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살만해졌고,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눈물 흘리며 보내는 날보다 어쨌든 하루를 채워나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나 싶었다.
새로 처방 받은 약이 내 머릿속을 송두리째 조여 왔다. 그런데 약 하나가, 아니, 두통 하나가 그 모든 착각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아스피린을 복용할 때는 없었던 두통이었는데, 아스피린 부작용으로 약을 끊은지 1년 만에 새로 처방받은 혈전약은 어마무시한 신경성 두통이 부작용을 동반했다. 밤엔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아팠고, 적응하는데 2주는 걸린다는 교수님의 말대로 머리가 아플 땐 타이레놀을 먹으며 견뎠다. 하지만 점점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결국 그 고통은 윤하에게로 번지고 말았다. 평소라면 “윤하야, 그만하자~”라며 웃으며 넘길 말도 “그만 하랬지?!”로 되돌아왔다. 아, 내가 왜 이렇게 말했지. 아, 또 이러고 말았네. 머리를 감싸쥐고 후회하며 혼잣말을 되뇌는 동안, 윤하의 얼굴에는 금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윤하 놀이치료 선생님도 이제 윤하는 치료센터에 오지 않아도 할 만큼 안정적이 되어 가고 있었는데, 약 한 알로 순식간에 모든 일상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나도 힘든데, 나답지 못한 내 모습까지 견디고 있었다는 걸.
사람들은 내가 병원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듣고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졌다고 하셔?”
“좀 나아졌어?”
이건 너무도 익숙한 대화의 흐름이라, 나는 “응, 괜찮아”라고 기계처럼 대답한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누가 내 말의 진심을 묻기라도 하면 금방 울어버릴 것 같아서, “별일 아니야”라는 말로 스스로의 감정을 묻는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또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어쩌면 나는 새로 처방 받은 약때문이 아니라, 1년간 아무런 문제 없이 살고 있다가 의사의 "뇌경색이 있었네요. 약을 다시 복용해야 할 것 같아요." 이 한마디가 "그래. 난 수술도 가능한 케이스고, TV에 나오는 사람들만큼은 아니니까. 갑자기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되는 그런 상황은 아니니까."하며 애써 외면해왔던 모야모야병에 대한 마음 깊숙한 곳의 두려움을 한꺼번에 끄집어 올려내어 두렵고 힘든 마음이 내 마음을 온통 지배하게 된 것 이다. 그치만 그 두려움을, 그 무서움을 드러낼 수 없으니 새로 처방 받은 약의 부작용이 두통이란 말에 거기에 모든 원흉을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무기력하게 살고 싶었다.
며칠을 억지로 채우던 일들을 하나씩 내려놓자,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카페 일도, 학원 수업도, 모두 멈출 수는 없었지만 마음에서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조금 비워내니 비로소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보였다.
단지 몸이 아픈 게 아니었다. 마음이, 삶이 아팠던 것이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엄마로서, 가장으로서, 누구의 딸로서,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나를 보는 눈빛에서, 나를 대하는 행동에서 "넌 견딜 수 있어. 넌 해내야 해."를 드러내고 있었다.
누구도 내게 이렇게 물어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너는 지금 괜찮아?”
“너는 지금 쉬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 질문은 결국, 내가 나에게 해야 했던 말이었다.
“넌 좀 쉬어도 돼.”
“아파도 돼. 도망쳐도 돼.”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안다. 저 질문들에 YES. 라고 대답한다해서 내가 너무 많이 퍼져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정말 오늘까지만 징징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