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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Dec 17. 2022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디며

첫 감기

아기 몰래 바깥을 보며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글을 적지 않은 사이 아기는 언제나처럼 불쑥 자라 물건들을 집으며 일어서는 법을 터득했으며 물건에 의지한 채 발을 옮길 줄도 알게 되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8개월. 직립보행을 향한 인간의 불타는 의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며 보낸 275일.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자란 아기는 이제 엄마 아빠를 남들과 확연히 구분하게 되었고, 대상이 보이지 않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영영 다시 볼 수 없을 것처럼 나를 찾는다.


거실에 두면 혼자 놀잇감을 가지고 잘 놀아서 틈틈이 내 밥도 해 먹고, 이유식도 하고, 설거지며 빨래며 집안일을 했었는데 이제 그 여유는 사치스러웠던 처녀 시절만큼이나 아득히 먼 이야기가 됐다.


“네가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좋아하겠니?”


언젠가는 애인 생일은 챙기고 내 생일은 까먹을 너. 친구들과 여행 간다고 엄마는 아빠랑 놀라고 할 너. 그때의 너는 네가 설거지하는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제발 나를 안아달라고 했던 너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러니 그냥 이 시기를 즐기자고 생각한다.




지난날에는 지구가 멸망할 기세로 눈이 내렸다. 눈발이 약해지자 나는 서랍에 고이 모셔둔 현금 몇 푼을 저금하기 위해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동네 은행으로 향했다.


무섭게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현금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고, 금리가 오르고 있으니 현금을 서랍에 둔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느껴지는지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어 길을 나섰다.


눈발이 더 거세졌던 은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 문제였던 것 같다. 유모차에서 잠든 아기를 현관에 둔 채 깨길 기다렸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아무튼 아마 그날의 잘못된 판단들이 쌓여 아기가 아픈 것 같다.



아기가 첫 감기에 걸렸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열이 난다. 옆에 함께 누워 존재를 확인시켜주면 줄곧 잘 자던 낮잠은 안아주지 않으면 잘 수 없게 되었고 바닥에 내려두면 보채는 날들이 사흘째 지속되고 있다.


두 번째 방문한 병원에서는 콧물이 귀로 넘어가 중이염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고, 설상가상으로 폭닥하게 눈이 쌓인 소아과 입구에서 내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아기 머리를 바닥에 찧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아.


우는 아기보다 더 시끄럽게 우는 엄마 때문에 소아과 원장님도 대기실로 뛰쳐나왔다.


“엄마가 일단 진정을 해야 해요”


정신을 가다듬었다. 괜찮을 거라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나는 엄마라는 사실을 지각하려고 노력했다.


“엄마. 엄마.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엄마가”


내가 진정하니 아기도 금세 나를 따라 울음을 그쳤다. 기특했다. 집에 돌아오니 두시. 약을 먹이고 아기띠를 맨 채로 아기를 품에 재우면서 아직 한 끼도 먹지 못했음을 알아챘다.


왜 미끄러운 신발을 신었지? 차에서 내릴 때 왜 아기띠를 하지 않았지? 모자라도 씌웠다면 좋았을 텐데. 크게 다쳤으면 어쩌지? 서울대 못 가면 내 탓이다. 여전히 서울대 타령 지긋지긋하네. 아기 탓 안 하게 되니 오히려 좋다.


몽글몽글 솟는 눈물을 소리 없이 닦아내며 아기를 한 번 꽉 안았다. 항상 최선을 다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어왔기에 최선을 다해도 부족하기만 해서 후회와 반성이 반복되는 이 삶이 익숙지 않다. 이제 엄마 티가 많이 난다고 생각했건만 엄마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빵을 가득 사들고 집에 돌아온 남편. 빵이 위안인지 남편이 위안인지. 품에 잠든 아기가 깰까 조용히 빵을 먹으며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려 그저 남편의 아내이고만 싶다는 생각이 들던 무렵.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깬 아기가 돌아온 아빠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에 죄책감과 부담감을 앞마당에 쌓인 눈처럼 쓸어버렸다.


그 미소를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윤이의 엄마였던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실수투성이 초보 엄마임에도 아주 오랜 세월을 거슬러 우리가 함께 해온 것만 같다.


아기 몰래 쉬는 한숨보다 아기 앞에서 짓는 미소가 훨씬 많다는 것을 잊지 말 것. 최선을 다한다고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엄마가 될 필요는 없다고. 그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사라지지 않고 있어 주겠다고 다짐하는 하루.


엄마가 더 잘할게.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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