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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손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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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quum May 30. 2016

버리기 위해 만드는 성장 사회

   내 고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게 더운 곳이다. 여름이 오면 으레 한두 번씩 전국 최고기온을 기록한 곳으로 뉴스에 이름을 올리곤 한다. 어린 시절 가뜩이나 더위에 약했던 나는 선풍기와 꺼끌꺼끌한 마 이불, 인견으로 된 시원한 잠옷으로 무장하고서도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쉬이 잠을 이루지 못 한 채 멍하니 눈을 감고 있으면 붕붕 머리를 돌리던 선풍기가 틱, 타이머 끝나는 소리를 내고, 다시 더운 공기가 뭉글뭉글 밀려들었다. 당시엔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죽을 수도 있다는 괴담이 돌던 때라 선풍기를 다시 켤지 말지 고민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운이 좋으면 그러다 잠이 들었고, 운이 나쁘면 고민만 하다 아침을 맞았다. 고3때였나, 마침내 에어컨이 집에 입성하기 전까진 이런 일을 거듭했다.


이것과 비슷하게 생긴 선풍기였다. 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gintaca

   그때 썼던 선풍기는 현재 LG의 전신인 금성에서 만든 것이었다. 날개는 새파란 색이었고, 군데군데 녹이 슨 철제 프레임이 날개를 감쌌다. 프레임 중앙에는 왕관 그림에 ‘금성’이라는 글자가 합쳐진 빨간색 로고와 ‘GOLDSTAR’라는 글이 은색 원판 위에 인쇄되어 있었다. 플라스틱 몸체는 때가 탄 듯 누르스름했다. 부모님이 결혼한 첫 해에 마련한 거라 하셨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 누런색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선풍기를 제어하는 영역은 검은색으로 따로 표시되어 있었다. 각각 타이머와 회전을 제어하는 다이얼, 풍속에 따라 다른 색으로 표시된 버튼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흰색, 미색, 주황색, 초록색, 파란색이었다.

선풍기는 당시(지금도 마찬가지다) 흔하게 팔리는 하얗고 매끈한 녀석과는 달랐다. 몸체는 퉁명스럽게 각이 졌고, 금속 재질 프레임과 다이얼, 버튼은 꼭 비행기 부품 같았다. 110볼트에 맞춰진 전자제품이라 220볼트가 보편화된 이후로는 항상 그 옆에 크고 무거운 변압기를 데리고 다녔다. 선풍기를 가지고 비행사 기분을 내는 데엔 그보다 적합한 녀석은 없었다. 변압기를 깔고 앉아 선풍기 앞에서 입을 벌리고 마구잡이로 버튼을 눌러대고 있으면 어른들이 와서 그러다 선풍기 망가진다며 등짝을 내리쳤다.

내가 태어난 이후 거의 스무 번의 여름을 함께한 선풍기가 버려진 건 우습게도 고장이 아니라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녹 때문이었다. 다른 선풍기 두 대는 십 년을 못 넘기고 고장이 나 차례로 버려졌으나, 녀석은 결국 멀쩡한 상태로 버려졌다.

 

   한번쯤은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 나오는 물건들은 너무 쉽게 망가진다고, 예전엔 몇 십 년을 써도 끄떡없었다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말이 단순한 과장이거나 복잡한 기능이 추가되면서 생기는 불가피한 변화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세르주 라투슈의 책 《낭비 사회를 넘어서》에서 ‘진부화 계획’이라는 단어를 접하고는 자본가들이 물건의 수명을 일부러 짧게 만든다는 음모론 같은 얘기가 실은 엄연히 존재하는 전략임을 알게 되었다. 물건의 수명에 관한 어르신들의 증언은 사실이었다.


Ford Prefect production during the mid 1950s, 이미지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fordeu

   진부화 계획의 역사는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자들의 값비싼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던 자동차를 대중화하고 싶었던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자동차를 조립하는 기존의 방식을 바꾸어 컨베이어벨트 위로 제품이 움직이고, 노동자들은 한 자리에서 정해진 일만 반복하는 포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방법은 대성공을 거두어 하루에 두세 대를 만드는 게 고작이던 공장에서 한 시간에 150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가격은 처음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값싼 가격은 그만큼 많은 판매량을 보장했다. 헨리 포드의 성공에 고무된 자본가들은 너도나도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생산 공정이 간단했던 방적방직업이 먼저였고, 다른 산업도 곧 뒤를 따랐다. 이로써 대량생산 시대의 막이 열렸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제품을 값싸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량생산은 해로울 것이 없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공급이 일정 수위에 오른 뒤부터는 얘기가 달라졌다. 모두가 자동차를 가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동차 수요는 줄어든다. 어느 산업이라도 마찬가지다. 전쟁과 가난을 겪으면서 검소함을 학습해온 소비자들에게 여분의 구매는 필요치 않았다. 빠르게 생산된 제품들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창고에 쌓이게 되었다. 자본가들은 대량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량소비가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품은 구입되고, 사용되고, 버려져야 한다. 체제를 유지하려면 사용하고 버리는 기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선 안 된다. 그 결과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라는 전략이 생겨났다.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Nylon

