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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Sep 03. 2020

두 남매가 보낸 여름의 기록

올해 최고의 영화 <남매의 여름밤> 후기

영화 <남매의 여름밤>에서 주인공 두 남매의 일상을 잡아내는 시선은 지극히 관조적이다. 카메라는 남매의 삶속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첫 장면부터 그렇다. 다세대 주택 지하 방에서 잠시 망설이는 옥주를 비추던 카메라는 옥주보다 한 템포 느리게 움직이며 옥주가 떠난 빈 공간의 여운을 잡아낸다. 카메라만 그런 건 아니다. 남매가 아빠를 따라 할아버지네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왜 고모는 갑자기 짐을 싸서 친정집으로 돌아왔는지 영화는 일일이 알려주지 않는다. 관객은 옥주를 비롯한 가족들의 표정을 읽으며 추측할 뿐이다. 그럼에도 관객은 불편하지 않다.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사연들이겠거니 짐작하면 충분하다.



멀리 물러서서 느릿하게 여운을 주던 카메라가 역동적으로 변할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관객들은 인물의 표정에 집중하게 된다. 이사짐을 꾸려 할아버지 댁으로 향하는 봉고차씬이 그렇고 남친에게 주었던 운동화를 빼앗아 달아나는 옥주의 자전거씬이 그렇다. 대부분 장면에서 고정된 듯 정적이다가도 돌연 다이내믹해지는 카메라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의 감성과 상황의 변화를 읽어낸다. 카메라의 리듬감은 영화의 주된 화자인 옥주의 감정선과 맞닿아있다. 옥주는 가끔 짜증도 내고 불편한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장면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옥주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복잡한 그녀의 심경을 더 복잡하게 꼬아놓는다. 별거하며 가끔씩 동생을 통해서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엄마, 어딘지 항상 위축되어 있는 아빠, 말이 통하지 않는 할아버지, 자꾸만 치대는 철없는 동생... 옥주의 감정은 그녀를 둘러싼 주변 상황 속에서 안으로만 쌓여가다가 영화의 후반부가 되어서야 마침내 폭발한다.

이 장면에서 배우 최정운의 연기력에 놀랐다. 경력도 짧을텐데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할수 있을까.


옥주가 쏟아내는 서러운 울음에는 엄마에 대한 야속함,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가난한 아빠에 대한 연민과 사춘기를 겪어내는 자신의 비루함에 대한 실망감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옥주는 한참을 쏟아내고 나서도 울었던 시간만큼 온몸을 들썩거려야만 잦아드는 그런 울음을 운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한 여름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나서야 비로소 한 뼈 더 자라났던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게 된다. 옥주 역시 할아버지의 텃밭에서 맵게 영글어가는 고추처럼 자라나는 중이다.

두 남매는 갈등하지만 서로를 보듬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영문 제목(moving on)은 단지 할아버지댁으로 주거지를 옮긴(move on) 남매의 이야기라기보다 생의 한단계를 지나는 옥주의 성장기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인물 분석>

 아빠

아빠(양흥주 분)는 늘 눈치를 본다. 말씀도 어눌하고 말귀를 알아들으시는지조차 분명치 않은 할아버지 앞에서도 아빠는 두 손을 모은 채 말을 더듬고 눈을 굴린다. 빌붙어 살아야 할 처지에 자식까지 대동한 것이 눈치가 보이는 걸까. 아빠는 노상에서 가짜 신발을 팔 때보다 더 위축된 표정이다. 딸의 쌍커풀 수술비는 커녕 할아버지의 병원비를 치를 돈도 아쉬운 상태라서 그런지 아빠의 주눅든 표정과 비굴한 태도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가족을 사랑하는 아빠는 먹고사느라 늘 머리가 아프다. 틈나는 대로 크레인 기사 자격증 공부를 해 보지만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다. 무슨 사연인지 아내와 이혼을 하고 애 둘을 떠맡게 된 아빠에게, 기댈 곳은 그래도 번듯한 집 한 채를 가진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비록 대변도 못가리고 오늘 내일 하는 아버지지만 말이다.    

