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긴 시간 속에서

넋두리 다이어리 30

by 리쌩전


마지막 글을 올린게 8월이라니, 시간이 참 빠르다. 아니, 어쩌면 너무 밀도 있는 시간을 살아서 좀 길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나고보니 순식간인 것 같지만 거리로 보면 멀게 느껴진다. 더 빠르게 살기 때문일까? 멀리 왔기 때문일까? 이렇게 돌아보면 시간을 느끼는 방법도 다양하단 생각이 든다. 난 뭐하고 살았을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다. 그럴 때마다 한켠에 떠오르는 건, 그렇다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누가 읽기나 하나? 싶기도 하는 것이다. 누가 읽어달라고 쓰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읽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애매한 글을 쓰다보니 애매한 타이밍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적당히 사는 일은 좀 그만해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1. AI가 너무 빠르게 당연해지고 있다.

요새 사람들을 만나 자주 하는 이야기다. AI 쓰세요? 라는 말은 이제 너무...... 뭐랄까, 좀 의미가 없다. 편의점 가세요? 같은 말 처럼 들린다. 안가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이제 그냥 너무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나요? 같은 느낌인 것이다. 결국 쓰는 것 자체는 어찌할 수가 없고,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해졌다. 그게 중요해질 거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오는 것도 본 기억이 얼마 전 같은데, 이제는 그냥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행동해야 한다. 만들어보고 찾아보고 참여해보고 선택해보고 돈을 써보고, 하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회사, 모두의무늬만 해도 벌써 AI 콘텐츠를 만들어 온에어도 시켰고, 협업도 해봤고, 최근에 시안도 만들고 있다. 냉동식품 패키지에 '에어프라이어'로 먹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박혀 있는 시대가 됐다. 에어프라이어가 좋고 나쁘고를 논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뭐가 맞는지, 기준은 필요하다. 나만 해도, GPT를 통해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일보다는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정리정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뭔가 완전 새로운 것을 찾거나 만드는 것은 좀 기만적인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조차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개념일 수도 있지만,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게 나인걸!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의 내 느낌으로는 더 나아가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보단 '달라지고 있다'라는 감각이다. 그건 아마 내가 변화를 인지하는 방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컴퓨터에서 모바일로 시대가 변화한 것도 '나아지고 있다'라기 보단 '달라졌다'라고 인식한다. 그것이 더 나아졌다고 단순하게 말하는 건, 너무 납작한 기술 중심적 사고라고 이해하는 편이라서.


2. 스태프보다 파트너를 구하기.

최근 일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하반기에 사람을 구하는 일에 꽤나 시간과 마음을 들였다. 이제 상주하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서 세명이 되었고, 회사의 멤버로서 일을 하는 사람이 세명이 더 있다. 그래서 나를 포함 총 6명이 모두의무늬 멤버로 일을 하는 중이다. 장족의 발전이네! 라고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것도 나는 나아졌다기 보단 변화라고 본다. 회사가 커진다고 꼭 좋은 것인가? 매출이 늘어난다고 꼭 좋은가? 속도가 빨라진다고 꼭 좋은가? 긍정과 부정의 관점은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그저, 나는 변화를 수용하고 불안을 최소화하며,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필요해진 것이다. 아니, 사람이 필요하기보단 동료가 필요하다, 라는 것이 더 옳다. 직원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일본에 출장 가있던 시기라서 '야마자키 료'씨에게 물었다. 사람을 뽑는 일이 참 쉽지 않은 것 같다고. 관련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료 씨가 studio-L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일을 듣고 덕분에 생각지 못한 관점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료 씨가 그때 했던 말이 이랬다. '리(료 씨와 료 씨네 회사 스태프 분들은 나를 다 '리'라고 부른다.)에게 필요한 건 일을 도와줄 어시스턴트나 스태프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 동료 아닐까?' 라고. 사실 따지고보면 그 말은 예전에 박우덕 사장님이 해주신 말과도 일치했다. 사업을 시작한다면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고. 그것은 동업자일 수도 있고, 혹은 같이 일하는 회사의 지분일 수도 있고, 무엇이든, 성장할 때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올 한해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한번 쭉 미팅을 했다. 내년부터는 더 가깝게 일하고 일도 더 많이 하고 싶다고. 하지만 말을 다 하고나니, 너무 말뿐인 약속을 한 것 같아서 조금 송구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일은 일이니까, 더 구체적인 제안을 했어야 했는데. 내 입장에서도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했어야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좀 더 에너지를 가지고 나아갔어야 했는데.


