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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과 주식시장

불확실성의 두 가지 얼굴

축구와 핸드볼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규칙을 갖고 있다. 둥근 공을 상대편 골대에 넣는 것. 한 골 넣으면 얻는 스코어는 1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 숫자도 비슷하다. 그러나 손과 발로 한다는 차이만 제외하면 매우 유사한 스포츠임에도  축구는 핸드볼의 압도적으로 더 인기가 많은 스포츠이다.



축구와 핸드볼의 차이, 곧 손과 발의 차이는 인간이 통제할 만한 여지가 있는 불확실성의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을 손으로 던졌을 때와 발로 찼을 때 예상하는 곳에 공이 도달할 성공률은 크게 다르다. 이는 "내 맘처럼 안 되는 정도"가 축구가 핸드볼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랜덤적인 요소가 있을 때 더 매력을 느낀다. 내가 모두 다 알고, 100% 컨트롤 가능한 대상을 즐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이로 인한 경기 전반적으로 존재하는 불확실성의 차이가 곧 축구와 핸드볼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그렇다면 인기가 축구 못지않는 농구는 어떤가? 이번엔 손과 발이 아니라 골대의 크기에 그 이유가 있다. 야구는 어떤가? 이번엔 손가락이 아닌 곡면의 배트가 불확실성을 증대시킨다. 골프는? 손과 타점 사이의 긴 거리가 불확실성을 증가시킨다. 불확실성이 작은 경기의 경우 게임의 양상이 예측 가능한 지루한 것이 된다.


게임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는 98년도에 출시되었고, 이후 약 12년 뒤에 스타 2가 출시되었다. 스타 2는 기존의 스타 1의 게임 시스템을 대부분 그대로 계승했고 개선된 그래픽과 훌륭한 UI 편의성을 업그레이드되어 출시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타 2가 스타 1 보다 더 많거나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로 흘러갔으며, 스타 2  E-sports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있지만 역시 불확실성의 차이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 게임의 편의성 증대를 위한 여러 요소들이 게임의 불확실성을 축소했고, 사람들은 경기 양상이 쉽게 예측되는 게임을 외면했다.


학술 쪽에서 이런 예를 찾아보자. 불확실성이 강력한 행동 동기가 된다는 실험인 유명한 ‘스키너의 실험’이 있다. 쥐에게 다른 패턴으로 먹이가 나오는 상자를 제공해 주고 어떤 경우에 손잡이를 더 많이 누르는 지를 실험한 것인데 상자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의 다른 패턴을 갖는다.   


(A) 손잡이를 누르는 것과 상관없이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먹이가 나온다.

(B) 손잡이를 누르는 것과 상관없이 불규칙한 시간 간격으로 먹이가 나온다.

(C) 손잡이를 누르면 반드시 먹이가 나온다.

(D) 손잡이를 누르면 불확실하게 먹이가 나온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손잡이를 누르는 횟수는 (D) > (C) > (B) > (A)와 같았다. 중요한 건 (C) 보다 (D)가 쥐로 하여금 손잡이를 더 많이 누르게 했다는 것이다. 쥐에게 원래 먹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지만 박스와 손잡이를 통해서 그 무엇인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비단 쥐에만 해당되지 않고 월등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모바일 게임에서 소위 가챠(상자 까기)가 발생시키는 어마어마한 매출은 우리 인간에 대한 스키너의 실험을 보는 것 같다.


정리하면   

(A)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B) 더 정확히는 불확실성을 제어하는 과정을 즐긴다.

(C) 애초에 불확실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B)의 여지가 처음부터 없다.


인간은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과정 (혹은 본인이 불확실성을 통제한다는 착각)에서 강력한 쾌감을 느낀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영향을 끼치는 모든 변수에 대한 정보를 습득 가능하며 모든 인과관계를 순간적으로 파악하여 완벽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를 우리는 아마 전지전능하다, 혹은 신이라고 부를 것이다. 불확실성을 통제해 가는 여정은 신의 영역으로 향하는 우리 인간들의 선천적으로 지닌 동경이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음에 좌절하는 운명의 존재가 인간이 아닌지. 그것이 신의 영역에 진입하는 길목이든, 도박에서 오는 짜릿함이든, 무엇이든 간에 좋고 나쁨의 거리가 먼 불확실성의 영역에서 인간은 무언가에 이끌려 헤엄친다.


반대로 불확실성이 해소될 여지가 애초에 부족한 경기, 베팅에서는 지루함을 느낀다. 정상적으로 초인적인 반열에 있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행복은 상대적으로 다가온다. 마냥 행복한 일의 연속보다는 위험할 뻔했던 순간으로부터 찾아온 반전의 행복에 더 행복감을 느낀다. 우리가 대박!이라고 외치는 순간이 언제인가? '불확실'이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확실'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번에는 본디 목적인 금융의 시각에서 는 불확실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금융공학에서 역시 변동성은 제어되어야 하는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금융 지표 중에서 펀드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잘 운용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샤프 비율(Sharp-ratio), IR(Information ratio)의 경우 분모에 변동성(volatility)이 위치함으로써 변동성이 낮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불확실한 변수의 홍수인 금융시장에서 이를 잘 제어했는지를 중요한 평가요소로 삼는 것이다. '리스크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는 어떤가? 위험을 얼마나 감내했는지에 따라서 수익률을 보상받아야 한다는 관점이 금융공학 중심을 관통한다.


반면에 금융공학이나 주식시장에서 사람들이 불확실한 대상을 '선호'한다는 내용은 잘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국의 주식시장을 보자. 개인투자자들은 삼성전자나 현대차와 같은 안정적인 대형주보다는 앞으로의 수익률이 출렁일만한 소위 잡주에 관심을 갖는다. 이를 트레이딩 관점에서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해보면 변동성이 높은 주식에서 특별한 수급이 발생되고 이를 주가 상승의 신호로 간주하여 미리 포착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필자는 실제로 그렇게 시스템 트레이딩을 운용하고 있다.)


불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투자자의 방식이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특히 개인투자자들의 영역인 중소형주 유니버스에서는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허구헌날 "가즈아"와 "영차" 외치는 투자자들로 가득 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변동성을 좋아하고 그것은 그 주식의 수급으로 연결된다. 계량 투자를 함에 있어서 불확실성은 요리를 위한 하나의 훌륭한 재료가 되며, "불확실성의 선호"는 또 다른 불확실한 숫자들로 표현되며 만약 그것이 반복될 경우 통계를 통하여 "덜 불확실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부분적으로 확실한 부분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짜릿한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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