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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Jun 22. 2024

바보들의 1박 2일

"낚시질! 그것은 오랜 학창 시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추억거리였다."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여러분~중학교 마지막 수련회니 여러분들 원하는 사람끼리 조를 짜보도록 해요. 이번 수련회는 텐트를 가지고 갈 거예요."


"우와~~~!!"


난리가 났다. 캠핑이라니. 텐트가 없는 집이  많았을 90년대 반, 학교 수련회로 어떻게 캠핑을 택하셨을까. 들뜬 목소리로 태어나 처음 텐트에서 자본다는 말, 자기네 집에 텐트가 있으니 그건 걱정 말라고 힘이 잔뜩 들어간 , 삼겹살 구워 먹자, 김치찌개 해 먹자. 여기저기 신이 난 목소리로 교실에 빈 틈이 없다.


"얘들아 잠깐만~! 그래 그래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 흥분하고 일단 조부터 짜세요. 반장은 정리해서 선생님께 가져오고."


보던 TV를 음소거한 듯 잠시 조용해졌지만 금방 다시 버튼이 눌렸는지 아까보다 더 정신이 없다. 그 소란 끝에 감사하게도 외톨이가 된 아이 하나 없이 9개의 조가 짜였다. 같은 조가 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것저것 회의를 하느라 바쁘다. 내가 속한 조만 빼고.


선생님의 말씀 뒤에 사라락 모인 우리들은 서로 마주 보며 웃고 말았다. 누가 시킨 것도 짜 준 것도 아니고만, 우리 반 공식 왕따 아니 전따*4등 아이를 빼고 1등부터 6등까지 모였었기 때문이다. 급할 것도 큰 소리 낼 일도 없이 모이더니 메뉴도 금세 정하고 다시 스르륵 제자리로. 어쩜 이렇게 마음이 찰떡인지.

대구시 달성구 수달 캐릭터 아따 쌍둥이


"야 잘 좀 들어봐 이쪽으로 기울잖아!"

"나도 들고 있거든! 길이 기울어져서 그런 거야"


낑낑대며 텐트를 나눠 들고 가는 아이들, 사람도 들어갈 것 같은 크기에 뚜껑이 빨간 아이스박스를 힘들지도 않은지 웃으며 떠들며 함께 옮기는 아이들, 재잘재잘 꺄르르. 그 소란 속에 우리 다섯은 각자의 짐은 등에 메고 달랑 텐트 하나 번갈아가며 나눠 들고 야트막한 산을 조용히 올랐다. 계곡물이 흐르는 옆, 6월의 싱그러운 초록 동굴을 지나며 간간히 나뭇잎 사이로 해님이 쏘는 레이저 같은 빛에 순간이 행복하다. 


드디어 도착한 캠핑장. 첫 관문부터 난항이다. 텐트를 쳐봤어야 말이지.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에 메뚜기가 되어 9개의 널브러진 텐트 사이를 뛰어다니시느라 벌써부터 땀범벅이시다. 눈썰미 좋은 아이들은 눈치껏 설치를 이어갔지만 우리 조는 눈만 끔뻑끔뻑 서로 쳐다보며 고개만 갸웃거린다. 결국은 선생님께서 마무리까지 해주셨고 우리는 감사하다는 합창에만 아주 조금 에너지를 썼다.


