의 조각들이었다. 나는 그 소리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오래 서 있었다.


골목은 좁았지만 그 안에서 펼쳐진 장면들은 한없이 넓었다. 어린 시절의 웃음소리가 벽에 새겨져 있었고, 마당에서 뛰놀던 개 짖는 소리, 이웃집 아주머니가 부르던 아이 이름, 여름날 얼음과자를 팔던 행상의 목소리까지도 그 안에 살아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소리가 한데 섞여 하나의 오래된 노래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노래는 나를 과거로 이끌었고, 나는 무심코 잊고 지냈던 내 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어릴 적의 나는 늘 이 골목에서 놀았다. 무릎이 까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래바닥을 달리던 아이였고,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 숨바꼭질을 하던 장난꾸러기였다. 세상이 내게 요구하는 것도, 내가 책임져야 할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웃음만으로도 하루가 가득 차고, 작은 꿈만으로도 내일이 기다려지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묻는 것 같았다. “넌 여전히 그 꿈을 잊지 않았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 오래 침묵하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흘려보낸다. 사람의 얼굴을 잊고, 그가 건네던 목소리를 잊는다. 손끝에 닿던 따뜻함을 놓치고, 눈빛 속에 담겼던 다정함을 흘려보낸다. 마치 세상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잊음을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골목은, 그리고 이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노래는, 그것들을 단단히 붙잡아 두고 있었다. 골목은 기억을 지키는 지하 창고 같았고, 노래는 그 안에서 꺼내어 들려주는 오래된 이야기 같았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화려한 무대 위의 순간이 아니라, 소박한 일상 속에 숨은 짧은 장면들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그 순간들이 모여 삶의 진짜 선율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오래된 노래가 주는 감동은 결코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을 조용히 두드리며, 내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 뿐이었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해간다. 사람들은 바쁘게 달려가고, 도시는 매일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래된 골목은 변하지 않았다. 변화를 거부하는 듯, 그 자리에 고요히 서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노래를 흘려보내며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 네가 잊은 것을 여기서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나는 그 목소리에 이끌려 한참을 더 걸었다.


골목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곳에서 들었던 노래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삶이 아무리 거칠게 흘러가더라도, 내 안의 순수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미소 하나를, 짧은 인사 한마디를, 사소해 보이는 친절을, 더 이상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작은 것들이 결국은 누군가의 노래가 되고, 내 삶의 노래가 되리라는 것을 나는 이제 믿게 되었다.


오래된 노래는 외부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선율이었다. 사랑과 그리움이 빚어낸 화음이었고, 기쁨과 슬픔이 엮어낸 리듬이었다. 그 노래는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나는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만, 사실 단 한순간도 그 노래가 내 곁을 떠난 적은 없었다.


나는 알았다. 오래된 노래가 흐르는 골목은 결국 내 마음의 고향이라는 것을. 삶에 지쳐 길을 잃을 때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쉼터라는 것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등불이라는 것을. 나는 앞으로도 그 노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 노래는 내게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또 다른 이의 마음에도 울려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래된 노래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선율이기 때문이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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