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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quum May 25. 2016

‘만들기’라는 추상 명사

    인간의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 ‘만들기’가 아닌가, 그런데 새삼스레 무슨 ‘만들기’를 이야기하겠다는 건가,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거듭 쓰이게 될 ‘만들기’라는 표현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일상적인 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만든다고 할 때, 예를 들어 의자를 만든다, 빵을 만든다 할 때 우리는 결과물인 의자와 빵에 무게를 두어 생각하지 그것을 만든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따로 떼어, 결과물보다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만들기’라는 말, 그 의미를 낯설게 보고자 함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만들기’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의미는 아주 많다. 그중에서 릴리쿰이 집중하는 만들기는 재료나 도구를 가지고 ‘형태’와 ‘실체’를 만드는 제작 활동이다. 단 인간이 손으로 하는 모든 제작 행위, 즉 공예나 기예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 관련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 활동을 우리는 ‘만들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가장 가까운 ‘만들기'는 무엇일까. 매일 손을 움직여 재료를 다듬고 삶거나 굽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음식으로 만드는 ‘요리’가 아닐까. 물론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요리를 하진 않는다. 하지만 개개인의 생활 방식에서 멀어져 있더라도 요리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 본능적인 것에 가깝다.

   요리의 기원을 들여다보면 인류는 ‘요리’와 함께 도구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영장류 동물학자 리처드 랭엄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조리된 요리에 생물학적으로 적응 한 점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인류는 불을 다루는 기술을 익혀 야생에서 살아남았다. 동시에, 날 것을 먹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는) 조리의 기술을 익혔다. 도구의 진화가 거듭되었고 요리도 그랬다. 예를 들어 물을 끓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불을 견디는 옹기가 나온 이후다. 그릇에 물을 담아 끓일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음식을 부드럽게 하고, 채소와 고기의 맛을 섞거나,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인간의 본능은 많은 것을 발견해냈다. 이제 주변의 모습과 쓰이는 도구들은 무척 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만년 전과 마찬가지로 불과 물, 공기와 흙을 다루며 요리를 한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고 재료를 저장하고 도구를 만들어 조리하는 모든 과정 안에서, 만들기는 인간에게 다름 아닌 생존의 방법이자 본성이다.  


    이 ‘만들기’라는 말 앞에 ‘스스로'를 붙이면 의미가 더 증폭된다. ‘스스로 만들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DIY, Do It yourself’일 것이다. DIY 정신이 발생한 원류를 찾아 1800년대로 시계를 돌려보자. DIY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기계화로 인해 우리의 삶이 직접 만들어 쓰는 행위에서 근본적으로 멀어진 이후 생겨난 개념이다.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일어난 변화의 한 켠에는 자본주의와 대량 생산 방식 때문에 생겨나는 비인간적인 노동이나 저급한 물건들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었다. 이런 반작용은 현대 디자인의 개념을 세웠던 미술 공예 운동(Art and Craft Movement)으로도 이어진다. 이 운동의 시발점에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시인, 소설가이면서 예술가였던 윌리엄 모리스가 있었다. 그는 자유로운 노동에 의한 생활예술이 우리의 삶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모리스는 진정한 예술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예술은 모든 사람의 노동 가운데 존재하는 즐거움의 표현이어야 하고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어야 했다. 기계 산업이 노동의 즐거움을 헤치고 예술이 숨쉬어야 할 생활 공간에 추악한 건물과 물건들이 들어차는 현실은 모리스에게 끔찍한 일이었다. 그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세운 모리스 마샬 포크너 상회 (Morris, Marshall, Faulkner & Co.)는 ‘우리도 실내 장식부터 가구 디자인까지 모든 일을 혼자서 했던 중세 예술가들처럼 직접 해보면 어떨까'라는 농담같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공예 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수공예와 예술의 가치를 바로 세워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모리스 회사의 공예품들 역시 '판매’라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제품이었고 그의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손으로 만드는 행위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이 직접 도구를 사용하고 환경을 가꾸면서 육체적 노동과 창작의 기쁨을 느끼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Do It Yourself’라는 문구는 1950년대에 영국에서 등장했다. 창작과 비용 절감이라는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직접 집을 고치고 꾸미는 경향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문화적 용어로 자리 잡았다. 작은 생활 소품을 손으로 만들거나 기업의 제품에만 의존하지 않고 화장품이나 비누 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 쓰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제작자와 사용자의 거리를 좁히는 제품의 디자인적 접근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자가 출판처럼 소규모의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독립적인 활동 방식이 되기도 한다. 1970년대의 펑크 음악 씬과 같은 하위 문화에도, 영화와 공연 같은 대중 문화에도 DIY 정신이 녹아 들어 있다.  

    DIY 문화는 윌리엄 모리스처럼 노동의 즐거움과 자기 표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가치에 공감하고 스스로 만드는 행위를 대안적인 문화 생산의 방식으로 삼는 사람들의 태도가 응집된 것이다. 릴리쿰이 만드는 활동을 이야기할 때 ‘만들기’ 역시 이런 태도와 철학을 담은 언어다. 오늘날 DIY 정신은 비단 문화적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DIY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과학 기술과 공학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사회 혁신의 힘으로 전환되고 있다.