   계획적 진부화는 제품의 수명을 제한하기 위해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제품에 결함을 삽입하거나, 내구성을 조절하는 방식을 뜻한다. 나일론이 대표적이다.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처럼 강하다’는 홍보 문구로 알려진 나일론은 1945년 듀퐁 사에서 스타킹을 만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쉽게 올이 풀리고, 찢어지는 면 스타킹 대신 튼튼한 나일론 스타킹을 구입하려는 여성들이 상점마다 줄을 섰다고 한다. 요즘 판매되고 있는 스타킹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생각해보면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다. 지금 우리가 쓰는 스타킹은 초기 스타킹이 너무 튼튼해 매출이 줄어들자, 스타킹 제조사들이 생산 공정에서 자외선 차단 첨가물의 양을 조절해 나일론 강도를 일부러 약하게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자동차를 끌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던 나일론 스타킹은 쉽게 올이 풀리고 구멍이 나 금세 새것을 구입해야 하는 품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품의 성질이 아니라 형태로 수명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는 일회용 면도기다. 일반적으로 면도기는 쓰고 엎어놓기 편한 형태로 디자인된다. 이렇게 보관하면 칼날 부분으로 수분이 몰려들어 날이 쉽게 상한다. 그러면 날이 하늘을 향하도록 디자인하면 되지 않을까.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도 제조사는 면도기를 뒤집어 보관하기 쉽도록 디자인을 개선하지 않는다. 일회용 면도기는 몇 번 쓴 뒤엔 버려져야 새로운 일회용 면도기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면도기 회사의 계획적 진부화는 이뿐 아니다. 시간이 가면서 늘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다. 3중 면도날에서 4중, 5중 면도날이 나오고 면도날이 회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얼굴 굴곡을 따라 밀착한다고 광고한다. 그러면서 면도기 스틱과 날을 꽂는 부분의 모양을 달리해 이전에 쓰던 스틱을 더 이상 쓸 수 없도록 만든다. 마모되지 않는 면도날을 개발해 특허를 소유한 기업이 생산을 포기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구음모이론 포스터

   코지마 단노리트세르 감독의 2010년도 다큐멘터리 <전구 음모이론(The Light Bulb Conspiracy)>은 계획적 진부화가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담았다. 진부화 전략의 최초 희생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구’다. 1924년 전구 제조사들은 2500시간이던 전구의 평균 수명을 천 시간 이내로 제한하기로 결의한다. 그들은 담합해 천 시간이 넘게 지속되는 전구를 만드는 제조사에는 벌금을 물리고, 수명이 긴 전구 제작과 관련된 특허는 모두 매장한다. 이 전통은 현대의 전자 제품으로도 이어진다. 인쇄 매수가 만 8천 장이 되면 자동으로 동작을 멈추는 칩이 삽입된 프린터가 있다. 배터리 수명을 짧게 설계하고 배터리를 교환할 수도 없게 만든 MP3 플레이어도 있다. 진부화 대상은 세탁기,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자동차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다큐멘터리는 아서 밀러의 1949년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 로먼의 대사를 인용한다. 그는 계속 고장 나는 자동차, 냉장고에 분개하며 투덜거린다.

   “할부금을 다 치르고 나면 못 쓰게 된다. 그놈들은 시간을 계산해서 전액 지불 시엔 쓸 수 없도록 시간제한을 걸어 놓은 게 틀림없다.”

   과대망상 같지만 그 주장은 사실이다. 마땅히 고장이 나도록 설계된 제품. 우리는 시한폭탄을 품은 제품에 둘러싸여 있다.


   세르주 라투슈는 계획된 진부화 외에도 진부화 전략을 두 가지 더 언급한다. 바로 심리적 진부화와 기술적 진부화다. 심리적 진부화의 무기는 광고다. 일상에서 우리 자신과 광고의 접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이미 광고에 점령당해 있다. TV,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극장에 앉아 있는 시간의 1/10 가량을 차지하는 것도 광고다. 인터넷의 검색 결과 중 반 이상이 광고이며,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매일 같은 곳에서만 식사를 하고, 맥락 없이 상표가 분명한 상품의 장점을 설명한다. 광고는 이제 페이스북과 트위터 타임라인까지 차지했다. 광고는 어느 날엔 반짝이는 꽃무늬가 그려진 화려한 냉장고를 보여주며, 우리가 가진 하얀색 냉장고는 한물갔다고 얘기할 것이다. 광고는 반복되고, 광고에 노출될수록 우리는 점점 꽃무늬에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신용카드라는 만능 전당포가  있으니까) 무리해서 반짝이는 냉장고를 구입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은색의 매끈한 냉장고가 새로운 유행으로 광고판을 점령한다. 그러면 우리는 냉장고의 꽃무늬가 유치해 보인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동차나 자전거, 매주 새로운 제품이 등장하는 SPA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광고는 자신의 주장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우리를 설득 혹은 세뇌한다. 근거가 타당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광고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소유한 것을 불만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불만족은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미지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dno1967b


   기술적 진부화란 기술적인 발전으로 기존에 있던 것을 구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흑백 TV가 컬러 TV로 바뀌고, 음원을 담는 매개가 LP에서 테이프, CD, 디지털 음원으로 옮겨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주관적인 기준에 기대는 심리적 진부화와는 달리 기술적 진부화는 명확한 근거를 제공하므로 정직한 수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두 가지 전략이 손을 잡으면서 기술의 진보는 심리적 진부화의 옹호 수단이 된다.

