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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quum Feb 18. 2021

이름 없는 테이블의 북토크,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백영경, 유현미. 두 작가님을 모셨다!

이름없는 테이블, 책수다부터 읽기 >>>


2주에 걸친 책수다를 마치고, 다음은 북토크를 열 차례.


릴리쿰 스테이지에서 모여 앉아 진행하고 싶었지만 거리두기 지침으로 어려워져, 결국 온라인 북토크로 방향을 바꿔야 했습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두 작가분은 현장에 모시고, 참가자는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요. 


당일, 눈이 내려 미끄러운 길을 뚫고, 진행을 도와주실 아름님이 도착하셨고, 곧이어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의 편집자이신 돌베개의 김혜영 과장님, 그리고 주인공인 두 작가님이 릴리쿰 스테이지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1시, 작가님이 발표하실 때 참가자와 교감할 수 있도록 큰 스크린에 참가자의 얼굴을 띄워놓은 채 현장엔 다섯명, 온라인엔 스무명이 모인 북토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 두 분의 발표를 공유합니다.


https://youtu.be/eFU7tSPbwt8


이렇게 발표가 끝난 뒤에는, 북토크의 꽃,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영상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지만 (저는 텍스트가 더 편한 사람이라, 그리고 녹화를 담당하던 카메라가 마음대로 꺼져버린 지라) 한 시간 여에 걸쳐 진행되었던 질의응답은 글로 정리했습니다.



동선공개와 시민


진행자: 유현미 선생님께 책이 쓰인 시점보다 확진자가 많아진 지금, 하루에도 몇 건씩 확진자 발생 상황을 전달받기 때문에 동선 공개나 알림에 많이 무감각해진 면이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확진자 발생 알람이라든가 동선 공개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유현미: 나 역시 문자를 잘 안 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 확인을 해보니 변화를 하긴 했더라. 이제는 성별, 나이, 직장명을 공개하지 않고, 접촉자가 다 확인된 상황이라면 동선도 공개하지 않는 식으로. 확진자들에게 부과되었던 비난이나 인권침해 요소를 반영해 가이드라인이 변화한 것이긴 한데, 근본적으로 우리가 이렇게까지, 개인을 기준으로 한 동선 정보를 계속 만들어내고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기서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라든지 꼭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진 거 같지 않다. 거기다 인권단체의 문제 제기로 가이드라인은 개선되었으나 사회적 의미에서는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처음엔 개인 동선? 이게 뭐지? 하고 당황스러웠는데, 이젠 익숙해진 것이다. 이 익숙함이 나중에는 다른 어떤 부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이 된다.


진행자: 동선 정보를 제공받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코로나 완치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바이러스 담지자를 추출하는 민원인 외에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까?


유현미: 이 부분은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다. 사실 답이 없기 때문에 (책에서도) 이 부분을 열어놓고 결론을 냈었고, 지금도 여전히 답을 내기가 어렵다.

    한 가지 생각한 것은 이런 재난의 개인화에서 핵심은,  한국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에게 형사적으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오늘 오면서 기사를 봤는데 책에서도 다뤘던 ‘강남 유학생 모녀’에게 제주도지사가 구상권 청구, 손해배상 청구한 결과가 아직 확정이 안 되어 2심을 진행하고 있다. 고의성을 어떻게 인정할 거냐, 하지 않을 거냐가 논의되고 있다는 거였다. 이런 식으로 확진자가 자가격리 수칙을 어기거나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형사적으로, 벌금이든 실형을 주든 처벌하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부분을 정책입안자들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사회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형사 처벌이나 제재를 통해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상상력이 너무 지배적인 것 같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불안도가 높아지면서 갈 곳 없는 불안이 이런 방식으로 가기 쉬워서인 듯하다. 개인의 형사처벌로 풀 수 있게.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요새 그게 쉬워지지 않았나. 국민청원, 누구나 다 가서 ’개인을 처벌해주세요’ 청원을 올리는 것. 이제 이런 현상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진행자: 법적인 제재나 처벌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유현미: 이 책에도 의료 문제에 있어서 국가 중심, 시장 중심의 접근이 아니라 커뮤니티가 의료나 돌봄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 않나. 확진자나 격리자가 격리 동안에 느끼는 고립, 어려움을 (어떤 식으로 조직된) 동네 주민으로 막는 방법에 대한 실험이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일방적으로 주민센터 아니면 보건당국과 개인 간의 관계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사람들은 확진자가 되는 것,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고, 그에 대한 완충 장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진행자: 방명록 작성과 QR코드 인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현미: 방명록. 요새 좀 이상한 문자 오지 않나?


