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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Oct 29. 2022

신간 <여성, 경찰하는 마음> 후기

오십 넘은 남자 경찰관이 이 책의 저자들에게 동질감을 느낀 이유  

경찰청에 근무하게 된 건 내가 경찰관이 된지 꼭 10년만의 일이었다. 경찰청 수사국 소속의 작은 팀, 지금은 역할과 중요도가 훨씬 더 커졌지만, 그 때만 해도 총경급 과장과 경정급 계장 두명 그리고 실무자 세명이 전부인 그런 미니 조직이었다.


경찰대학 출신 과장님은 나를 무척 총애하셨다. 나는 팀 안에 유일한 순경공채 출신 경찰관이었고, 그 덕분인지 과장님은 날 10년의 현장경험을 가진, 글도 제법 잘쓰고 일 머리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계셨다. 그 때만 해도 수사국에 순경공채 출신 경찰관이 손에 꼽을 때라 나 역시 조심스러웠지만, 평소 관심있던 일을 하게 됐기 때문에 설레기만 했을 뿐, 주눅이 들진 않았다. 몇번의 생각지 못한 경험으로 다소 불편한 마음이 되기 전까진 말이다.


당시만해도 삼십대 후반이었기에 사람에 따라 나를 퍽 어리게 봐주기도 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복도를 지나갈 때 인사를 하면 대학 후배인줄 알고 반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내가 보기엔 계급은 몰라도 나이는 나보다 어려보였다), 대뜸 몇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저는 순경공채 출신입니다.”라고 웃으며 대답을 하고, 당황해하는 상대의 표정을 즐기기도 했지만 그럴때면, 들어와선 안 되는 울타리 안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가끔 외부인이 포함된 식사 자리에서도 불편한 일은 계속되었다. 나를 총애하던 과장님은 항상 나를 “조직내 보석 같은 친구”라거나 “현장 경찰관 출신 진짜 경찰”이라고 추켜주셨는데 어쩔때는 그 소개가 너무 길어서 무척 난감했다. “아무개 대학 몇기”, “사법시험 몇기” 같은 단순한 경력으로 더 긴말이 필요 없던 다른 팀원들과 나는 다른 존재였다. (물론 나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이었을거라 생각은 하지만) 길고 장황한 칭찬 끝에 멋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면서도 나는 영 불편했다. 나는 보석같은 존재도 아니고, 글을 좀 써본 경험 외엔 달리 내세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력이나 직함만으로 돋보이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한 순간 빛났던 그 경력은 수십년, 아니 평생 그 사람의 명패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대학입시가 그렇게 중차대한 인생의 통과제의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주 짧으면서도 그럴듯한 직함이나 간판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 장황하게, 또 자주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지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나의 경우와 비교하기 적절치 않지만, 19세기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로자 보뇌르 역시 마찬가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모네나 르느와르 같은 인상주의 작가들이나 쿠르베와 같은 사실주의 화풍이 눈길을 끌던 시대에 동물화를 주로 그리며 당대에 빛을 보지 못한 화가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재조명된 로자 보뇌르는 남자처럼 바지를 입고 흙투성이 마시장이나 우시장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거친 환경을 누비기에 여느 여성들처럼 드레스가 적절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늘 로자에게 왜 그런 차림을 하는지, 왜 남들 같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해했다. 바지를 입기 위해서 당국의 허가가 필요했던 시기였기에 로자는 늘 자신의 외모에 대해 구차한 설명을 했을 것이고 허락을 구해야 했을 것이다.



로자보뇌르의 작품 '니베르네의 쟁기질'1848

소수자이거나 어쩌다가 비주류가 된 사람은 자신의 특성과 고유성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인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내야 하고, 매번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고, 남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늘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그런 비주류의 경험이 어지간 해선 무너지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견고한 삶의 자세를 만드는 사례도 있다.


