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영장에 도착해서 탈의실에서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나면 나는 대기석에 앉아서 아이가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레벨 1 수업에서 아이는 처음 몇 주 동안 물속에서 걷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 모습을 보며 좀 더 빨리 진도를 나가지 않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4주쯤 지났을 때 아이는 처음으로 킥판을 잡고 물 위에 몸을 띄우고, 또 발차기를 하더니 드디어 머리 전체를 꽤 오랫동안 물속에 넣어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대견해서, 샤워실에서 아이를 씻기면서 쉬지 않고 칭찬을 했다. 사실 아일랜드 바닷가 마을에 살면서 아이가 행여나 바다에 빠질까 노심초사하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아이가 수영을 배우면서 그런 위험에서 안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서 아이의 다음 수영 수업을 신청하기 위해 안내 데스크 앞에서 남편과 함께 줄을 서 있을 때였다. “여보. 당신도 수영강습을 해 보면 어때?”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초등학교 이후로 수영장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제안이 약간 당황스러웠다.
직원에게 성인 강습을 문의하니 현재는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아이가 수영강습을 듣고 있으니 그 가족은 수영강습 대기자 명단에서 우선순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잠시 뒤 '올 해의 직원'이 분명할 것만 같은 친절한 직원이 컴퓨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운이 좋게도 다음 주부터 성인기초반 수강을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때 나를 보며 윙크를 하는 남편의 머리 위에 “역시 당신은 운이 좋군!”이라는 말풍선이 뜨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지난밤에 남편에게 뜬금없이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노라 선언을 하기까지 했다. 정말 모든 상황이 수영강습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내 등을 떠미는 형국이 되었던 터라 나는 도저히 '노'라고 말할 수 없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나도 테스트를 받았는데 강사가 시키는 대로 몸을 띄우고 팔을 저어 나갔더니 레인의 삼분의 일 정도의 거리까지 한 호흡에 갈 수 있었다. 수영 강사는 내게 중급반에서 시작해도 좋겠다고 말했고, 그 후로 8주 동안 자유형과 배영을 배웠다. 시간이 흐르고 중급반 10명의 수강생들 중 나를 포함하여 4명이 상급반으로 진급했다. 빠른 성장세에 혹시 수영에 천재적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닌지 기분 좋은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로 내 수영실력이 상급반에서 배울 정도인지 스스로는 미심쩍은 마음이 더 들었었다.
한편, 아이는 이제 킥판 없이도 자유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영실력이 좋아지고 있었다. 어린이가 수영하는 얕은 물에서 이동해서 정식 수영장에서 수업을 들으며, 깊은 물에서 느끼는 두려움도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반해 나는 아이와 달리 상급반 수업을 시작한 뒤 예상했던 것처럼 고전하고 있었다. 상급반의 수강자들은 쉬지 않고 200m를 헤엄칠 수 있는 수준의 실력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겨우 50m 정도를 헤엄치는 내가 기존의 수강생들과 속도를 맞출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늘 남편에게 멈추지 않고 불만을 말하곤 했다. 어느 날 나의 계속되는 불평을 듣고 있던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엄마. 다른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엄마가 수영을 계속하는 게 중요한 거지. 엄마가 그랬잖아. 물속에서 재미있게 놀려고 수영을 배우는 거라고.”사실 이 말은 아이가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날,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해 했던 말이었는데, 아이는 그 이야기를 떠 올리며 다시 나에게 돌려준 것이었다. ‘맞아.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그날 이후 가까운 주말에 아이와 함께 수영장에 갔다. 날씨 때문인지 수영장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여유 있게 헤엄칠 수 있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자유형 시합도 하고,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은 장난감을 먼저 줍는 시합을 하면서 가벼운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웃느라 가끔 물을 먹기도 했는데, 그 모습마저 너무 웃겨 서로를 바라보며 낄낄거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물속에서 헤엄치며 노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생애 처음으로 알아버린 그날 이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수영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다시 중급반으로 돌아가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 내가 가진 속도대로 헤엄을 칠 수 있게 되니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니 그제야 물속의 고요함을 뚫고 나의 팔과 다리가 만들어내는 물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만약에 수영강습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이와 함께 한 그날의 즐거움을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상급반에서 그런 쓰라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와 함께 물속에서 노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인지 평생 깨닫지 못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가진 고유한 속도에 맞춰서 사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평화로운 일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