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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 Yeon Lee 이탁연 Aug 02. 2018

인공지능과 디자이너

모든 프로덕트의 스크린화가 진행되던 십수년 전, 많은 사람들이 산업디자이너의 소멸을 걱정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삼성에서 수십개의 피처폰을 찍어내던 디자인 팀이 대규모 감원되었단 소문도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Atlassian의 2015년 리서치에 의하면 기업 내에서 디자이너의 비율은 엔지니어의 20%로 증가 (2012년엔 4%) 했다. 그 때와 지금의 디자이너들이 하는 일은 사뭇 다르다. 20세기 산업디자이너들이 에어브러시와 마커로 스타일링을 했다면 21세기 UX디자이너들은 스케치, 인비전, 프로토파이(ㅋ) 같은 툴로 정보의 구조를 설계한다. 기술이나 마켓 패러다임이 아무리 변해도 디자이너의 근본적인 행태(인간의 욕망과 기술이 만나는 접점 찾기; 주어진 문제에 집착하기보다 문제-답의 조합을 최적화하려함)에는 변함이 없다.


얼마전 머신러닝 전문가와 커피를 마시며 최근 그가 만들고 있는 예측 모델에 대해 잡담을 했다. 로그 데이터를 이용해서 고객이 어떤 행동을 할지 말지 예측하는 모델인데, 엔지니어링 팀이 1년 넘게 매달렸음에도 정확도가 60%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예측하려는 이벤트가 아주 가끔 희귀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마케팅에서 실제 구매 행위에 도달하는 고객, 지진이나 폭락장 처럼 99.99%의 상황에서는 아무 일 없지만 일단 벌어지면 타격이 큰 이벤트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양치기 소년의 예를 들어보자. 늑대가 실제로 나타날 확율은 아주 작지만, 소년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경고를 놓치면 타격이 크다. 그래서 소년은 늑대가 나타날 것 같은 징조가 보이면 일단 소리를 친다. 일반적으로 recall (늑대가 나타날 때마다 경고가 울렸을 확율)과 precision (경고가 울렸을 때마다 늑대가 나타날 확율)을 동시에 높이기는 불가능하다. 양치기는 recall 을 높이기 위해서 precision을 희생한다. 하지만 false alarm이 나올 때마다 적지 않은 비용을 치뤄야 하는 마을 사람들은 점차 소년의 늑대-출현-모델을 믿지 않고, recall이 낮아도 precision이 높은 모델을 택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실제 늑대가 나타났을 때 가장 큰 비용을 치룬다.

디자이너가 AI시스템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이 이 곳이다. 디자이너는 주어진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문제-답-문제-답)의 체인에서 문제와 답을 치환해가며 (답-문제-답-문제)로 해결하려 한다. 기하학에서는 duality optimization이라고도 하는데, 주어진 문제가 너무 어려울 때 답과 문제를 뒤바꾸는 식이다. (대충 메타포만 차용하면 그렇단 거니까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말자) 즉, 현재 가지고 있는 데이터로 희귀 이벤트를 예측하기는 너무 어려우니까, 대신 더 안정적으로 발생하는 이벤트로 문제를 바꾼다. 재정의된 이벤트에 관해 추가 데이터 수집하는데, 이때 목표는 편향성이 적고 표현력이 높은 데이터를 적은 비용으로 수집하기. 수집된 데이터로 안정적인 모델이 나오면, 모델과 데이터의 특성을 고려해서 제품을 설계한다. 내 생각에 이런 시나리오가 design for AI의 기본형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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