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염 비망록 2 - 서술어는 매우 중요하다
서술어란 무엇입니까.
고리타분할 수 있겠지만, 잠깐 사전을 펼쳐보겠어요. "한 문장에서 주어의 움직임, 상태, 성질 따위를 서술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는 이가 기사를 쓰든, 소설을 쓰든, 수필을 쓰든, 친구에게 전할 메모를 쓰든 간에 서술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읽는 사람이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저는 언론보도문에서 서술어는 무척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어느 날 타사에 있는 한 후배 기자가 제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그 기자는 몇몇 동료와 함께 팀을 이뤄 일하고 있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대화 내용을 옮길 순 없어 대략적으로 설명합니다.
"'~~라고 밝혔다'고 쓸 때가 있잖아요. 근데 동료들 기사를 먼저 데스킹 하면서 보니까... 참 불명확하게 쓰더라고요. 어떤 경우에 써야 한다고 말해주면 좋을까요?"
촛불로 어두운 곳을 밝힐 때의 그 '밝히다'가 아닙니다. 밤을 새운다는 의미의 '밝히다'도 아닙니다. 어떤 것을 드러나게 좋아한다는 뜻의 '밝히다'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뭔가 새로운 걸 말했을 때의 그 '밝히다'입니다. 언론보도문에서 특히 자주 보이는 그 '밝히다'였지요. 전 이렇게 답했어요.
서술어는 기자가 보도 전달을 함에 있어서 용례와 사용 범위가 서로 미세하게 다르잖아. 취재원의 워딩(발언)에서 '밝혔다'라는 서술어를 쓰는 경우는 '드러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 내용, 생각 따위를 드러내 알릴' 때라고 설명해 주자.
"드러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 내용, 생각 따위를 드러내 알리다"라는 뜻풀이는 제가 쓴 게 아닙니다. 어디서 복붙한 건데요. 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서술어의 뜻이 좀 헷갈린다면 표준국어대사전을 여세요. 기사 쓰기(뿐만 아니라 글쓰기 전반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네티즌들이 뜻도 덧대고 하는 오픈사전 이런 거 말고요(...) 유알엘은 아래 ↓
https://stdict.korean.go.kr/main/main.do
(그냥 뜻만 확인하지 마시길. 여유가 되면 단어를 클릭해 여러 가지 뜻과 예문도 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ㅎ)
A가 경찰에게 (그전엔 알려지지 않은) 특정 사실을 말했을 경우엔 "밝혔다"가 더 어울릴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 어떤 정당의 혁신위원장이 누구인지 공개석상에서 처음 공개했을 때는 "발표했다"가 더 상황에 맞겠지요. 어떤 식당 주인이 취재진에게 레시피의 핵심 재료를 넌지시 흘려 말했다면 "밝히다"보다 "귀띔하다"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김아무개씨가 이아무개씨에게 욕을 들었는데 "난생처음 상스러운 욕을 들었다"고 말하는 건 "주장하다"가 어울리고(보통 규명되지 않은 일방의 주장에 쓰곤 합니다), 이 상황에서 김아무개씨가 이아무개씨가 욕설을 뱉은 시간을 녹음해 "몇 분 동은 XXX, ♡♡♡ 라고 내게 욕했다"고 경찰에 가서 말하는 건 "설명하다, 증언하다" 등의 서술어가 합당해 보입니다.
이처럼 언론보도 문장 속 서술어는 글쓴이가 보거나 들어서 전달하고자 하는 상황을 묘사함에 큰 역할을 수행합니다. 중요해요. 그만큼 어렵고 복잡합니다. 사전을 보면서, 수많은 기사를 보면서 지평을 넓혀야 할 영역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기자가 기사 속에서 챙기는 제1의 가치는 워딩이겠지만... 역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서술어입니다(라고 전 생각해요 ㅎ).
스트레이트 기사 편집을 하다 보면, 서술어 어휘력이 기자마다 다르곤 합니다. 화려하다고 늘 좋은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단순하다고 담백한 것은 또 아닙니다. 상황에 맞춰, 기사의 톤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봅니다.
큰따옴표가 많아(인용이 많아) 기사가 단조로워지기 쉬운 기사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상황에 맞는 서술어를 잘 쓴다면 독자들이 현장을 이해하기보다 수월할 것입니다.
** 지금부터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마술사 같은 서술어가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다"입니다.
김영희는 이철수에게 "나는 너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라고 했다.
이런 문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시지요.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장입니다. 의미 전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하다(했다)"가 한 기사 안에 많이 반복되면 아주 어색해집니다. 말했는지, 설명했는지, 항변했는지 뭘 했는지 읽는 사람은 파악할 길이 없어요.
"하다"는 이따금 쓸 순 있지만, 너무 자주 쓰진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