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제가 저도 밉습니다.

by 이성혁

긴 비가 내립니다. 계신 곳에서 무탈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비 피해 없길 바랍니다. 날씨가 꼭 제 마음 같습니다. 흐리고 뜨겁고 비가 내립니다. 피할 그늘이 없어서 가끔 땀을 흘리고 펼칠 우산이 없어서 가끔 젖습니다.


잘 읽고 계신가요? 이렇게 글을 쓰면서 노트북을 바라보니 대화가 하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요즘은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니, 집에서 아내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면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노량진에서 오래 수험생활을 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낯을 많이 가려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어려워해요. 공부를 그만두고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또 책을 만들면서 극복했습니다. 요즘은 다시 입술이 무거워집니다.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유튜브를 봤습니다. 아내와 점심을 먹을 때마다 보긴 하는데요. 혼자 유튜브에 들어가서 본 건 아주 오랜만입니다. 좋아하는 유튜버가 몇몇 있습니다. 여행 유튜버들을 좋아하고요. 김지윤 박사, 유현준 교수, 조승연의 탐구생활을 좋아합니다. 한 가지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혼자 유튜브 좋아했는데 가끔 질투가 나서 보지 못했습니다. 매번 그러지는 않지만. 저는 멋지게 성공한 사람을 보면 가끔 질투해요. 이런 제가 저도 미워요.


그리고 지난 일요일 밤 극장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오랜만이었습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으로 나오는 [F1 더 무비]를 봤습니다. 러닝타임이 세 시간이었는데요. 들어가기 전에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쩌지 고민했습니다. 러닝타임이 긴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가끔 상영 중간에 참을 수 없어 화장실에 가곤 합니다. 이런 제가 밉습니다. F1을 보면서 영화가 너무 좋아서 영화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건 아주 오랜만입니다. 주인공의 역경과 성장을, 오르고 내리는 감정을 오랜만에 집중하며 느꼈습니다. 영화가 끝나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영화도 너무 좋았지만 나는 그 상영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라고요. 상영관에서 나와 집으로 오면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니까요.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것이 조금 두려웠나 봐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어제도 오늘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데요. 요즘은 종종 두려움을 마주하고 삽니다.


요즘에는 가만히 앉아서 무용한 것들을 생각합니다. 아주 가끔은 지나온 세월이 무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세월을 보내왔길래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넘기는 제 손끝의 움직임도 너무 무용한 것은 아닐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두렵습니다. 제가 했던 노력이 전부 무용하게 끝이 날까 봐요.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노력해도 항상 부족한 것 같습니다.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아니면 단지 다가올 미래를 불안해하기 때문일까요. 돛단배에 천천히 물이 차는 느낌입니다. 조금씩 침몰하는 기분이 듭니다. 이 강을 잘 건너고 싶습니다.


동시에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용하지 않게 말입니다. 아무튼 쓸모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메일이 발송되던 금요일 오전에는 한 재단에 다녀왔습니다. 지역 작가로 선정되어서 지역 출판사와 지역 동네 서점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올 연말까지 동네 도서관 상주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동네 도서관에 제 자리가 하나 생겨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기쁜 것도 있고 나 자신이 아주 무용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글도 쓰고 책도 만들 예정입니다. 우리 동네에 대한 책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가을이 기다려집니다.


종종 책상에 앉아서 옛날 일들을 생각하는데요. 두 가지 일이 생각났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는 첫 대학에 다닐 때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는 한 대학 영상제작과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입학할 때 목표는 영화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니면서 제가 원하던 배움과는 달랐습니다. 제가 잘 따라가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밤에 학교 편집실에 남아서 편집을 하던 일이 저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복학했습니다. 복학 후 한 학기를 다닐 때도 동일한 감정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소설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군대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었죠. 아무튼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퇴서를 내려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수 사인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2학기는 시작되었고 친구들의 전공 수업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복도에 홀로 서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복도에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조금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복도에 지나가는 동기들과 이야기, 아니 인사를 나누고 강의실에 앉아 있는 교수에게 자퇴서를 들고 갔습니다. 교수는 저에게 왜 자퇴를 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국문학과에 가서 소설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교수는 그게 하고 싶냐고 자퇴하지 말고, 학교에 계속 다니는 건 어떠냐고 말했습니다. 저를 걱정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는 정색하며 네가 국문학과 편입하면 내 손을 지진다고 했습니다. 조금 모욕스러웠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싸인을 받고 강의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 해 국문학과에 편입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전에 자주 보던 선배가 있습니다. 지금은 보지 않습니다. 친한 선배는 아니었고 동네의 선배였습니다. 선배는 가끔 방송사에서 작가로 일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한참 꿈에 불안하던 어느 날 제가 그 선배에게 나중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작가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거 어려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그게 어려운지 물어본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 어디서 뭘 하시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아무튼 저는 국문학과에 갔고 작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제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제 입으로 작가라고 말하기보다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라는 말이 아직 저는 낯섭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떤 말은 아주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것입니다. ‘말’이라는 단어는 둥그러운게 하나 없고 모서리만 많아서 깊은 곳에 들어가 박히면 빼기 아주 어렵습니다. 사람은 왜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모나게 말할까요. 저도 가끔 그런 것 같아서 반성합니다.


우리는 더 둥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응원’이라는 단어는 동그라미가 많아서 부드럽게 들립니다. 이 말이 모두 응원받고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솔직한 마음이라고 편지에 웃음이 있는 이야기를 보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런 제가 저도 밉습니다. 지난 편지에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이 계시는데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이 편지를 읽으며 제가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주신 분들이 계실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저와 닿아있는 모두가 원하는 삶을 사시길 바라고 응원합니다. 진심입니다.


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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