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 May 18. 2024

둘이서 두 다리로 건넌 다리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 속 문장을 따라.

"그만 내려줘~"

"뭐 어때~, 누가 본다고"

이따금씩 그때가 떠오른다. 건천 위를 길게 가로지르는 다리의 시작점부터 술에 취한 것도 발가락 어디 하나 다친 것도 아니었건만 그는 기어이 나를 업고 반대쪽까지 걸었다. 장거리 연애 중이던 우린 매일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특별한 날만큼은 같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직장을 다녔으니 아는 사람이라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뿐이라 외로울 그의 생일이었다. 그랬기에 낳아주고 키워주신 엄마아빠의 생신 때도 하지 않던 짓을 해가며 그를 감동시킬 작전을 짰다. 이래서 자식 낳아봐야 다 소용없다는 말이 있는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이런 마음으로 부모님을 대했으면 효녀비를 세워주셨으려나? 쓸데없는 생각에 혼자 피식 웃고는 엄마아빠에게 죄송스럽지만 당시의 나는 그에게 있어 세상 제일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기 위해 혼자서만 거창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에게는 일이 있어 생일에 못 만날 것 같다고 연막을 치고는, 인터넷으로 케이크 재료를 공수하고 서너 장의 손편지도 써두었다.


 생일 당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생전 처음 케이크를 만드느라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에 온 주방을 폭탄을 맞은 듯 어질러가며 왔다 갔다 했다. 핸드블랜더가 없어 거품기 만으로 휘핑크림을 쳐대느라 두 팔이 마비가 올 듯 저리고 뻐근했다. 그럼에도 기어이, 그릇을 거꾸로 해도 쏟아지지 않을 정도의 단단한 크림을 만들고, 진한 갈색의 겉부분을 제거한 카스테라 속을 체에 비벼 고운 가루를 만들었다. 케이크 시트를 나누고 시트 사이사이 과일을 잘라 넣어 차곡차곡 쌓은 뒤, 만들어 둔 크림으로 충분히 덮고 그 위에 곱게 빻아진 연노랑 병아리색의 카스테라 가루를 뿌렸다. 몇 가지 데코를 해놓고는 감독관인양 살짝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처음 치고는 괜찮은 모습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5시. 엄마가 일어나실 시간이다. 새벽부터 이 난리에 첫 차를 타고 남자친구를 보러 간다는 딸을 그저 잘 다녀오라고 다정하게 말해 줄 우리 엄마는 아닌 것 같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바삐 움직여 주방을 원상복구 시켰다. 마지막 정리를 하는데 아슬하게 주방에 들어오신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왜 벌써 일어났냐고 물으셨고 그냥 잠이 일찍 깨서 밥이라도 해놓을까 싶어 주방에 왔다고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대중교통 편도로 약 5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있던 그는 그런 아침을 보내고 자신에게 달려가는 나를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머릿속에서 온갖 영화를 찍고 있으니 벌써 도착이란다. 생각보다 멀지 않네? (그땐 미쳤지. 내가. 차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 5시간이 걸리는데!) 일상적인 통화인 듯 그에게 전화를 했다. 예상과 다름없이 그는 혼자였고, 프로젝트의 성공을 미리 맛보며 큭큭대는 속마음을 숨기려 애썼다.

"자기야, 나 좀 보러 와줘"

"어딘데?"

"문 앞"

"뭐라고?"

"문 앞이라고"


토요일. 흰 티에 트렁크 팬티를 입고 방에서 뒹굴거리던 그에게는 집에서 늦잠을 자고 있어야 할 나의 전화가 그저 장난인 줄 알았나 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문을 여는 그. 문 뒤에 숨어 있다가 '짠~' 하며 폴짝 모습을 드러냈다. 불쑥 나타난 내 모습에 그의 얼굴에서는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움이 먼저 보였다. '잠깐만!' 하며 다시 현관문을 닫아버린 그로 인해 올라가 있던 얼굴 근육들이 급강하했다. 그가 다시 문을 열기까지는 2~3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찰나에 속으로 버스에서와는 다른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신 분은 예상이 되실까요? 맞습니다. 그런 장면) 다행히도 막장 드라마의 모습은 아니었고, 남자 둘이 자취하는 방이니 여기저기 어질러진 모습도 자신의 내추럴한 모습도 보이기 부끄러워 눈썹 날리게 치우느라 밖에 나를 세워둔 것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그의 자취방은 생각보다 깔끔했지만 20대 남자 둘이 지냈음에도 50대 홀아비가 사는 집인양 냄새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훅 하고 들어오는 공기에 방금 막 뿌린 방향제의 인공적인 향과 더불어 어릴 적 아빠의 팔을 베고 누워서 TV를 보던 때가 떠오르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스캔하듯 슬쩍 방을 훑어보느라 살짝 어색해진 공기를 가르려 만들어 온 케이크를 그 앞에 수줍은 듯 내놓았지만, 받아 든 두 손에는 아직 당황의 감정이 묻어 있었다. 

"나 계속 서 있어?"