청중: (공감의 소리)


유현미: (방명록 이후) 여성이나 여성으로 짐작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스팸, 이상한 문자를 받는 일이 늘었다. 아마 여성분들은 느끼신 게 있을 거다. QR코드 이후엔 좀 나아졌으나 모두가 다 스마트폰에, 특정 어플을 사용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움직인다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접근권이 떨어지는 문제는 어떻게 보완할지를 먼저 생각해주고 먼저 커버를 해줘야 되는 건데 국가나 사회가 그에 대한 고민은 없이 무조건 하라고 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백영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QR코드 시스템이 생긴 것은 좋은 점이라고 본다. 방명록에 적어야 하는 정보가 줄어드는 것도. 미리 모든 문제를 예상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개선하고 보면 또 문제가 생기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도 사각지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바뀌고, 바뀐 것에서 또 문제를 발견해 고치고, 고치고, 고치는 것. 그런 것 자체를 일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완벽한 답안을 바로 실행할 수는 없으니.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 사회가 문제도 굉장히 많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태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던 사례를 보아도. 처음 확진자가 나왔을 때 (성소수자 인권, 아웃팅 등의 문제에 대해)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나마 걱정했던 것보다는 덜 했다. 활동가, 시민들이 애를 많이 썼고. 문제는 여전히 있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은 방식으로 넘긴 게 아닌가.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역동적인 면이 있는 것 같고, 우리도 앉아서 완벽한 답을 기다리기보다는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문제를 제기하되 너무 냉소적으로 변하지 않고 사회를 고쳐나가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진행자: 질문자께서 개개인의 동선이 낱낱이 수집되는 것, 내 동선이 정보화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을 주셨다.


유현미: 굉장히 동의한다. 지금과 같은, 국가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재난의 상상력 속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반역 같고, 나만 생각하는 것 같고, 이기적이라고 해서 이런 목소리가 차단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혼란과 부정적인 느낌들이 이야기되고 기록이 되어야지 고쳐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동선 공개, 방역 체계도 이전의 메르스 경험과 그때를 평가한 백서에서 나온 것이라서. 그를 통해 메르스 때보다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이런 목소리들이 좀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백영경: 개인의 정보 수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코로나 상황과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국가가 좋아하는 빅데이터의 산업화라는 게 이거다.

    개인 신상에 대한 정보는 많이 지우고 암호화하는 편이지만, 계속해서 막대한 양을 수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 엄청난 시장이고, 트렌드고. 의료정보도 - 개인 신상이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 엄청나게 산업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분석하고 팔아먹고 이용하는 것이 트렌드이지 않나. 그러니 이런 문제가 코로나에서만, 코로나라서 나타난다기보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더, 나쁜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 것 같다.

    그러니 코로나로 인해 알게 된, 느끼게 된 것. 개인의 동의 없이 정보가 수집되고, 집적되어 상업적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그 정보 형성에 기여한 사람들은 소외시키고, 오히려 주머니를 긁어가는 방식으로 데이터가 활용되는, 이 시스템에 대한 부분까지 크게 보고, 인식하고, 반대하면 좋겠다. 




공공의료 확충과 커뮤니티 의료


진행자: 공공의료 확충과 커뮤니티 의료가 함께 갈 수 있는 방향이 있을까? 만약 에티오피아식 커뮤니티 의료가 공공의료 확충의 대안으로 제시된다면 보건소의 역할이 커지는 것일지, 혹은 살림의료원처럼 다른 방식의 '병원'이 생기게 될지 궁금하다.


백영경: 어려운 질문이다. 공공의료나 커뮤니티 의료에 대해서는 말하는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서, 단언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의료에서는 커먼즈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커먼즈를 얘기하면서 커뮤니티를 이야기 안 할 수는 없지만, 그냥 커뮤니티인 것도 아니고 그냥 공공의료도 아닌 게 커먼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코로나 위기에 공공병원을 짓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공공 병원이 공공 의료의 전부는 아니다. 공공 의료는 생각보다 안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이유를 물으면, 수급권자인 경우 의료비를 안 내기 위해서는 아무 병원에나 가지 못한다는 것, 갈 수 있는 병원이 정해져 있다 보니 이를 값싼 의료라고 생각해서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니 어려운 이야기인 거다.

