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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정 Nov 01. 2023

성대 결절 직전입니다.

장애가 틀린 건 아니잖아

젠장. 목이 아프다. 아니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성대가 부어서 성대 결절 직전입니다. 항생제 처방 할 테니 드시고 그동안은 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이미 감기로 병원약 복용한 지 3주 차. 이젠 끊어도 될 판에 계속 약이라니 그것도 항생제를. 내 몸 상태를 예측할 수 없다.


 추석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말이었다. 추석은 언제나처럼 차례 음식 준비로 분주했고, 시부모님과의 4.19 공원나들이라는 특별미션까지 마쳤다. 학원 숙제 끝낸 아이들의 마음이 이런 건가. 긴 연휴를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 알뜰하게 잘 보낸 내가 기특한 마음에 곤한데, 곤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게 축 늘어진 몸의 회복이 더디게 느껴졌지만 곧 회복되겠거니, 하며 집안일도 잊은 채 평화로운 주말을 보냈다.

419공원 어머님 아버님과 즐거운 나들이

 주말을 지나 또 한 번의 공휴일, 한글날. 아이 축구팀에서 일 년에 한 번 있는 축구 페스티벌 하는 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피곤함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음에도 바람도 쐴 겸 따라나섰다. 출발할 때 비가 제법 내려 못하게 되는 거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 새 비가 그치고 개막식 후부터는 맑은 하늘이 계속되었다. 지난 주말을 꼬박 쉰다고 집 안에서만 있어서인지 드넓은 하늘과 제법 물든 가을 단풍은 내 속을 탁 트이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마냥 행복했다. 아이가 속한 팀에서 골을 넣어대고 뒤에 남아 있는 경기로 갈수록 아이들의 몸이 풀려서인지 경기를 더욱 잘 치러냈다. 이 얼마만의 희열인가. 여느 올림픽 경기보다도 열렬히 응원했고 몸을 사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몸살이 왔다.

그야말로 드높은 가을하늘과 축구경기에 열정 가득한 아이들

 설상가상으로 아이에게 심한 감기가 왔다. 아이도 피로가 쌓여있었나 보다. 혹시 체력이 약한 나를 닮은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은 좀 안 닮아도 되는데 괜스레 미안하다. 자연스레 안방은 기침을 연신 해대는 나와 아이를 아빠와 가르는 격리실이 돼 버렸다. 아이는 학교에 한 주를 통으로 결석하고 아이 간호하는 사흘 째 되던 날, 목에 통증이 온 것이다.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는지도 모른 채 잠든 영향 때문인 것 같다. 로나 때도 이 정도로 아프진 않았는데 너무 아프다.


 아이가 성대 결절 직전이라는 말에 많이 놀랐는지 진료실에서 엄마가방부터 챙긴다.

 “내가 들어줄게.”

 괜찮다고 했지만 굳이 자기가 들겠다고. 또 주사 맞고 나오니

 “엄마, 괜찮아?”

 어른처럼 걱정해 준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와 집 앞 중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씩씩하게 주문도 하고 수저도 챙겨준다. 식사 다 하고 나와서 물었다. 코가 닿을 만큼 가까이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기에

 “엄마와 대화하는 모습이 사장님이 보시기에 엄마가 장애가 있는 걸로 보였겠다. 장애 있는 엄마로”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장애가 틀린 건 아니잖아. 장애인들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뼛속에서부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난 장애를 부끄럽고 눈치가 보이는 것으로 여기는 엄마였구나.


  저녁 가족 큐티 시간에 아이가 마음을 나누며

 “엄마, 아까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려앉는 줄 알았어. 그리고 사실 무서웠어.” 병원에서 아이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챙겼어야 했다. 에코백가방 손잡이를 왜 그리 꽉 잡 고 앞서 갔던지 이해가 되었다. 많이 놀라고 무서운 모습을 정작 엄마 앞에서는 보이기 싫었으리라. 3년 차 초등 맘 이면 중급정도는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난 아직 초급 단계다.

사진출처: nienke burgers, Unsplash


 기침이 심다. 한번 시작한 기침은 끝날 줄 모르고 가슴을 울리며 아프게 한다. 폐에는 이상이 없는 거겠지. 아프니 쓸데없는 과한 걱정만 는다. 세상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 목소리만 안 나올 뿐인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귀도 멍해진 것이 물속에 있는 것 같다. 이번 주만 지나면 이제 그동안 아파서 못 갔던 도서관 수업도 듣고 미뤄왔던 일들을 좀 해야지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보이지 않는 터널로 들어온 기분이다. 어디로 가야 되고 종착점이 어디인지 보이질 않는다. 컴컴하다. 두렵다. 기침을 한 번이라도 빨리 멈추게 하고자 애꿎은 가슴만 내리 친다. 목소리 돌아올 수 있는 거겠지. 엊그제 멘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인생에 나쁜 일은 없다 나쁜 일이 오히려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나에게 다가오는 나쁜 일도 버릴 것이 없다고. 신기하다. 지금이 그렇다. 또한 선생님께서 권해 주셨던 ‘삶의 순간을 메모하기‘가 너무나도 어렵게만 느껴지고 번거로운 일이라 생각되었는데, 자연스레 나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공교롭게도 인생의 끝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 이번 주일예배 설교 말씀이었다. 아이가 아프다며 괴로워할 때 정작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없다. 막막다. 아이는 울렁거린다고 안방과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지만 타이밍은 안 맞았다. 아이가 안방에서 나오는 길 이미 폭포수처럼 쏟고 있는 구토를 마주 서서 바라보만 할 뿐. 나보다 더 당황해하며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며 미안해하는 아이를 뒤로 한 채 바닥을 닦다. 아직 정상적인 목소리를 못 내고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없다. 다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계신 이 길을 꽉 잡고 가야겠다. 호된 감기로 초등맘 3년 차의 가을은 이렇게 지나고 있다.



                 상위 사진 출처 : kevin jiner,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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