얼마 전 구입한 컴퓨터는 전원 버튼을 누르고 바탕 화면이 켜지기까지 십 초쯤 걸린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부팅 속도가 3, 4초에 지나지 않는다는 컴퓨터가 등장한다. 광고는 이것이 진정한 혁신이라고 부르짖는다. 대부분 단 몇 초 차이가 여섯 자리가 넘는 돈을 투자할 만큼 가치 있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광고는 끊임없이 그 차이를 이야기한다. 새로운 컴퓨터를 사든 사지 않든 불과 얼마 전 산 컴퓨터가 구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된다.

   특정한 기능을 강조하는 방법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운동화는 자유롭게 움직이기에 최적화된 신발로 걷거나 뛰거나 발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러닝용, 워킹용이 ‘당연히’ 구분되어 나오는 요즘, 예전의 운동화는 덜 과학적이고, 덜 인체공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상점에서는 아예 둘을 구분해서 진열한다. 산책과 조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제 산책용 운동화와 조깅용 운동화, 따로따로 한 켤레씩 구입해야만 할 것이다. 이걸 신지 않으면 다쳐, 이걸 신으면 더 빨라져 하는 광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하여 우리는 운동화에 두 배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고, 기업은 예전보다 두 배 많은 상품을 판매한다. 신발장은 더 좁아지고, 가지고 있던 신발은 버려진다. 바람막이, 방수용, 보온용으로 세분화되는 아웃도어 의류. 언젠가부터 생선용, 육류용, 채소용을 분리해 쓰라고 권장되는 도마와 칼. 얼굴과 눈가, 목, 손, 발, 바르는 부위에 따라 특화된 화장품도 그것이 유효하든, 무용하든 기술적 진부화의 결과물이라는 혐의는 피할 수 없다.


   오늘날 물건의 가치는 휘발성을 띤다. 옷가지는 짧은 유행이 지나면 헌 옷 수거함으로 직행하고, 비교적 고가품인 휴대폰도 2년을 채우지 못 하고 새것으로 교체된다. 더 좋은 물건은 계속해서 나오고 대체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집에서 쓰는 가구에 문제가 생기면 고치기보다는 새것을 구입한다. 새로 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아니 오히려 수리하거나 직접 만드는 것보다 훨씬 싸다.

   값싼 가격표는 자본가들의 또 다른 전략이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생산지를 저임금 국가로 옮긴다.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써야 마땅할 비용은 은근슬쩍 사라진다. 유통과 광고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는 대신, 소비자의 등 뒤에서 원료를 더 싼 것으로 대체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자연은 난도질 당하고 자원은 낭비된다. 거대 자본보다 가격을 낮출 수 없는 작은 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진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맞서 싸우던 사람들도 자본의 힘에 지고 만다. 남는 것은 매수된 가짜 경험과 많은, 지나치게 많은 물건들 뿐이다.


Electronic waste 이미지출처: https://youtu.be/k19PEUY2_pA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소요된 비용 이상을 청구하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문제는 그 값을 치르는 대상이 소비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는 가격표에는 다른 이들이 대신 지불한 비용 혹은 착취당한 비용이 숨어 있다. 이 비용을 치르는 이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제3세계 노동자, 소상공인, 환경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자신이 함께 들어가 있다. 반값짜리 가격표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착한’ 가격은 착하지 않다.

유튜브에서 개미와 볼펜으로 한 실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하얀 종이 위를 제멋대로 돌아다니던 개미는 실험자가 볼펜으로 주변에 원을 그리자 혼란스러워하며 그 원 안을 맴돈다. 실험자가 그 원 안에 선을 하나씩 더 그릴 때마다 개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든다. 영상의 끝에서 개미는 결국 제 몸의 몇 배 밖에 안 되는 공간에 갇혀, 동물원의 코끼리처럼 제자리를 빙글빙글 돈다.

   우리 대부분도 원 안에 갇힌 개미와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성장해야만 한다는 사회의 강박이 노동으로, 소비로, 그리고 성장주의로 우리의 삶에 선을 긋는다.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가 되는 것 뿐이다. 선 밖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선을 넘어가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만들기와 분리되어 버렸다.



글쓴이: 물고기

*이 글은 2016년 11월 발간된 [손의 모험 -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공유하는 삶의 태도에 관하여] (릴리쿰 저, 코난북스) 원고의 일부 또는 가공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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