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래된 마음을 보냅니다.

by 이성혁

오늘은 솔직한 마음을 쓸 마음이 부족해 쓰지 못했습니다. 지난 3월에 썼던 에세이 한 편 보냅니다. 오래된 마음입니다. 솔직한 마음을 꺼내지 못했어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무더운 여름입니다. 마음이 덥습니다. 여러분 마음은 어느 계절인가요. 부디 계신 곳에 시원한 바람만 불어오길 바랍니다. 진심입니다.



아군이 필요한 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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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그러고 싶다]


일찍 일어나는 법을 까먹었다. 아침 아홉 시에 가까스로 일어난다. 어젯밤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새벽 네 시가 되어 잠들었다. 침대에서 뜬 눈으로 바라본 미래를 어둡다. 눈을 감으면 자신감이 생기는데 눈을 뜨면 자신감이 없어진다.


어제 스타벅스에서 양귀자 소설가의 ‘모순’을 읽는 커플을 보았다. 남자는 이름 모를 책을 읽고 있었고 앞에 앉은 여자 친구는 모순을 읽고 있었다. 좋은 소설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90년대에 쓰인 소설이 우리 집 책장에도 자리하고 있다. 모순은 하루에 삼십 분 쓴 써서 만든 소설이라고 한다. 임경선 작가님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서 읽었다. 그게 내가 하루에 삼십 분이라고 쓰자고 했던 하삼글의 시작이었다. 생각해 보니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시간은 언제나 빠르고 나도 언제나 그대로인 것 같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발전 없이 머무르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작년과 다른 점을 하나씩 생각했다. 더 이상 앞치마를 두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다름이다. 물론 집에서 앞치마를 두른다. 요리가 재밌다. 고정 수입이 없다는 것이 불안하다. 매달 나오는 월급은 소중하다. 좋은 점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아직 그게 좋은 점인지 모르겠다. 편안하기보다는 불안하다. 사실 돌이켜보면 일을 해도 불안했다. 돈이 들어와도 나는 불안했다. 불안의 이유는 돈이 아니었구나. 나는 여전히 내가 되지 못해서 불안했다. 오히려 다행이다.


불안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았고 이제 그 불안의 모서리를 볼 수 있다.


주말에 결혼식을 다녀왔다. 아티스트들 결혼식이었다. 하객도 아티스트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줬다. 눈물이 조금 나왔다. 자기 전에 그 가수의 여러 인터뷰를 읽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함께 떠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신이 너무 힘들다면 같이 지금으로부터 도망치자고 그런 사연이 이였다고 한다.


연회장 동그란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다. 앉아서 먹기 시작했을 때 음식을 담아온 한 남자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식장에서 본 낯익은 사람이었다. 그는 기도하고 음식을 먹었다. 아내가 귓속말로 그가 나온 드라마를 알려줬다. 내가 아주 즐겁게 본 드라마에 나온 배우였다. 그가 한 연기가 계속 생각났다. 아는 척을 할까 말까 하다 인사를 했다. 드라마 정말 재밌게 봤다고 연기가 정말 인상 깊었다고 했다. 식사하며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부터 나는 언젠가 시나리오를 써서 연출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거워하는 그가 부러웠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했다.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 사람일까. 야자 시간에 천장을 쳐다보며 미래가 궁금했던 사춘기 고등학생으로 돌아가서 생각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기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던 성혁이, 소설가가 되고 싶다며 한 학기 남긴 대학을 자퇴했던 성혁이. 경찰이 노량진에서 4년을 살았던 성혁이(아 이 얘기 그만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과 같은 것 하나 없다. 다시 사춘기가 되어보니 그 모든 것이 하고 싶다. 그건 욕심이다. 나는 가정이 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 생각하다 무얼 하며 늙고 싶은지 생각했다. 무얼 하며 늙고 싶을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늙고 싶다. 양복을 입고 회사에 가는 일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영원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까. 뭐 그렇게 다니는 친구들이 가끔 부럽긴 하다. 월급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 생각은 아주 찰나에 그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늙는다면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까. 그럴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 나는 뭐든 더 원할 것 같다. 욕심쟁이니까. 무얼 하며 늙을 것인지 찾고 있다.


티모시 샬라메가 그런 수상 소감을 했다. 솔직히 자신은 위대해지고 싶다고. 자신은 위대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는다고. 다니엘 데이루이스, 말론 브란도, 비올라 데이비스, 마이클 조던, 마이클 펠프스와 같은 위치에 있고 싶다고. 지금 받은 상으로 그런 위치에 있다는 것이 아니고 이 상이 내가 그런 여정을 보낼 수 있는 연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배우, 농구선수 그리고 수영 선수.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그러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 겉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영감이 되고 싶다. 그들의 플레이리스트가 되고 싶다. 버리지 못하는 책이 되고 싶다. 선물하고 싶은 책이 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이 말이다. 부끄럽다. 하지만 진짜 그러고 싶다.


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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