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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받은 여행자 Jul 20. 2024

엉망진창인 채 축복받은 나의 여행

엉망진창인 채 축복받은 우리의 여행

  

   언젠가는...이란 말을 엄마는 항상 말씀하셨다.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거야. 엄마에게 현재는 없었다. 항상 그 언젠가를 위해 사셨던 거다. 불안전하고, 불완전한 상태에서 항상 안정되고, 자신이 꿈꾸던 완전한 순간을 기다리고, 바라면서 사셨다. 그러나 아무래도 엄마는 계속 그 순간을 진정으로 못 느끼실 거 같다. 나의 엄마는 작년에 조울증 진단을 받으셨다.

   엄마는 항상 힘든 시간들을 견디며 사셨다. 어릴 적 내 눈에는 분명히 그렇게 보였다. 울어야 할 상황도 많았고, 엄마는 어쩌다 그렇게 특이한 어린 시절을 겪은 안쓰러운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항상 무너지지 않고, 우뚝 서서 버티고 있는 바위산 같았다. 엄마는 나의 산성이었고, 바람막이였고, 안전지대였다. 그러나 내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서 엄마의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당하고 겪는 일들 중에 엄마 스스로 자초해서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증거들이 나타났다. 엄마가 변한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는 나의 가치관과 상식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같은 종교의 믿음을 가졌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과 엄마의 하나님은 다른 분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완전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온 힘을 쏟아내면서 억지를 부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엄마는 점차로 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신앙관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엄마의 성격 문제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냥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받아들이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사이좋은 모녀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모른 척하고, 내가 보고 싶은 엄마의 모습에만 집중했었다. 그러던 사이에 시간이 흐르고, 내가 보고 싶은 엄마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보기 싫고 낯선 그녀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렇게 엄마가 낯설게 느껴져가는 사이에 나는 아버지와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비록 결혼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는 오빠와도 가까워졌다. 엄마만 혼자이고, 우리 셋은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의 중심은 항상 엄마였다. 엄마에 대한 걱정과 엄마가 항상 저지른 일들을 처리하느라 우리는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돈독한 부녀사이가 아니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나이가 들면서 나는 아버지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고,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거의 매일 전화 통화하면서 나의 일상적인 것들부터 다른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된 일까지 다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지금 나의 가장 속 깊은 친구이다. 엄마는 우리 셋을 이렇게 꽁꽁 묶어주고, 혼자서 외롭게 허무한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손을 잡고 당겨주려 해도 뿌리치고,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절대 맞이할 수 없는 세상으로 가는 꿈만 꾸고 있다. 엄마는 아프구나, 오래 전부터 아픈 거였다. 그래서 나는 너무도 뒤늦게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갔다.

  참 이상하다. 난 엄마를 통해서 세상이 얼마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를,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건 원망할 게 아니고, 굳이 의식하며 살게 아니라는 걸, 신은 나에게 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약할 때 강하게 힘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걸 외면하고 다른 것들을 따르면서 살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딸이었기에, 많은 것을 받고, 배우고 살았다. 물론 중요한 몇 가지는 세부적으로 제대로 보고 배운 게 없다. 경제적인 면과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이다. 그러나 난 그래도 엄마를 탓할 이유가 없다. 그건 이제 내 몫이다. 난 내가 못하는 것들을 스스로 노력해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그 믿음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모른다.

  엄마에게 가끔 이야기한다. 누구나 다 엉망인 채로 살아가는 거야, 완벽한 삶이 어디 있어. 엄마는 이런 말을 듣고는 그래도 자기는 늘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말한다. 엉망진창인 채로 살아가다가 어떤 순간 완전하고, 무언가 더 이상 바랄게 없다는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만이 있는 거다. 그 순간이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거다. 완벽한 것은 없다. 엉망진창인 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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