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지식을 위하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읽고...

by 레이니아

서점을 찾았다. 지하철역과 붙어있어 제법 접근성도 높고, 대형 서점이라 이것저것 구경할 것도 많았다. 종종 약속 장소로 삼았던 곳인데, 이제는 서점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오랜만에 들렸다. 필자가 서점에 가서 한번쯤 둘러보는 곳이 베스트셀러 코너다. 베스트셀러 순위는 이미 출판사의 압력과 서점의 이해관계가 맞아 나름의 기준대로 정렬된,

잘 팔려서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베스트셀러라서 잘 팔린다.

는 이야기를 훌륭하게 증명하는 곳이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보면 꽤 재미있는 요소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최근 필자의 흥미를 끈 책을 꼽자면, 이미 두어 박자 늦었지만,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이란 책이다. 제목에 담긴 의미가 굉장히 도발적이라 정확한 제목은 흐릿하나 담긴 의미는 뚜렷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책을 읽고 간단히 남겨본 서평따위 쯤 되겠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팟캐스트를 다른 참여자와 함께 운영하는 '채사장'이란 작가의 책이다. 지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알아둬야 할 일종의 지식 가이드이며, 1권과 2권으로 나뉘어 여러 파트를 다양하게 훑어본다. 독특하게도 이 책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발췌독을 권하지 않는다. 생각의 연결고리를 단선형으로 나열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이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다양한 주제를 이렇게 묶을 수 있는 능력이 놀랍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책 자체가 '얕음'을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책에 담긴 내용은 그리 깊지 않은 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작은 파트 하나만으로도 이 책 보다 두 배는 두꺼운 책이 나올 만큼 중요한 주제가 등장하며,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이 주제를 가볍게 건드리고 지나간다. 객관적인 시각인지는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개인적인 가치관을 반영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쉽고 가볍게 읽히도록 풀어썼다는 점은 좋다.


다양한 주제를 속성으로 둘러본다는 점,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있는 실제 사례에 대입하는 방식에서 필자 역시 놓쳤던 부분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몇몇 문장은 따로 저장해두기도 하였다.



지적 대화

이 책의 이름은 이미 알다시피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은 '지적 대화'를 위한 준비물이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당연한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지적 대화란 무엇인가?

지적 대화가 그저 단순히 교양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라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적 대화가 고도의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통찰력 있는 대화를 의미한다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깊이가 부족하여 결국, 효과적으로 아는 척하는 방법을 서술하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이 책이 '좋은 책'이라 가정한다면 책에서 의미하는 '지적 대화'란, 교양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가 지적 대화라는 전제로 구성된 책이라 유추해볼 수 있다.


Roosevelt and Churchill in conversation. Copyright Zorba the Geek


그러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문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우리 사회에서 논하는 '지적 대화'가 그저 실은 교양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점을 짚고 나온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회가 '얕음'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에 발맞추어 나온 책이며, 이러한 이유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본다. 문제가 있다면 '지적이다.'는 요소를 추앙하며, 그러면서도 '얕음'을 선호하는 사회가 문제다.



바이블인가 가이드인가

어디선가 이 책의 논조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진보 쪽으로 편향되었다는 평가를 보았다. 그런데 필자는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허울뿐인 지적 대화를 추앙하는 기존의 가치관을 확대 재생산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었다.


위와 같은 우려는 책을 비판 없이 읽고 자신의 생각을 갖지 못할 때 현실이 된다. 모든 책에는 필연적으로 작가의 가치관이나 작가의 환경이 반영된다. 이를 비판적으로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비판적으로 읽지 못하고 책을 절대적 지식으로 맹신하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읽기'와 '독서'를 별도의 과목으로 배우는 이유가 주어진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해독하는 능력을 키워, 문제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독자의 생각을 넓혀줄 가이드가 되어야지, 절대적 지식을 담고 있는 바이블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책이라도 그 자체가 절대 진리가 되어선 안 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문제 제기를 하거나 서평을 찾아 읽고, 책에 대해 평가를 하는 사람은 책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 책을 가이드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책의 바이블화(化)를 염려하고, 그 염려를 다시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읽는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널리 읽히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글을 '찾아서' 읽을 정도의 사람에게 이 글이 필요한 글일리도 없다.


시대는 바뀌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가 우리 주변을 휩쓸고 지나간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한 작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필자는 우리가 '지적인 가치'를 우위에 두면서도 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얕음을 환호하는 환경을 염려한다. 필자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이미지 출처

"A miniature Bible" by Malcolm Lidbury(aka Pink pasty). - https://en.wikipedia.org/wiki/Bible#/media/File:Bible_and_Key_Divination.jpg

"Roosevelt and Churchill in conversation" by Zorba the Geek. - http://www.geograph.org.uk/photo/875991

책 이미지, 한빛비즈. - http://www.hanbit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