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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Feb 08. 2024

아들 첫 돌 케이크

아일랜드에서 아이의 첫 돌을 준비하며 케이크 만들기를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엄마가 아이의 첫 돌잔치에 입히라며 보내주신 한복은 100일 전 한국을 떠나 일찌감치 배편으로 아일랜드에 도착해 있었다.   “여보, 첫 돌에 잔치를 해야 하는데, 아일랜드 식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며칠 전부터 아이의 돌잔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생기기 시작한 터였다. “아일랜드 사람들도 첫 돌잔치를 해? 어떻게 해?” 내가 물었다. “특별히 첫 번째 생일이라고 잔치를 하는 것은 아니고, 생일파티를 하고 무엇보다 파티에는 케이크가 제일 중요하지.” 하고 남편이 대답했다. “케이크?!”



 

한국이었다면 OO 베이커리 같은 곳에 가서 돈을 주고 케이크를 샀겠지만, 아일랜드에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케이크를 직접 만든다. 한국 가정마다 밥솥이 있듯이 아일랜드의 모든 가정에는 오븐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생일 파티에는 케이크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했을 때, 첫 돌을 맞은 아이의 생일을 특별히 축하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렇다면 내가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케이크를 만드는 인터넷 동영상을 찾아보고, 어떤 주방용품과 재료가 필요한지 알아낸 뒤, 그날 바로 구입을 해서 멋진 케이크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설치된 오븐은 마치 1980년대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이 낡고 오래된 것이었는데 다행히 작동을 했지만, 청소가 필요해 보였다. 팔을 걷어 올리고, 비누거품을 내고 철수세미로 오븐을 한참 동안 닦아내자 아기를 위한 케이크를 만들어도 될 만큼 깨끗해졌다. 그러나 평소에도 요리를 할 때 화력이 약해서 음식을 만드는 데 시간이 꽤나 걸리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케이크를 만드는 동영상에서 정확한 계량과 오븐의 온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베이킹은 과학이다.’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연습 삼아서 케이크를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긴장한 탓도 있지만, 그냥 맛있게 먹고 말 케이크가 아니라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케이크라는 생각에 긴장을 하면서도 무척 신중하게 하나씩 단계를 해 나갔다.



어린 시절 엄마는 밥솥에 밥이 다 되면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십자가를 긋고 기도를 하면서 밥을 푸시곤 했다. 또 언젠가 시금치나물이 너무 맛있어서, 엄마께 어떻게 만드셨는지 물었더니 우리 딸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무친 것 말고는 다른 날과 다른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왠지 케이크를 만들면서 그날의 엄마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재료를 준비해서 음식을 만들고 또 식탁에 다 된 음식을 올려놓기까지 사랑을 담아 하셨던 모든 순간들이 온몸으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케이크의 기본이 되는 제누아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담은 뒤 흰자에 설탕을 넣고 레시피에 나와 있는 시간과 회전 속도를 정확하게 맞추어 거품기를 돌려 머랭을 만든 뒤 남아있는 노른자와 바닐라 에센스를 함께 섞고 가볍게 저었다. 그리고 밀가루를 에 치고, 버터와 우유는 실온에 미리 꺼내두어 너무 차갑지 않게 한 다음 천천히 녹여 미리 준비된 재료들에 함께 넣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재료를 케이크 틴에 넣고 예열된 오븐에 조심히 넣었다. 사실 오븐의 작동이 시원치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케이크를 만드는데 단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서 모든 과정을 더욱 심혈을 기울이게 했던 동력이 되기도 했다.



25년 같은 25분을 지나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븐을 열었다. 뜨거운 수증기와 함께 고소한 제누아즈의 냄새가 퍼져 나왔다. “성공이다!” 나는 기쁜 마음에 만세를 외치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제누아즈 만들기를 익숙하게 한 뒤, 나는 제누아즈를 잘라 그 사이에 생크림과 딸기를 넣은 빅토리아 스펀지 스타일의 케이크를 드디어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빅토리안 스펀지케이크_BBC food


이제는 매년 아이의 생일이 다가오면 무슨 케이크를 먹고 싶은지 먼저 물어보고 준비를 해 둘 수 있을 만큼 몇 종류의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매년 다양한 생일 케이크를 만들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나는 케이크를 만드는 동안 마음속으로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소리 없이 외치기도 하고 또 괜히 아이 마음을 아프게 했던 지난 1년 중의 어느 날들을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만들기도 한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그리고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일은 내게는 의식과도 같은 일이 되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는 늘 엄마로서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매끼 아이의 음식을 준비하고, 학교에 가져갈 도시락을 싸고 또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아이의 배를 채우고 미소를 채우는 순간이 되면 내가 느꼈던 그 부족함이 조금씩 상쇄되는 것 같아 괜히 안심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또 아이의 케이크를 만드는 일은 엄마로서 내가 하는 매일의 일상이면서 동시에 아주 특별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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