    어떤 의료가 좋은 의료라 생각하는가 하면, 나는 마을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의료가 있다고 생각한다. 살림과 같은 곳이 생기면 당연히 좋다. 그러나 이는 의원 규모고, 현대 사회에서 의료 수요라는 것은 의원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커먼즈는 국가도 그 역할을 하고, 시장도 (어느 정도는) 그 역할을 하고, 마을이나 공동체도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하면서, 시민이 주인이 돼서 그림을 짜고 운용할 수 있는, 그런 의료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해야만 하는 부분은 있다. 감염병 관리, 음압 병상 등은 국가가 지원해서 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갈 만한 병원이 있도록 정책을 세우고 공공 병원을 세우는 것도 국가가 필요한 일이다.

    그럼 시장은 왜 필요한가. 자본주의 시장이 없었다면 백신이 이렇게 빨리 개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장이라는 것이 주는 활력도 있다. 시장을 통제 못 하고 끌려다닌다면 문제지만, 민간 영역이 살아있으면 좋은 점이 있다. 돈 벌고 싶은 사람이 돈을 벌고 싶어서 어떤 종류의 것을 혁신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그걸 통제할 수 있고, 그것에 우리 삶이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그런 영역도 살아 있어 주는 게 좋은 거고. 

    기본적으로 마을 안에서 아기가 태어나고 늙어서 죽는 데에 최신의 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최신 의료에 의존하면 할수록 돈도 많이 들고 힘들어진다. 중환자실의 죽음이 좋은 죽음이 아닌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연사하는 과정인 사람들을 중환자실로 보내서 가족과 격리된 채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 목에 관을 꽂아서 유언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은 좋은 죽음이 아닌데, 다들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도 자식이 되면 부모님을 그렇게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그런 방식으로, 좋은 죽음을 맞지 못하게 하여 보내곤 한다. 우리가 나고, 죽는 과정에서는 우리가 살아온 곳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출산과 임종을) 할 수 있게 하는 마을과 지역의 역할도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 시장, 지역 커뮤니티) 이런 것이 맞물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이 길어지고 있지만, 말이 나온 김에)

    커먼즈가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하는 것은, 의료가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나는 그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의료가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공재여야 하는 것은 맞는데, 현대사회에서는 그게 공공재가 될 수 없다. 돌봄이 공공재가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의료의 핵심은 돌봄인데 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돈과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무한정의,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공재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필요한 사람에게 공공재로 공급되기 위해서는 커먼즈, 어떤 울타리가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것. 누구나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선 뭔가 다른 영역에서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감수하는 ‘우리’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회 전체가 원하는 만큼, 최신 약을 먹고, 검사하고, 입원하는 데 이를 공공의 재원으로 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 사회적으로 어느 순간 멈출 수 있는 마음, 그렇지만 꼭 필요한 것은 또 해야 되는 마음 이런 게 없이는 공공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커먼즈 정신,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 


진행자: 말씀을 듣다 보니 공공의료가 이뤄지려면 뭔가 개인의 자율성, 책임 그것으로 인한 연대가 중요해지는 것 같다. 개개인이 자율과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그런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것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백영경: 지금까지 ‘의료’는 개인이 많이 운동을 하지 않은 영역이다. 현재 낙태죄가 사라진 상태고, 그 전에 위헌 결정이 나긴 했지만, 한국에서 낙태죄 폐지 운동이 대중운동으로는 역사가 오래된 운동이 아니다. 서구와 비교해서도 몸과 의료, 몸에 대한 권리, 건강에 대한 것들을 사회 운동으로 해본 역사가 짧다. 페미니스트 운동에서는 항상 내가 피임할 권리, 내가 임신을 중단할 권리, 폐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했지만 그런 것을 대중운동으로 한 게 페미니즘 내에서도 역사가 길지 않다. 의료를 사회가 개입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 역사 역시 짧다. 그러나 앞으로는 많이 생겨나리라 생각한다.

    지금도, 나보다 조금 윗세대인 페미 선배들을 보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더 페미니즘이 좀 더 대중화된 세대가 노후를 많이 고민하는 것 같다. 태어나는 것도 큰일이지만, 죽는 것도 역시 큰 문제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많이 아프다. 인터뷰를 해보면 다들 아픈 데가 있다. 먹는 것에서부터 환경, 심리적인 이유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아토피, 우울, 습관성 탈골, 디스크 등.

    (그래서인지) 아플 권리, 아픈 채로 살아갈 권리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디폴트 시민이라는 것을 튼튼하고 젊은 남성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좀 다른 아플 수도 있고 몸이 약할 수도 있고 노동 능력이 없을 수 있고 우울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람들의, 시민의 얼굴로 대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러다 보면 의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도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는 조금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결국은 더 크게 요구하고 바꿔야 하는 문제다. 


