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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돌아온 친절

by 동민

힘든 한 주를 마무리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떠오르는 관계들을 돌아보는 산책 길.

어릴 적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배려라는 단어가 문득 무겁게 느껴진다. 말 한마디를 건네기 전에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혹시나 상처가 될까 곱씹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마치 정수기의 여러 필터를 거치듯, 생각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야 입 밖으로 나온다. 상대의 기분, 상황, 맥락을 모두 고려하다 보면 대화는 늘 반박자 늦어진다. 그렇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익숙해졌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려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대화 속에 숨은 의도를 읽으려 했고, 표정 속에 담긴 진심을 이해하려 애썼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 드는 것은 때로 지나친 자만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마음을 열고 다가간 사람들에게서 더 큰 상처를 받았다. 편안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한발 양보하고, 그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상대가 너무 편해진 탓일까. 아무 생각 없이 내뱉어진 말들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이런 순간들은 자주 찾아온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들에겐 별것 아닌 감정 표현이었겠지만, 가끔씩 나에겐 생채기로 남는다. 자신의 주장을 위해 상대를 무시하는 말들, 관계에 호소하는 일방적인 부탁들, 거절하면 돌아오는 서운함의 표현들. 이런 순간들이 쌓일 때마다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너는 편한 사람이라서 좋아"라는 말이 칭찬이 아닌 만만한 사람 취급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시간과 마음을 당연하게 여겼고, 작은 거절에도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한때는 '내가 더 이해하고 맞춰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구나'라는 쓴맛으로 남았다.


반복되는 실망 속에서 깨달았다. 무조건적인 친절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대를 위해 세웠던 방어막이 결국 나를 향한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때로는 강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불편한 상황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 상처로 알게 되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값비싼 대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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