옥주

옥주(최정운 분)는 그런 아빠가 못마땅하다. 여름방학을 맞아 할 수 없이 지하 단칸방을 떠나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무심한건지 무뚝뚝한건지 말이 안통하는 할아버지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새로 이사를 온집이라 어색하긴 해도 옥주는 2층 작은 방에 모기장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한다. 얇은 한겹의 막에 불과하지만 이 반투명한 사각의 공간은 세상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한 사춘기 소녀의 불완전한 심리를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옥주는 집에 적응하면서 할아버지의 존재에도 적응해간다. 무심한듯 가끔 눈을 마주치며 빙그레 웃으시는 할아버지는 엄마의 빈자리와 가난한 아버지의 자리를 메워주는 존재다. 아빠가 고모와 함께 할아버지를 요양소에 맡기고 집을 팔궁리를 하지만 옥주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할아버지의 집은 불안하고 불완전한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준 공간이기 때문. 살아계신 할아버지를 두고 자기몫을 챙기려는 어른들은 운동화 선물을 받고 연락도 없는 남자친구만큼이나 야속한 사람들이다. 옥주는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하다.


동주

동주(박승준 분)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 따로 사는 엄마와 유일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동주는 엄마라면 화부터 내는 누나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아 누나의 모기장에 파고들다가 혼이나고 몰래 엄마를 만나고 온 날도 호되게 야단을 맞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능청을 떨고 울적한 누나를 위해 기꺼이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나서는 천사 같은 아이다. 세상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동주는 거침이 없다. 할아버지 생일날 가족들 앞에서 온갖 재롱을 부리고 말도 못하는 할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아직 철이 안들어 모두에게 웃음을 주는 아이지만 때로는 가장 철이 들어 매사에 달관한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 동주를 연기한 아역배우 박승준의 연기에 매료됐다. 이렇게 천연덕스러울수가 없다.)


고모

고모(박현영 분)는 아빠만큼이나 대책이 없다. 무엇 때문인지 남편과 크게 다툰 후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짐을 싸들고 돌아온다. 고요하던 이층집은 졸지에 세대를 달리하는 두 남매와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함께 사는 번잡한 집으로 바뀌고 만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고모는 조카들의 엄마 노릇을 하며 안정을 찾아간다. 잡채며 비빔국수며 여름을 나면서 누구나 한 번쯤 먹을법한 별미들로 식구들을 불러 모은다. 그러나 고모 역시 상처가 깊다. 밤이 되면 2층 테라스에 올라 온갖 청승맞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무는 고모는 ‘딸인데다가 막내라서’ 무엇하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하소연 한다. 기대와 달랐던 결혼생활도 그녀의 삶을 망쳐버렸다. 아무래도 이 집에 눌러사는 것 외에 그녀에게 선택지가 없어보인다.

할아버지의 이층집
 
할아버지가 혼자 사시던 이층집은 사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결혼해서 출가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넓진 않지만 고추와 상추 따위를 키울 수 있는 마당이 있고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면 깨진 유리창 때문에 낡고 지저분하게 보이는 테라스가 있다. 하지만 볕이 잘 들고, 그래서인지 유독 2층에서 내려다보는 마당이 예쁘게 보이는, 그런 집이다.

집 안에는 할아버지가 50년간 살면서 사용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벽을 하나 가득 메우는 자개장, 돌아가신 할머니가 썼을 것으로 보이는 미싱, 탈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부의 상징 같았던 오디오 세트와 같은 물건들이 유년의 추억을 소환한다. 거실 소파에서 우두커니 장현의 <미련>을 듣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긴다.


<팬심에서, 그래도 못다한 말>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과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8)에 이어 여성영화 감독의 약진이 놀랍다. 어디 숨어있다가 한꺼번에 이렇게 좋은 영화를 내놓으시는지 그 잠적기간이 야속할 뿐이다. 올해만 해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김초희)와 <69세>(임선애) 감독에 이어 <남매의 여름밤>(윤단비)까지 놀라운 작품이 연속이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팬의 입장에서 여성영화 감독의 세심한 시선이 넘치게 기쁘다. 영화계에 이런 기류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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