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너를 낳은 날

by 늘봄

설렜고, 지루했고, 기대됐고 불안했지만 감격스러웠다.




39주 0일 새벽 3시,

툭 하고 양수가 터지던 순간, 두려움도 있었지만 설렘이 더 컸다. 드디어 너를 만나는구나. 모두가 잠든 시각, 혼자 머리를 감고 말리고 준비를 끝낸 후 엄마를 깨우고 남편을 깨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진통은 열 시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없었다. 기다림이 지루해 발레 공연 영상을 보기도 했다. 무통 천국에는 가지 못했다. 운동신경만 죽였을 뿐 감각신경은 살아 날뛰었으니, 고통을 외면해 보자며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으리라. 그러던 중 자궁문이 7cm가 열렸다는 말에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분만실에서 들리던 산모의 비명 소리에 놀랐던 걸까. 7cm까지 열렸던 자궁문이 다시 4cm란다. 뭐 이런 일도 있나? 갑자기 아기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며 산소호흡기를 씌우고 효과도 못 본 무통주사도 촉진제도 모두 잠그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주고받는 간호사들의 눈빛과 말들에 불안해졌다. '엄마, 계속 이 상태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어요.' 어쩌란 말인가. 할 수 있는 건 심호흡뿐. 흐으읍,후.. 흐으읍,후.. 열네 시간이 지나 배 위에 따뜻한 무언가가 올려지던 순간 감고 있던 눈을 떴고, 손가락 두께만 한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아이가 보였다. 분명 같은 공간이었는데 다른 세상이었다. 감격이라는 단어는 충분하지 않았다.




딱, 그런 하루였다.

토요일 아침 6시, 남편도 아이도 잠든 시각,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쌀이 들어가는 밥을 먹겠다고 하여 혼자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하고 아이를 깨웠다. 먼저 출발해야 하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뒤이어 따라간 행사장. 들어서는 발걸음에 설렘이 따라왔다. 친구들과 선생님과 부스에 있는 아이를 확인하고 방해되지 않도록 다른 곳을 돌았다. 챙겨 간 책도 노트북도 손에 잡히지 않고 지루함을 느낄 즈음, 오후 1시였다. 점점 아이의 발표 시간이 다가오고, 부러 한 템포 늦게 아이가 있는 부스 근처에 가 서성거렸다. 아이의 친구들도, 지도해 주신 선생님도 아이가 성공적으로 해냈다며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했다는 말에 기대가 되었다. 몇 시간이 더 지나 심사가 끝나고 시상식이 열렸다. 총 150개 팀이 참여한 행사에 분야별 시상을 하는 동안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아주 작은 불안도 있었지만, 사실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이유였을 것이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방과 후에 남아 앱 개발에 시간을 보내고 온 아이는 피곤해하며 많지도 않은 집공부를 못 하는 날도 잦았고, 짜증을 내거나 저녁도 먹지 않고 잠들어 버리던 날들에 그럴 거면 그만두라고 몇 번을 협박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자신이 맡은 작업을 묵묵히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었다. 발표 전 마지막 2주 동안에는 마무리하던 작업을 다시 엎고 새로 코딩을 하고, 발표 대본을 외우고 수정하고 다시 엎는 모습들에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함께 잠 못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들에 빠져있다 두 손이 저절로 마주 잡히던 그때, 아이의 학교 이름이 들렸다. 초등부 최우수상이었다. 단상으로 올라가며 펑펑 우는 아이들의 모습이 시력이 좋지 않은 눈에도, 닦아도 다시 흐려지는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감격이라는 단어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저 자랑스러웠다.


KakaoTalk_20251223_012009371.jpg 수상하던 아이의 팀



아이는 항상 그랬었다.

첫아이라 걱정되는 마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라는 모습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듯 태담을 했고, 발로 엄마 배를 차지 말고 쭉쭉 밀라고 했던 말 그대로 한 번도 차지 않고 밀기만 한 덕에 갈비뼈는 아팠지만 깜짝 놀랄 일은 없었으며, 주문한 대부분의 모습으로 태어나 주었다.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때가 되면 당시의 과제들을 잘 수행해 주었고, 나보다 대담했고 나보다 용감했다. 그런 아이를 믿지 못했었다. 부족함을 먼저 보느라.


아이를 처음 낳던 날의 열네 시간과 같은 열두 시간을 보내며 다시 아이를 낳은 기분이었다. 이제는 나의 아기가 아닌 한 사람으로, 겉모습뿐 아니라 실은 속까지 주문한 모습대로 자라고 있음이 보였다. 아이는 아이의 속도대로 나아가고 있으니 불안은 내려놓고 믿자. 어차피 넌 잘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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