"어? 아니 아니 앉아 앉아"


말은 앉으라면서 계속 서 있는 그의 팔을 잡아끌어 앉히곤 내가 와서 반갑지 않냐고 물었다. 입으로는 반갑고 고맙다는 그의 얼굴은 무엇인지 모를 어려움이 보였다. 반가움도 고마움도 경험이 많아야 그 표현이 느는 것인가. 4남매를 키우시느라 그의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셨던 탓에 남매들은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로 함께 자라온 집의 셋째였던 그. 실은 누군가에게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무언가도 마음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어 이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내 마음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이 사람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덜 자란 마음의 키를 사랑으로 키워줘야겠구나. (착각도 자유라더니 어리기는 마찬가지면서 더 큰 사람인 척하고 있었구나)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버텨야 했다. 고요함을 덮어야 했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니 드디어 어색함 반, 감동 반 그의 눈가에서 살짝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고 믿고 싶었다).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을 케이크보다 혼자 보내야 했던 생일에 눈앞에 나타나준 내가 선물이라며 그제야 얼었다 녹은 듯 평소의 그로 돌아와 나를 끌어안았다.



보통의 드라마는 다음 단계의 스킨십을 하겠지만, 낮 1시가 지나가기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우린 배가 고팠고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는 그를 따라 번화가로 나왔다. 무얼 먹을지 간판들을 훑어보며 천천히 걷던 중 그의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너 오늘 생일이야? 왜 말을 안 했어. 어디야?"

"저 지금 여자친구가 와서 밥 먹으려고요"

"그래? 제수씨가 여기까지? 얼굴도 보게 같이 와. 밥 해줄게"


그렇게 우린 점심 메뉴에서 그의 선배집 방문 선물로 고민의 주제도 목적지도 바뀌었다. 무난한 과일을 골라 찾아간 그의 선배집 거실에는 도깨비방망이라도 썼는지 짧은 사이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알고 보니 자신을 잘 따르는 후배가 혼자서 생일을 보내야 함을 알고 있었던 선배의 또 다른 서프라이즈 파티였던 거었다. 선배의 아내와 함께 우리 넷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햇볕 아래 점점 익어가는 과일처럼 가까워져 갔다.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 창 밖의 풍경이 어둑어둑 해질 즈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 어디야? 아침 일찍 나가서 여태 뭐 하느라 아직이야?"

"어, 엄마. 나 남자친구 생일이라 왔는데 남친 선배가 밥 사준다고 해서. 밥 먹고 얼른 갈게"

"뭐라고? 겁도 없이 혼자 거기까지 갔어? 당장 와!!"

통화 소리에 놀란 그가 휴대폰을 가져가서는 너무 걱정 마시라고 안전하게 데려다주겠다고 엄마에게 말씀드렸지만 씨알도 안 먹힐 상황임을 인지했는지 급하게 선배부부에게 인사를 하고는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3월의 초저녁. 아직 밤이 추운 시기라 본래도 추위를 많이 타던 나는 남자친구의 선배부부와 보낸 시간이 어려웠었는지 조금씩 흘렸던 땀이 살짝 부는 강바람에 식느라 이까지 딱딱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선배집에서 그의 집으로 가는 길. 그는 자신의 한쪽 가슴에 떨고 있던 나를 묻듯 안았지만 여전히 떠는 나를 보고 '안 되겠다' 하더니 자신의 겉옷을 벗어 내게 입히고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업혀' 한다. 뭐 하는 거냐며 그의 등을 밀어내는 내 손을 붙잡고 안 업히면 안 데려다준다고 반 협박이다. 부끄러웠지만 그의 등에 업히고 보니 떨리던 이는 금세 조용해졌다. 나를 업고 천천히 걸어가던 그가 말했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고. 너무 행복하다고. 드디어 진정한 프로젝트 성공의 순간이었다.

 



개근상을 탈 듯 지나치는 풍경에도 나의 머릿속 영상은 때마다 다르다. 가끔은 연애시절이 혹은 신혼 시절, 그것도 아니면 아이가 어렸을 때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처럼. 그에게 업혀 지나가던 다리는 앞으로 몇 백 년이 흘러도 끄떡없다는 듯 그대로지만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도 그도 많은 것이 변했다. 그는 여전히 다정하고 가끔은 전처럼 업어주기도 하지만 둘이서 두 다리로 처음 건너던 그 다리 위의 설렘과 행복은 이제 흐릿해졌다. 그는 배가 살짝 나왔고 딸바보가 되었고, 머리의 희끗한 가닥을 뽑아달라며 내 무릎 위에 누우면 고개가 저릿할 때까지 숙이고 있어도 끝나지 않는다. 나는 또 어떤가. 남자친구에게 매력을 뽐낼 목적으로 따뜻함보다 예쁨을 택하여 오들오들 떨던 모습은 어린애들이나 하는 행동이라 치부하고 '추운데 패션은 무슨 얼어 죽을, 따뜻한 게 최고여' 하는 아줌마가 되었으니.

같은 길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 그 길 위에서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이란 이토록 소중한 인연인 것이다. 

다정함을 유지하는 사이기에 다시 지나는 그 길이 가벼울 수 있고 함께 했던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내내 같이 하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 두 번쯤 함께 했다고 해도 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전에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으면 한 번이든 여러 번이든 추억은 다시금 생생하게 길 위에서 일어나 젊은 나로 다시 걷게 해 주기에.


앞으로의 나는 또다시 변하겠지만 인연을 맺음에 있어 전보다는 신중할 것이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길이라면 시간이 흐른 뒤 같은 길을 다시 걷게 되더라도 지나는 동안 행복할 추억만 새겨 놓고 싶다.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때 걷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 다비드 르 브르통 , [걷기 예찬] -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위로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