진행자: 죽음의 장소가 왜 사적이 아닌 공적인 공간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 제기를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커먼즈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이 질문에 답을 해주는 것 같았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리고 같은 분이 커먼즈가 너무 아름다운 개념이어서 실질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백영경: 커먼즈가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실 커먼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투쟁이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국가에 맡기지도 않고, 개인이 책임지지도 않는다. 해석이 다양할 수 있지만 사실 나는 커먼즈가 살아남아서 싸워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중세 말에 있었던 개념도 자기 세상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공유지라는 곳에서 먹을 것도 가져오고, 남의 사유지에서는 시위하면 걸리니까 공유지에서 시위하는 것이었지 않나. 우리가 발을 붙일 땅이 있어야 싸울 수 있는 것이니까.

    커먼즈는 주어진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듣기에 아름다운 것에 비해서는 실체가 없고, 끊임없는 투쟁과 끊임없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국가의 자원을 활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할 일은 국가가 하게 하고, 시장도 이용하고, 가족에게 맡기지는 않지만, 개인은 가족을 이루며 살기도 하는- 그런 여러 가지, 여러 모습, 어느 모습만 하지 않는 식이 되어야 한다. 말로는 ‘우리’, ‘우리’ 하지만 그 ‘우리’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나를 넘어서는 눈으로 그 ‘우리’를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기보단 이상적인 것에 가깝고, 현실적으로는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자: (난입) 한 분이 시장 작동 덕분에 혁신적인 코로나 백신이 빨리 개발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주셨다. 기존의 의료영역 이익 당사자들이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장악할 수 없는 기술은 아주 적극적으로 체제에 의해 방해받는다고 본다고. 지난 봄여름에 유튜브에 올라왔던 dit 코로나 백신 워크숍은 빅파마들이 백신을 출시하고 유통하기 시작하자 채널이 삭제되기도 했다고 한다.


백영경: 백신뿐만 아니라 의료가 시장에 의해서 좋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의약품의 경우에는 정말 돈이 되지 않는 것은 필요한 의약품인데도 특허를 묻어버리고 사용하지 않고, 사들이고 폐기하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제약회사 빅파이브 같은 곳들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백신에 한해서라면 다르다) 한국에서는 1조 이상을 백신 구매 비용으로 책정했다. 그만큼 엄청난 시장이기에, 엄청난 돈을 들여서 빨리 움직인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하나의 예로 든 것이다.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국가가 기획하지 않는 영역이 있는 것은 좋다. 마스크가 돈이 되니까 엄청나게 빨리 생산되고 보급되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가 풍족하게 마스크를 쓸 수 있는 것처럼. 단순히 시장이 좋다/나쁘다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시장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말자. 그 수준에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돌봄


진행자: 주제를 바꿔보겠다. 요즘의 뜨거운 감자, 돌봄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분께서 책을 보면 아날로그 돌봄 노동이 마치 택배나 방역, 청소와 같은 필수 노동처럼 여겨지는데, 백영경 작가님은  필수 노동에서 돌봄의 영역은 어디까지로 보고 계신지 궁금하다고 질문을 주셨다.


백영경: 필수 노동이 좋기만 한 말은 아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지자체에서 많이 쓰고 있는데, 국가나 지자체에서 쓰기 시작하면 좋은 말도 나빠진다. 이미 사실 ‘필수노동’은 안 좋은 말이 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안 좋은 말’로 가는데 그걸 그대로 둘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그래선 안 된다. 이걸 활용해서 급진화해야 할 소지가 있다. ‘필수적인 노동‘이라고 하면서 왜 ’필수적이지 않은‘ 노동에 비해 돈을 덜 받느냐는 질문. 데이비드 그레이버라는 인류학자가 대담 형식으로 쓴 불쉿잡(Bullshit Jobs)이라는 책에서 대부분의 고임금 노동자가 불쉿잡,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시간 때우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일자리들. 사무직 같은 경우는 아무런 가치를 생산하지 못 하는 일들이 많은데, 사회적으로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돈을 적게 가져간다는 거다. 관료나 금융 관련이 많은 불쉿잡. 이런 불쉿잡이 왜 돈을 많이 받느냐, 그보다는 필요한 일을 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더 많이 주자. 그런 거다.

