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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Dec 06. 2019

리스본에서 만난 요정은 수염이 있었다

중년의 장발이었다


도망자와 여행자 그 사이 어디쯤


2010년 2월 24일 새벽 5시, 스물일곱의 나는 저승사자처럼 시커먼 옷과 목도리로 중무장하고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스스한 몰골에 그늘진 얼굴이 여행을 앞둔 사람이라기보다는 도망자 같았다. 실제로 나는 도망치는 중이었다. 부모로부터, 현실로부터,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첫 직장 퇴사를 결심하고 곧바로 끊어둔 포르투갈 행 비행기 티켓이었다. 환불이 불가능한 대신 저렴한 가격에 구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생애 첫 유럽 여행을 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은 참 고약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는지 여행 일주일 전 시골집에서 전화가 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집이 망했다는 소릴 들었다.


철이 들면서부터 집안 형편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빴거나 더 나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사채업자부터 차압딱지까지 골고루 보며 자랐다. 익숙한 우울이 다시 찾아왔다. ‘지금 수중에 있는 몇십만 원이라도 시골집에 보내줘야 하나’ 두 시간을 고민하다 결국 보내지 않았다. 그 돈은 일주일 뒤부터 쓸 포르투갈 여비였다. 집이 그 지경인데도 나는 기어코 여행을 갔다.


이 상황에 여행을 가겠다니, 나와 왕래하고 지내던 K 이모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지금이 좋은 때는 아니지 않니?” 나는 이모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말했다. “저도 알아요. 그런데 환불이 안돼서요.”


환불이 안 되어도 취소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공간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그런 곳으로 순간 이동하고 싶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에 가보고 싶다거나 파두(구슬픈 음색의 포르투갈 민요)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이미 박정한 현실에 밀려 사라졌다. 그냥 도피처가 필요했다. 도착지가 알래스카라도, 쿠스코라도 상관없었다.



여행자가 썰물처럼 빠진 호스텔 8인실. 나가고 싶고 나가기 싫었다.


2010년 2월 25일 오전 11시, 리스본 도착 다음날. 나는 아침 7시에 8인실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씻고 준비를 마쳤지만 세 시간 넘게 방문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던 여행을 꿋꿋하게 떠나온 것 까지는 좋았다. 전날 캐리어를 끌고 저녁 늦게 호스텔에 도착해서는 전 세계 여행자들과도 맥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누기까지 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서 진짜 여행이 시작되니 뒤늦은 자괴감이 몰려왔다. 부모는 당장 다음 달 월세도 없는데 자식이 지구 반대편 리스본에서 한가롭게 여행이나 할 처지인가. 내가 이런 걱정을 하고 머리를 감싸 쥐는 사이 하나 둘, 침대가 비워졌다. 미국에서,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같은 침실 여행자들은 “Have a good day”라는 인사를 남긴 뒤 배낭을 메고 사라졌다. 10시가 지나자 방에는 나 혼자 남았다. 가장 일찍 일어나 가장 늦도록 나가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 텅 빈 8인실에서 침대 한 칸도 다 차지하지 못하고 웅크려 울었다.


어느 순간 기척이 들렸다. 어제저녁 호스텔 라운지에서 만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던 아자미였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아자미는 장발에 수염까지 나서 꼭 헤비메탈 밴드의 기타리스트처럼 보였다. 펑키한 외모와 다르게 유순한 말투가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아자미는 눈물을 닦는 나를 보고도 별 말없이 침대 한쪽에 걸터앉더니 접시를 내밀었다. “아침식사 안 했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 과일과 토스트였다. 다른 손에는 커피도 한 잔 들고 있었다. “침대에서 뭐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물었더니 윙크를 하며 “여기 스태프랑 친해졌어.”라고 유들유들하게 대답했다.


나는 접시를 받아 들고 토스트를 베어 먹었다. 아자미는 창문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진짜 근사하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너는 한국에서 이렇게 멀리 와있네?”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게.”라고 짧게 답했다. 사실 대화를 할 기분도 아니었다.


뜨끈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속이 좀 데워졌다. 나는 말없이 머그컵을 양 손에 감싸 쥐고 커피를 마셨다. 한동안 내가 커피를 호록거리는 소리만 날 뿐 우리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참고로 커피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그러다 아자미가 입을 열었다. “두고 온 것들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나는 커피에서 눈을 들어 아자미를 보았다. “오늘은 공식적인 너의 여행 첫날이잖아.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past is the past) 울어. 우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그런데 울더라도 호카곶에 가서 에그타르트를 먹으면서 울란 말이야.”


웃음이 터졌다. 아자미는 어제 내가 유라시아 대륙 최서단인 호카 곶에 가보고 싶다고 한 이야기라던가, 여행 책에서 리스본이 에그타르트 원조라는 걸 봤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의 고단함을 등에 지고 리스본을 찾아왔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정처럼, 그는 모두가 방을 비운 고요한 오전에 내게 나타났다.


접점이라고는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여행하고 있다는 것뿐인 말레이시안에게 내가 얻은 것은 작은 구원이었다. 아자미는 이틀 뒤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수염 난 말레이시아 요정의 충고대로 호카곶에 가서 대서양을 바라보았다. 탑에 새겨진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글귀도 직접 보았다.

 

이 타르트를 먹기 위해서라도 리스본은 갈 가치가 있다


다른 날에는 리스본에 있는 파스테이스 드 벨렘(에그타르트 원조 가게)에 혼자 가서 세계 최초의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시나몬 가루를 톡톡 뿌린 따끈한 에그타르트에서는 천국의 맛이 났다. 나는 바삭한 파이를 조금 깨물어 먹은 뒤 커스터드 크림을 호록 마시며 아자미를 떠올렸다.


리스본부터 포르투까지, 한 달 가까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나는 바로 재취업을 했다. 박봉이지만 이것저것 잴 겨를이 없었다. 사정이 어려운 부모에게 종종 생활비를 보냈다. 빠듯하고 피곤한 나날이 이어졌다. 그래도 잠시 짬이 나면 나는 리스본에서 먹던 에그타르트 맛을 떠올렸다. 포르타스 두솔 전망대에서 보던 벽돌색 지붕을, 그 날의 하늘을 떠올렸다. 생각이 희미해지면 사진을 보았다. 늘 가보고 싶던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기분이 한 결 나아졌다.


두솔 전망대에서 본 풍경. 이 힘으로 얼마간 살았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9년이 지났다. 나를 잠시 구원한 중년의 헤비메탈 요정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배가 볼록 나왔을까. 길던 머리는 싹둑 잘랐을까. 어떤 모습이건 내 말레이시안 요정이 행복하기를. 그도 누군가에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작은 구원을 얻기를. 아자미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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