근래 스물 세명의 여성 경찰관 동료들이 써낸 에세이집 <여성, 경찰하는 마음>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저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능력을 의심받아야 하고, 매 순간 의지를 증명해야 했다. 반복되는 편견 속에서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낼수 없었다. 그렇게 역경을 겪으며 대표적인 남초 조직인 경찰 내에서 각자 뛰어난 전문가로 자리잡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들의 스토리들이 짠하면서도 또 후련했다. 개중에는 25년의 경찰생활을 하는 동안 언젠가 옆에서 한번은 지켜본 것 같은 이야기도 많았다. 글을 읽으면서 내가 했던 이러저러한 경험들이 자꾸 떠오르며 책속의 이야기에 포개졌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 말이다.



경찰관이 되고 처음으로 경찰서 내근직 업무를 익힐 때였다. 옆 사무실엔 유독 눈에 띄는 선배 한분이 있었다. 여성이었고 마흔살 언저리의 선배였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선명한 것은 다름아닌 그녀의 유별난 성격 때문이다. 그녀는 대체로 무뚝뚝했고 표정이 없었다. 옆 사무실이라 가끔 마주칠 일도 있었지만 인사도 받는둥 마는둥이었다.


하루는 복도에서 고성이 들려 나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였다. 그녀는 머리가 벗겨진 민원인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민원을 내러 온 중년남성이 선배에게 먼저 막말을 한게 싸움의 이유였다. 그녀 역시 지지 않고 민원인에게 똑같은 욕설을 받아치고 있었다. 결국 감사실 직원까지 개입하고 나서야 마무리 되었지만, 그녀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표정이 저렇게 무뚝뚝하니 욕을 먹지', '저런 여자 누가 델고 사나 몰라', '참, 사회생활 드럽게 못해요. 어떻게 들어왔을까.'...등등. 나 역시 그녀의 무뚝뚝한 성격과 굳은 표정에 늘 거부감을 가졌던 터라 그녀를 험담하는 동료직원들에게 맞장구를 치기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살펴보니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표정이 굳어진채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은 그녀 뿐이 아니었다. 직급이 높은 많은 남성 상사들이 수시로 화를 냈고 몇몇은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누구도 과장님 혹은 서장님 성격이 이상해서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험담을 공공연하게 하지 않았다. 저런 남자와 누가 살아주냐는 농담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선배의 태도와 행동에 별로 호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이해라기 보다 남초 조직에서 적응하느라 얼마나 상처가 컸을까 하는 연민이랄까. 아무튼 그녀의 무뚝뚝함과 무표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거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감정표현에 솔직하다. 호방하고 뒤끝 없는 것이 카리스마있는 상사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사실 솔직하다는 것은 감정표현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즐거우면 실없는 농담을 한다. 솔직한 성격이 타인의 감정선을 흐트러뜨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들이지만, 화를 내고 쉽게 풀리는 성격은 남성적인 호방함으로 곧잘 포장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실무자들은 그럴 수 없다. 그 혹은 그녀들은 매사에 밝게 웃어야 하고 실없는 농담에도 웃으며 넘겨야 사회생활을 슬기롭게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다.


방송에서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는 이유로 개념없는 연예인으로 낙인찍히고 소신있는 발언이나 튀는 행동을 하는 여성 연예인은 악플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누가 만든 걸까. 여성이나 약자는 조신하게 수줍은 표정이나 짓고 웃기지도 않는(심지어 저질적인) 농담에도 웃어줘야 인정받는 사회를 누가 만드는걸까.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 역시 매사에 밝게 웃어주는, 그(그녀)들이 소속된, 조직의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간 <여성, 경찰하는 마음>은 매번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기를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간신히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 반복되는 오해와 편견, 분별없는 야유와 질책 속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야 했을법한 순간에도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가 경찰업무에 익숙한 경찰관이기 때문에 더 몰입하며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읽는 사람을 단단히 붙잡아주는 어떤 견고한 힘이 느껴졌다. 나는 그 힘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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