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버스에서 내린 시각은 아침 6시, 종로 2가의 전광판에는 모든 버스의 현 위치가 ‘차고지’였다. 평소라면 요란하게 점멸하며 몇 분 뒤의 교통편을 예고했을 기계들이 고장난 티브이 같이 검은 화면을 뱉어내고 있었다. 버스 파업. 도시의 혈관이 잠시 멈춰 섰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는 태엽이 풀린 장난감이 된 기분이 들었다.
별수 없이 눈 덮인 광화문을 지나 덕수궁 돌담길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얼어붙은 길 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저마다 하품하는 용처럼 길고 허연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만약 영혼이 눈에 보인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몸 안의 온기가 차가운 현실과 충돌해 흩어지는 저 찰나의 흔적들처럼 형체도 이름도 없이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기체가 아닐까.
사무실이란 공간은 참 묘하다. 영혼을 잠시 맡겨둘 사물함 하나 허락되지 않는다. 행여 그 귀한 것이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우리는 종일 입을 꾹 닫고 서류와 모니터 사이를 유영한다. 그러니 차라리 출근길, 각자 준비한 커다란 풍선에 영혼을 불어넣어 빵빵하게 채운 후 적당히 키 큰 가로수 가지에 슬쩍 걸어두고 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퇴근길에 다시 수거해 가면 그만이니까.
퇴근길, 눈길 조심하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주머니에 손 넣지 말고 걸어라." 초등학교 입학식 날 들었던 그 잔소리가 시간을 거슬러 내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나는 닳고닳은 직장인에서 생애 처음 눈길을 나선 꼬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대화는 자연스레 아버지의 '식탐'으로 흘렀다. 평생 유신과 신군부라는 서슬 퍼런 시절을 공직자로 버텨낸 분. 50kg 남짓한 마른 몸으로 주전부리를 찾으시는 모습이 애처롭다가도,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아버지가 섭취하는 그 달콤한 것들이, 사실은 조금씩 증발해가는 영혼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본능 아닐까.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온전한 영혼으로 집에 머문 적이 없으셨던 것 같다. 사십 년 공직 생활 동안 영혼 한 움큼은 서랍 깊숙이, 혹은 어느 관청 복도에 저당 잡힌 채 사셨을 테니까. 그러니 우리 집의 유일한 '어른'은 언제나 맑은 영혼을 지켜낸 엄마뿐인 셈이다.
가로수에 걸어두었던 영혼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음에 본가에 갈 땐 아버지를 위해 달콤한 주전부리라도 좀 챙겨가야겠다. 평생 허기졌을 영혼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채우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