3. 염따의 앨범을 끝까지 다 들어본 사람, 저요.

솔직히 말해서 노관심이었다. 관심을 먹고 자라는 괴물 같은 이미지의 염따는, 사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닥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나'라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세대의 주인공도 아니었고, 나는 힙합을 그다지 많이 듣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접하고 소비하기엔 거리가 있었다. 한창 때도 그랬는데 다시 돌아온다고 그럴 일이 또 있을까 했는데, 우연히 침착맨의 라디오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걸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좋아졌다? 라고 말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뭔가 절절한 게 있었다. 나도 싫어하는 내가 있고, 나도 거지같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가려고 한다는 점.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점. 결국 시간은 멈춰있지 않고,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도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끊임없이 규정하기 보단 방향성을 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

여전히 내 취향이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그 솔직한 만큼은 높이 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침착맨이 방송에서 '벗는다' 라고 표현했는데, 그건 정말 극찬이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에게, 벗을 줄 안다는 것만큼 대단한 평가가 있을까. (이걸 단순히 옷을 벗는다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나는 솔직함과 투명함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4.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 잘 보이고 싶을 때 빤스를 내리는 버릇.

얼마 전 술을 진짜로 많이 마신 날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아무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는데,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 혼자 그렇게 많이 마셨고 진짜로 술병이 단단히 걸려서 다음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엄청나게 많이 토했다. 내가 보기에 멋있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였는데, 그 자리에서 기가 눌렸던 것 같다. 해외에서 너무 멋있는 사람들을 만나 영감을 받으며 스스로 계속해서 커리어를 빌드업해나가는 분, 로컬 컨텐츠로 이미 레거시를 만들어냈는데 자기 삶 속에 가족 성장의 소중한 순간을 마주한 분, 이미 멋진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든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이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며 크리에이터로서의 면모가 기대되는 분까지. (이렇게 말하면 본인들은 알겠지?) 내가 그 중 가장 연장자였는데, 사실 나이에 대한 생각은 1도 하지 못하고 멋있다 멋있다 생각만 하고 있다가 술에 취해서 그냥 바보 같이 낭비하는 소비 자랑만 하면서 꼴까닥 취해버리고 말았다. (뒤 기억은 디테일하게 나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다. 늘 좀 어색한데 내심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아예 끝까지 취해버리고 마는 어떤, 바보 중의 바보 같은 행동들. 이제는 좀 그만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얼? 취하는 것도, 과소비하는 것도, 깝치는 것도. 근데 그런걸 버린다고 버릴 수 있을까? 나는 참 거지같고 무식하고 형편 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모두가 있으니까 이만큼까진 올 수 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도 너무 하찮다는 생각이 든다.


5.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하기 싫은 걸 잘하기.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이해할 수 없어, 라는 말은 겨울인데 춥다, 라는 말처럼 의미없다고 생각한다. 소비는 충동적이다. 운동은 재미없다. 건강은 허구다. 소화력이 떨어지면 겨울이 더 추워진다. 나는 아직도 눈이 오면 기분이 좋다. 만약 죽는다면 겨울에 죽고 싶다. 2026년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아니 꽤나 징그럽다.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불안한 일이다. 차라리 확실히 왔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옥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길예르모 델 토로가 '죽음'은 엄청난 축복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죽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살자는 뜻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6.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선까지 닿기.

나의 최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하고 최선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업의 본질이다. 최고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선의의 파트너. 그렇게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조금 더 나다운 모습을 발견하고, 나로서 온전히 있을 수 있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다만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 속에 숱한 희생과 고생이 있겠지만, 그건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빛나게 될 노력의 아카이브일 뿐이다. 꿋꿋이 견디면 꼿꼿이 서있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갑작스럽게 글이 마무리가 되는 건, 그저 손가락이 아파서 그만 쓰고 싶을 뿐이다.

아, 벌써 2025년이 끝나간다니.


시간 참 길고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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