텐트를 치느라 점심때가 바로 옆에 와 있는 줄도 몰랐다. 정확히는 구경만 했지만. 이제 밥을 안치고 점심 준비를 하라는 말씀에 각자 맡은 준비물들을 호기롭게 꺼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얼굴로 다섯이서 빙 둘러앉아 냄비만 쳐다보고 있다. 위에서 보면 아마 꽃 같았으려나. 분명 엄마에게 냄비밥을 안치는 방법을 배워왔건만, 실패를 하여 밥을 못 먹는 사태가 벌어질까 선뜻 나서질 못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조의 아이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그러고 있는 우리 조를 보시곤 결국은 선생님께서 밥을 안쳐주시고 다 될 때까지 계셔주셨다. 교실에서는 제일 손이 안 가는 아이들이 그날만큼은 가장 애물단지들이 된 것이라 머쓱한 마음에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다며 그만 붙잡고 있겠으니 얼른 가보시라 말씀드렸다. 나머지? 더 뭐 할 게 있나? 집에서 라면 한 번을 끓여본 적도, 중3이 될 때까지 설거지 한 번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어 우리 조는 참치캔, 조미김, 3분 요리, 그것으로 메뉴 선정도 빠르게 끝났었으면서. 선생님께서 해주신 밥과 조리랄 것도 없이 준비한 반찬에 9개 조중 제일 일찍 점심식사를 끝냈다. 정리하자마자 텐트 안으로 들어가 과자 몇 봉을 뜯어 나눠 먹으며 바깥 풍경을 보니 여전히 다른 텐트에서는 점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삼겹살을 이제 막 굽는 조,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이느라 방금 막 밥을 먹은 우리의 입맛을 다시게 하는 조, 캔햄을 굽고 달걀을 부치고. 그 모습이 부러운 건 나뿐이었을까.



 실패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면 막상 마주했을 때 실패한 사실 자체보다 그런 자신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실패를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 열여섯의 나이에 자신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는 불안함이 싫은 것인지, 실패의 가능성이 두려운 것인지, 그도 아니면 실패한 자신에게 올 혹시나 있을 비난이나 원망이 무서운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 다섯은 어쩌면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반찬으로 준비한 메뉴 또한 실패하기가 더 어려운, 성공이 보장된 것들 뿐이었다. 성공만 해 본 사람은 진정 높은 곳에 다다르기 어렵다는 말이 이것인가. 헤르만 헤세의 < 수레바퀴 아래서 >의 한 페이지 내용에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다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더 큰 사회 속에서 열여섯의 우리가 했던 이기적인 침묵을 하며 고뇌하지 않도록, 실패를 해도 안전한 가정 안에서 여러 경험을 통해 실패와 마주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 뭐 이미 호기심레벨 100인 아이라 해 보고 싶다는 걸 못하게 하던 엄마니 나만 잘하면 되겠네.



계곡물에 발을 담글 자유시간도, 오랜만에 초등 아이처럼 신나서 뛰어다니며 보물 찾기도, 캠핑의 꽃인 캠프파이어와 레크레이션도 다 끝나고 드디어 잘 시간. 이불도 펴고 적당한 자리에 누워 옆 친구와 얘기를 하는데 친구의 얼굴빛이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화장실 가고 싶어서"

"그럼 얼른 다녀와"

"귀찮아.."

"나도 화장실 가고 싶은데 우리 같이 다녀오자"

"그럼 니가 내 몫까지 다녀와주면 안되나?"


에휴..다 같이 한숨을 쉬고는 친구 등을 떠밀었다. 한밤중 숲 속의 화장실이 무섭기도 했지만 친구가 있어 다행이었고 이제 가뿐해졌으니 편하게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다가 바닥에 길게 늘어져 올라와 있던 나무 뿌리를 못 보고 걸려 넘어질 걸 안 넘어지려 안간힘을 쓰느라 원치 않던 몸개그를 보였다.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친구에게 부탁하며 텐트로 돌아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니 선생님께서 이제 불을 끄고 자라고 하신다. 그.런.데. 다섯 중 아무도 안 움직인다. 얘들아 벌써 자니? 방금까지 얘기했잖아. 누워있던 몸을 살짝 일으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랜턴을 꺼야 하는데, 여기저기 눈알만 구른다. 내가 끈다 내가 꺼.


"야 너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넷이서 동시에 말한다.


"귀찮아~!"



실패, 성공, 두려움?? 에라이 다들 공부만 할 줄 아는 바보 굼벵이들이었던 걸로!






*전따 : 인터넷 풀이는 왕따보다 심한 전교생이 따돌린다는 의미지만 저희 동네에서는 왕따의 반대적 의미로 한 아이가 반 전체를 따돌린다는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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