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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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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이모 Nov 12. 2017

사랑한 건 잘못이 아니니까요

깊은 밤-. 현관 앞에 나와있는 여자. 그녀의 이름은 헬렌 켈러. 그녀는 지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지만 그 사람의 발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오길,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나를 향해 손 흔드는 그 남자의 실루엣이 보이길 바라고 또 바라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분명히 해뜨기 전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는데, 왜 오지 않는걸까.  어둠보다 더 캄캄한 기다림이 헬렌 켈러를 에워쌌고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다. 결국 그녀를 데리러 오기로 했던 남자 피터 페이건은 날이 밝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헬렌 켈러는 그 집을 떠나기 위해 밤새 서성이던 현관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야 했다.  

30대 중반이 된 헬렌 켈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던 스물아홉 살의 피터는 왜 그녀를 만나러 오지 않았을까. 그날 밤 부모님의 반대를 피해서 어디 멀리 도망가자더니 왜 안 왔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피터가 오지 못한 이유는, 그녀의 기다림보다 훨씬 무겁고 두려운 것일까.

그럼에도 헬렌 켈러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피터를 떠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짧은 사랑은-,

내 삶에서, 기쁨이 넘치는 작은 섬으로 남을 거예요.

사랑한 건, 잘못이 아니니까요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사랑하는 사이에 나누었던 약속 중에 많은 부분들이 바람결에 날아가버린다. 한 사람은 기다리고 한 사람은 잊어버린 채 사라져 버린 맹세와 다짐들. 한 사람은 슬프고 한 사람은 미안하고, 서로에게 가서 닿을 수는 없는 두 마음으로 나란히 걸어갈 지라도, 사랑의 순간은 우리 인생에서 작은 섬처럼 남아있다.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사랑은 사랑이고, 사랑한 건 잘못이 아니니까.  



* 남의 사랑, 한 줄 요약

: 설리반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기적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았던 헬렌 켈러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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