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멋대로인 L씨

by 리쌩전


L씨는 현관문을 열었다. 둔탁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낡은 건물이라 벽이 수평이 맞지 않는지, 현관문이 꼭 어딘가 걸린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L은 낡은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침에는 좀 포근하다 싶었는데, 점심 때가 되니 바람이 차가워진 것 같았다. 하늘엔 묵직하게 구름이 뒤덮여있다. 비가 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L은 종종 가는 도시락 집으로 갔다. 이 동네에만 있는 작은 도시락집이었다. 프랜차이즈 도시락과는 다르게 소박한 메뉴들이 많았고, 조금 저렴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카드를 받지 않아서 현금이 있을 때만 들리곤 했는데, 손님들의 불만을 들어서인지 카드 결제를 개시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는 조금 더 마음 편히 자주 찾게 되었다. 특별히 맛있는 메뉴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맛없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 심심하게 느껴지는 간이 L의 입맛에 맞았다. 특히 혼자 밥을 먹을 때엔 그 곳의 도시락을 자주 찾았다. 혼자 밥을 먹기 위한 아주 적당한 수고로움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그 곳의 도시락을 먹기 위해 혼자 먹는 날이 내심 기다려지기도 했다.

도시락집 앞에서 L은 잠시 가게를 들여다 보았다. 가게 앞에 있는 작은 입간판에는 메뉴가 있었다. 오늘은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L은 고기가 있는 메뉴를 즐겨먹었는데, 그 곳에는 고기가 없는 메뉴들이 더 많았다. 사장님은 젊은 여자분인데, 아무래도 여자 취향에 가볍고 건강한 식단이 이 도시락집의 컨셉인 것 같았다. 하지만 L은 건강도, 채식도 관심없었다. 그냥 그 곳이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저렵했고 적당히 맛있어서 적합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L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 너머 작은 주방에 앉아있던 사장님이 크지 않지만 정확하게 들릴만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L은 가게를 둘러보았다. 가게 앞에 간판을 보면서 대략적으로 정해놓기는 했지만, 가게 안에 있는 메뉴판을 보면서 확실히 뭘 먹을지 정하고 있었다. 불고기 정식과 제육볶음 정식 둘 중에서 고민했다. 주문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오는 게 있겠지. 그렇게 L은 생각했다.

"저기." L이 말을 꺼냈다. 바로 뒤이어 주문할 메뉴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입이 달라붙은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음." 하면서 L은 소리를 삼켰다. 사장은 가만히 L을 바라보았다.

"불고기 도시락으로 주세요." L은 말했다.

"네." 사장은 포스에 메뉴를 찍으며 대답했다. L이 내민 카드를 받았다. "영수증 드릴까요?"

"괜찮아요." L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준비해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장은 L의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L은 카드를 받고 가게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았다. 예전에는 혼자 밥을 먹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 앞에서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혼자 있으면 밥을 잘 안먹어. 다른 건 다 하겠는데, 밥은 혼자서 못 먹겠더라. 그래서 집에서도 혼자 있으면 끼니를 잘 안챙기게 돼. L은 그렇게 말했던 시절이 갑자기 생각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빈 웃음도 새어나왔다. 사람은 잘 변하는구나. L은 허무함을 느끼며 주방을 바라보았다. 사장은 팬에 불고기를 데우고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담았다. L은 왠지 자기가 바라보는 시선이 무례한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 가게 밖을 바라보았다.

"저녁은 뭐 먹지." L은 가만히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게는 고소한 불고기 양념 냄새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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