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졌다. 옅은 나무 무늬 도마 위에 식재료 대신 피가 맺혔다. D는 당황해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한 손에는 이 사태의 장본인인 식칼을 여전히 들고 있었다. D는 자기 탓이 아니라는 듯이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반짝이고 있는 식칼의 모습이 얄밉다고 느꼈다. 그 동안은 은빛으로 번쩍이며 금속의 느낌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식칼을 선호했는데, 이제 세라믹칼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야?" 옷을 갈아입던 남편 A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양말을 신고 바지를 입던 A는 갑작스럽게 끊겨버린 요리 소리에 위화감을 느끼고 부엌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D의 대답이 없자 그는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굵은 핏방울이 맺힌 손가락을 붙잡고 있는 D를 보자 A는 화들짝 놀랐다. "어쩌다 이랬어. 많이 다친 거 아니야? 봐바."
"아냐." D는 상처가 있는 손을 다른 손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조금 베였어. 괜찮아. 별 일 아니야."
"뭐가 아니야. 피가 이렇게 많이 났는데. 이게 뭐야, 아이고." A는 키친 타올을 둘둘 말아 바닥에 떨어진 피를 닦았다. 그리고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병원 가야되는 거 아닌가? 봐바."
"그러게 라니?" 조금 짜증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니, 그냥 조심했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뜻이야."
"이게 내가 혼날 일이야?"
"무슨 혼을 내. 나는 걱정한 거야."
"그게 무슨 걱정이야." 그녀는 조금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내가 조심하라고 말했는데도 조심하지 않았으니까 다친 거다. 이런 뉘앙스잖아. 아니면 나는 네가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말처럼도 들리고. 당신은 실수 안해?"
"왜 그래, 아침부터." A는 말했다.
"아침이랑 무슨 상관이야? 이런 식으로 또 잘못을 나한테 전가하지. 다친 건 나고, 아픈 것도 나인데, 당신의 아침을 망친 것도 내가 되겠지."
D는 몸을 돌려 방으로 갔다. 구급약이 담긴 통을 찾았다. 일단 지혈을 하고 밴드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A는 D를 따라 방으로 왔다. "알겠어, 미안해." 그가 말했다.
"뭐가 미안한데?" D가 되물었다.
"당신이 요리하다 실수해서 다쳤는데, 내가 그걸 혼내듯이 말했지. 아이한테 말하는 것처럼 말해서 가뜩이나 아픈 당신을 기분 나쁘게 했어. 미안해. 다음부터는 좀 더 생각하고 말할게. 걱정할 때도 더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미안해. 아프지말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당신이 판단하기에 좀 심하다고 생각되면 꼭 병원가봐. 나 출근하고 난 다음에도 상태가 어떤지 연락해주면 고마울 것 같아. 오늘 아침부터 같이 밥먹으려고 요리도 해주려고 했던 그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여튼 아까 내 태도는 잘못했어, 미안해."
D는 A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A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D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D가 대답했다. "나도 미안해."
A가 D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며 D에게 말했다. "뭐가 미안한데?"
"엄마, 뭐해?" 작은 방의 문이 열리며 아이가 나왔다. 둘은 약간 당황한 기색으로 아이를 돌아보았다. "후반전이야?" 아이가 물었다. 둘은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머릿속에 있는 단어장을 뒤적이는 표정으로 어수선하게 아이를 바라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끝나면 깨워." 아이는 아직 졸린지 눈을 비비며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정말 지겹다니까."
아이는 방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