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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Feb 12. 2017

난 싫은데?

오늘같이 차갑고 맑은 날이면, 햇살이 유독 따스하게 느껴진다. 햇살을 기분좋게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겨울을 좋아할만한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더러 이런 말을 듣는다. '나는 겨울 너무 추워서 싫은데.'라고. 나는 그  말에 숨겨진 의미가 궁금하다. 내가 겨울이 추운걸 모른다고 생각하는걸까. 아니면 내가 겨울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부정하고 싶은걸까. 겨울을 좋아한다는 것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본인은 추위를 잘 탄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 마음일까. 만약 그런 거라면 타이밍이 너무 안좋지 않은가. 개인의 취향을 반박하면서까지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며 늘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렇군요, 하고 대충 대답해버리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고 늘 보통 겨울이 왜 좋아요? 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럼 나는 '그냥요' 라고 겨울의 바람처럼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그냥'은 만능이니까.


겨울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차갑고 춥고 담백한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라, 맵고 뜨거운 음식에 몹시 약하다. 불닭볶음면이나 불짬뽕같은 것은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곤욕스럽다. 근데 어쩌다보니 이번에 곧 출시될 매운음식의 광고를 맡게 되었다. 워낙 매운맛을 즐기지 않다보니, 매운 맛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맛의 이해가 아닌, 그 맛을 즐기는 '감정'이나 '마음'에 대한 이해가. 그래서 매운음식 매니아인 피디님께, 매운게 왜 좋아요? 라고 물었다. 피디님은 매운게 맛있잖아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아 나는 매운거 너무 싫은데'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깨달았다.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스스로 내뱉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곰곰히 생각했다. 그 말을 하기 전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은, 나는 상대방이 '틀렸다'라는 생각을 조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옳다'고 말하고 싶었다. 결국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나는 속으로 상대의 취향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대의 취향을 통해서 상대 그 자체를 부정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이기도 하니, 이 정도로 깊게 들어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해서 얻어지는 게 없는데다가, 확실히 부정적인 태도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이상, 다음부터 그런 식의 대화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립이 필요하지 않는 곳에선, 아군도 적군도 없고 각을 세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저, '그렇구나' 정도의 마음이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그렇게 말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느 때냐면, 그냥, 그냥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 

'그냥'은 만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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