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피운 정원

by 리도씨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누구에게나 다르게 피어난다.

어떤 이는 빠르게 흘러가고, 어떤 이는 느리게 스며든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견디며, 때로는 하루를 놓친다. 나는 가끔 시간을 정원에 비유하곤 했다. 계절마다 다른 색을 품고, 햇살과 비, 바람과 눈 속에서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정원. 그리고 그 정원에는, 우리가 심어놓은 마음들이 자라난다.


나는 한때 시간을 쫓아 살았다.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더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피어나지도 않은 꽃을 억지로 피게 하려 했고, 아직 열매를 맺지 않은 가지를 흔들어 답을 얻으려 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황폐해지고, 시간은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언젠가 알았다. 정원은 서두른다고 더 빨리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도 그렇다는 것을.


내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집앞에 있는 정원을 가꾸시는걸 좋아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흙을 만지며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자라는 시간이 있어. 그걸 기다려야 진짜 예쁜 정원이 되지.”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내 인생을 오래도록 비춰줄 등불이 될 거라는 걸.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사람도 각자의 계절과 속도가 있다는 걸.


삶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기다리는 시간,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그 기다림 속에서 관계가 자라고, 감정이 깊어지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잊는다. 모든 것은 제때에 온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제때는 내가 정한 시간이 아니라, 삶이 정한 시간이라는 것을.


한번은 너무 힘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집 앞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불고, 햇살이 내리고,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다녔다. 그 평범한 풍경 속에서 문득 마음이 풀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내 마음에도 조금씩 새싹 같은 희망이 피어났다. 기다림은 때로 이렇게 나를 다시 살게 한다.


정원은 가꿀수록 달라진다.

물을 주고, 햇빛을 맞게 하고, 가끔은 가지를 쳐내야 한다. 우리의 삶도 같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고, 마음에 햇살을 들이고, 필요 없는 걱정과 불안을 조금씩 덜어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꽃이 피어난다. 나는 이제야 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내가 애써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내가 묵묵히 기다려온 시간 끝에 찾아온다는 것을.


오늘 하루도 나는 내 마음의 정원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다.

그것은 친절일 수도 있고, 용서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씨앗이 내일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오늘 내가 그 씨앗을 심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피운 정원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꽃이 만발하고, 어떤 이는 나무가 울창하며, 어떤 이는 아직 빈 흙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뿌리가 자라고 있다. 보이지 않을 뿐, 모든 것은 자라고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을 쫓지 않는다.

그저 오늘을 가꾸며 산다. 그리고 언젠가 내 정원에 꽃이 피면, 나는 조용히 미소 지을 것이다. 그 꽃은 나만의 속도로 피어난 것이기에 더 소중할 테니까.


삶은 기다림과 돌봄, 그리고 수많은 오늘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당신의 정원에도 지금 무언가 자라고 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 오늘을 잘 돌보면, 내일은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시간은 우리를 시험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흐르며, 우리가 피어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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