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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MEE Jun 23. 2021

상대방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사회를 꿈꾼다.

독립영화 <콩나물> 리뷰

시아버지의 제사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부엌에는 동서 셋과 큰동서의 딸 보리(김수안 분)가 함께 등장한다. 명절에 흔히 볼 수 있는 음식 준비 풍경이다. 며느리들의 대화가 오가며 그들이 웃으면 보리도 따라 웃는다. 그러던 중 생전에 시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콩나물이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손아랫동서가 보리에게 심부름을 시키자고 제안하지만, 엄마(김소진 분)는 아직 유치원도 혼자 못 가는 어린아이라며 애 취급한다. 보리는 자존심이 상해 “엄마, 나 갈 수 있어!”라고 반박해보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바쁜데 정신없다며 들어가 있으라고 한다. 자존심이 상한 보리는 작은 지갑과 가방을 야무지게 챙겨 콩나물을 사러 시장을 나서고 동네 여행이 시작된다. 보리의 첫 여행이었다.


  윤가은 감독(연출/시나리오)은 2013년 작 <콩나물>을 통해 보리의 시선으로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이웃의 모습을 담아냈다. 2014년 3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인 최우수단편상을 수상하며 신예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2016년 <우리들>, 2019년 <우리집>이란 작품을 통해 어린이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와 따뜻한 색감의 영상미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아이들의 세계를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이야기로 2019년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3년  <콩나물>  |  2016년  <우리들>  |  2019년  <우리집>


  다시 <콩나물>로 돌아가 보자. 보리는 어른과 열린 마음으로 교류하고 싶다. 아이들이 뛰노는 시끌벅적 놀이터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도움을 받았으면 응당한 보답을 할 줄 안다. 작가 김소영은 ⌜어린이의 세계⌟ (사계절)에서 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보리 엄마는 친척들 앞에서 유치원 가는 길도 잘 모른다고 아이의 품위를 깎아 내린다. 부모들이 아이 앞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작가는 독서교실을 통해 만나온 어린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린이의 세계를 보여준다. “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음만으로 되지 않으니 나도 보고 배우고 싶다.”라고 고백한다.


  가려는 길이 공사로 막혀 바리케이드 밑으로 통과하려는 보리에게 호통치는 것보단 조금만 시간을 내어 어린이의 시각으로 안내해줄 수도 있다. 또한 길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무심하게 지나치기보다는 눈높이를 맞추고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더위에 지친 목마른 아이가 물인 줄 알고 막걸리를 마시고, 취기에 재롱을 부리게 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간식과 쉼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고유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의 예의를 지키는 세상은 더 따뜻하다. 다만, 아직 배울게 많고 자라나는 시기이기에 그만큼의 배려가 먼저 필요하기도 하다. 존중과 배려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에 처음, 집 밖으로 홀로 떠난 보리는 콩나물을 사서 집으로 잘 돌아올 수 있을까? 상영시간 20분 내내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콩나물
Sprout , 2013 제작
한국 | 드라마 외 | 전체관람가 | 19분 
감독 윤가은 출연 김수안, 김소진, 오동주, 정옥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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