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Feb 14. 2024

셋이 출발해서 이렇게 둘만 도착했다.

아이리시 남편은 한국 입국비자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2년 넘게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전화가 왔다. 엄마가 넘어지셔서 일어나지 못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가끔 엄마가 넘어져서 보라색에 가까운 멍을 본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런 정도로 아프실 거라 생각하며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이제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지고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왠지 이러다 큰일 나실 것 같아 나는 남편과 상의해서 크리스마스 전날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끊어 한국으로 향했다. 우리의 사정을 잘 아는 산타 할아버지가 아이를 위해 하루 먼저 찾아온 덕에 아이의 기분은 무척 신나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지만, 왠지 마음이 무겁고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 같이 복잡한 것을 느꼈다. 그런 나를 대신해서 남편은 늘 그렇듯이 꼼꼼하게 여행가방을 챙겨서 차에 싣고, 느릿느릿 채비하는 나를 결코 채근하지 않았다. 심지어 공항으로 출발했다 왠지 여권을 놓고 온 것 같아 다시 집으로 차를 돌리자고 했을 때도 말이다.



 

그렇게 내가 늑장을 부리다 우리는 딱 1시간 20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지역의 작은 공항에는 항공사의 직원이 아니라 외주업체의 직원이 발권을 하고 있었다. 그냥 봐도 어제 막 일을 시작한 것 같은 직원이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누르며 물었다. “한국을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한데 서류를 보여주세요.” 내가 답했다. “우리는 한국에 자주 방문한다. 그동안 입국을 하는데 비자가 필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여기 자료에 외국인은 방문 비자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와 있어요.”

뭔가 불길함을 감지하고 나는 즉시 대사관으로 전화를 했고,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에 대해 한국 방문 비자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으로 변경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번 한국 방문이 다소 급하게 결정되면서 내가 예약과 방문 준비를 도맡겠다고 남편에게 말한 뒤 일처리를 하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대사관에서는 운이 좋으면 한 시간 안에 비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 비행기 이륙시간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직원은 무전기로 곧 비행기 문을 닫는다는 안내를 했다. 그때 남편은 결심하고 나에게 말했다. 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먼저 떠나라고.

 

가족이 함께 비행기를 탈 계획으로 싸 놓은 기내 가방과 백팩을 열어서 당장 나와 아이에게 필요한 전자기기와 비상약을 남겨두고, 남편은 반쯤 찢긴 종이가방에 자기 물건을 담고 가슴에 안아 들었다. 직원은 빨리 출국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와 아이는 남편과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누고 출국장으로 걸어갔다. 남편은 마지막 순간에도 단 한번 화를 내거나 나를 원망하지 않고, 그저 ‘무사히 잘 가. 걱정 마.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그 세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잠시도 걸음을 멈출 수 없었기에 남편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환승지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 그제야 내 옆자리에 있어야 할 남편이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아이가 당황할까 봐 나는 눈물을 꾹 참았다. 나는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긴 것인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 무엇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남편을 생각하자니 미안한 마음이 더욱 들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환승지에 도착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아침 셋이 출발했던 우리 가족의 성탄 트리가 있는 그 집, 우리 집에 남편이 덩그러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조금 더 신경 써서 준비를 했어야 했다. 만약 아침에 늑장을 부리지 않고 공항에 일찍 나갔더라면 남편이 비자를 받아 함께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만약에’라는 단어가 머릿속 가득 차 있었다.

 

남편은 연말이라 구하기 힘들었을 비행기 표를 구해 3일 뒤 한국에 도착했다. 자가 격리 기간을 제외하고 5일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편찮으신 장모님을 만나 뵙고 가야 한다며 한사코 표를 구해서 한국으로 왔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시리도록 부는 한국의 겨울바람을 맞고 걸으며 그날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고 해 주었다. 남편이 해 주는 용서 덕분에 나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보다 대신에 그 일과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좀 더 꼼꼼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결심은 다행히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는 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역시 당신은 운이 좋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