    ‘만들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가장 먼저 나오는 뜻이 있다. ‘노력이나 기술을 들여 목적하는 사물을 이루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들기는 이 뜻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기도 하고 목적하는 사물을 만들되 정해놓은 목적을 따라가지만은 않는다는 면에서는 정반대이기도 하다. 이같은 ‘만들기’ 안에 숨어든 새로운 코드를 읽으려면 ‘해커 정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해커의 동사형인 ‘hack’의 의미는 (조금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짜인 구조(코드)를 분석하거나 해체해서 바꾸거나 재건축(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즐긴다는 뜻이다. ‘hack’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통용되었던 은어였다. 1961년 MIT는 당시의 전자기술을 선도한 기업 DEC에서 내놓은 일종의 미니 컴퓨터 PDP-1을 구매했다. MIT 테크 모델 철도 클럽 멤버들은 이 컴퓨터를 가지고 놀면서 필요한 환경을 직접 프로그래밍하여 만들었다. 통신상에서 그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도 생겨났는데 바로 이런 문화로부터 ‘hack’, ‘해커’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PDP-1 at the Computer History Museum with Steve Russell / 이미지 출처: en.wikipedia.org

   이른바 ‘해커’로 불리는 영광을 누렸던 프로그래머들은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 쓰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도래를 이끈 사람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주어진 그대로 사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사용자인 동시에 ‘생산자’로서, 직접 파헤치고 연구하고 다르게 바꾸어나갔다.

   해커 문화가 시작된 지 55년이 지난 지금, 집 한 채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컸던 컴퓨터는 이제 손바닥보다 작아졌다. 미국 국방성의 디지털 통신 실험으로 만들어졌던 ARPAnet은 진화해 전 세계로 보급된 네트워크, 인터넷이 되었다.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통신은 이진수로 이루어진 숫자 코딩에서 시작되어 기계어와 스크립트 언어라는 다양한 변이를 거쳐 음성, 생체정보 인식, 인공지능 등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에는 일찍이 이러한 환경들을 설계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한 해커들의 공이 크다. 이들의 공은 비단 특정한 무언가를 만들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른바 공유, 개방, 분산, 자유로운 접근, 공익이라는 자생적인 행동 윤리를 만들고 따랐다는 점이 더욱 의미가 클지도 모른다.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이를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바꾸어 쓰고자 하는 해커 정신, 누구나 이러한 세계를 건설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해커 윤리는 이를 계승한 수많은 프로그래머에게 웹의 건축과 공존에 관한 철학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주변 환경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로 전이되고 있다.


    사물의 용도를 새롭게 정하거나 개조하는 일도 ‘해킹’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곤 한다. 이른바 ‘사물 해킹’이다. 사물 해킹의 재밌는 사례는 이케아 제품을 개조한 물건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케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비교적 싼값으로 반제품 형태의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립식 장난감을 만들듯이 부품을 이리저리 조립해 완성품을 만든다. 간단하게는 끼우기만 하면 되는 것도 있지만 커다란 옷장이나 침대까지 부품 단위로 나뉘어져 꽤나 복잡한 조립 과정을 거쳐야 완성품이 되는 것도 많다. 그런데 꼭 설명서대로 만들라는 법이 있나? 의자를 샀다고 꼭 의자만 만들라는 법이 있을까? 어쩌면 이런 생각이 ‘이케아 해킹’의 시작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는 ‘프로스타’라는 스툴이 있다. 원래 작은 의자를 만들기 위해 포함된 구성물을 해킹하여 저마다 용도가 다른 전혀 새로운 물건들을 만든다. 스툴에 달아야 할 다리 네 개 중 두 개를 원래의 위치가 아닌 다른 두 다리에 연결해 협탁을 만들기도 한다. 스툴의 다리 몇 개를 연이어 붙여 옷걸이를 만들거나 책 선반으로 개조한 사례도 있다. 조금 더 놀라운 예로는 어린이용 자전거 드라이지네를 만든 이도 있다.

이미지출처: instructables.com/id/DIY-Draisienne-and-Sled-hack-of-IKEAs-frosta-sto/

동그란 스툴 상판, 즉 앉는 부분을 자전거 바퀴로, 스툴 다리를 자전거 프레임으로 사용하고, 프로스타 구성물에는 없는 자전거 부속품은 3D프린팅으로 출력해 만들었다. 이케아 제품들을 해킹해 다른 쓰임새를 만드는 작업은 이케아해커스(ikeahackers.net)라는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생겨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해킹을 고안해낸 사람들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도록 튜토리얼을 작성해 여기에 공유한다. 이 역시 해커 정신인 셈이다. 요즘 재봉틀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평범한 사각 테이블을 재봉틀용 테이블로 변신시킨 튜토리얼도 유용해 보인다. 문서 정리함 네 개를 이어 상판으로 만든 커피 테이블은 디자인이 사뭇 멋져서 당장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해킹이라고 해서 꼭 이렇게 폼 나는 작업만 떠올릴 이유는 없다. 우유팩이나 깡통이 본래의 쓰임을 잃었을 때 비누곽이나 양초 캔으로 활용하는 생활의 지혜도 해커 정신과 본질은 같다. 정해진 쓰임과 구조의 밖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 그리고 직접 바꾸어가는 것이다.


   손을 쓴다는 것, 직접 만든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어린 아이였을 때 걸음마를 익히고 자기 그림자를 인식하고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과 그 원리를 하나하나 배웠던 것과 비슷하다. 만들기에 몰입할 때 우리는 사물과 세계를 사용 설명서나 정형화된 지식으로써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직접 이해하는 경험을 얻게 된다.

    우리 안에 내재된 만들기 본능과 예술에 관한 철학 그리고 DIY 문화와 해커 정신이 만나면서 이 시대는 ‘만들기'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기업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값싼 물건을 과잉 생산하고 개인은 불필요한 소비를 종용당하는 시스템은 인간과 자연 양쪽 모두에게 공정하지 않으며,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윌리엄 모리스가 인간은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자.





글쓴이: 선윤아

*이 글은 2016년 11월 발간된 [손의 모험 -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공유하는 삶의 태도에 관하여] (릴리쿰 저, 코난북스) 원고의 일부 또는 가공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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