    최소한 ‘어느 이상 차이가 나면 안 된다’라고 하는 운동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필수노동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런 논의 역시 보험 들어주고, 백신을 맞게 해주고 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훨씬 더 나아가 사회 체제를 변화시키고 관료제를 축소시킨다거나 금융자본주의를 낮춘다거나 하는 것까지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돌봄 노동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돌봄 노동’을 인간, 인간인 자신을 돌보는 것에만 한정한다면 이 말이 갖는 의미를 다 활용하지 못하는 거라고 본다.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나. 아마존에 가서 나무를 다 베어버리면 그게 엄청난 생산 GDP가 되는데, 나무를 베지 않고, 가꾸고, 물을 주고, 생태계를 돌보면 그것은 ‘아무것도 안 한 일’이 된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돌봄을 단순히 출산이나 육아, 간병 등 머릿속에서 흔히 그리는 개념에 한정하지 않고, 마을을 돌보고 관계, 자연을 돌보는 돌봄, 그리고 유지하는 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일들까지 돌봄 노동으로 봐야 한다. 그렇게 돌봄의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용균 씨, 비정규직 이야기를 하는데 그분들의 일은 선로를 보수하고, 에어컨을 수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본주의라는 것은 물건을 오래 쓰게 하기보다는 수명을 단축시켜 빨리 쓰고 폐기하게 하고 또 사게 하는 작동이기 때문에 물건을 유지 보수하는 일에 대해서는 제값을 쳐주지 않는다. 장려하지도 않는 거다. 그러나 ‘고쳐서 쓴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물건이나 자연에 적용되는 ‘돌봄’이다. 예전의, 버려지는 것이 적은 시대에서처럼 유지하고, 고치고, 아끼는 가치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질문자: 그렇다면 '돌봄 노동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까, 제도적인 개선은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주신 분이 있다.


유현미: 지금 단편적으로 든 생각은,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하려면 백영경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기존의 생산 노동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어떤 위계라든지 가치 평가라든지, '구분'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돌봄 노동을 재생산 노동이라고 한다면, 생산 노동이 가지고 있는 가치, '무언가를 생산한다'라는 것을 여전히 자본주의적인 시각으로 생각하는 이상 그 위계가 바뀌기 어렵고, 그 순서가 바뀌기가 어렵다고 본다.

    코로나 시국에서도 금방 문을 닫았던 곳은 공공 도서관, 돌봄 - 보육 기관들, 교육 기관들이었다. 흔히 재생산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 기관들이 먼저 폐쇄되고, 그것을 가족 안에서 개인이 감당하도록 했지만, 반면 공장, 대기업은 문을 닫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면 LG, 삼성 이런 곳에 다니는 친구들은 다 출근을 했다고 하더라. 지인은 "우리는 아무리 확진자가 나와도 끝까지 출근하게 할 것 같다.“는 말도 하더라. 이런 예처럼 어떤 것은 생산 노동이기 때문에, 생산의 영역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 중단시키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것 안에 내재하여 있는 가치 평가들, 의미부여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대학 건물에 있으니까, 학교 건물이 1년 내내 굉장히 썰렁했다. 물론 조금 좋았다. 그 넓은 공간을 혼자 전세 낸 것처럼 사용하니 편하기도 하더라. (웃음)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 넓은 공간과 자원, 이미 있는 이 시설을 이용하고 활용하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간격만 벌린다면 강의실도 쓸 수 있고, 주민들에게 개방하거나, 필요한 때에 공간을 대여해줄 수도 있을 텐데. 대중교통은 이용할 수 있고, 공장은 이용할 수 있지만, 학교 같은 공공 기관, 공공 도서관은 오히려 폐쇄해버린 것이 굉장히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역시 머릿속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위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돌봄 노동의 가치 평가'라는 것은 결국 '생산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나 위계 설정이 다시 세워지는 것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까 백영경 작가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커먼즈'라는 것이 이상적이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마을 공동체가 행복하게 사는 것, 이런 문제만은 아니다, 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투쟁과 스스로 가지고 있는 어떤 생각, 고정관념, 생활 방식, 관계 맺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백영경: 덧붙여서 잠깐 이야기를 하면 한국에서 (코로나로 인해) 공공 기관이 제일 먼저 문을 닫았지 않나. 재택근무에 들어가고. 공공기관 쪽에서는 "확진자 나오면 욕할 거 아니냐"는 구실을 댄다. 또 사설 기관에서는, 그러니까 공립이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곳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는 열고 싶은데, 못 연다. (확진자가 나오면) 누가 책임지나?"라고 한다. 결국은 시민들이 '이 안에서 확진자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 공간은 필수적인 공간이고, 열려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방역에 신경을 쓰겠지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의식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관계 맺음을 통해서만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그런 '감각'과 '자신감'이 없으면 공공 기관을 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공공기관을 여느냐, 닫느냐의 문제는 그냥 국가에 요구해서 되는 게 아니라 시민들 역시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약간의 불안,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것을 해야 한다는, 그런 감각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좀 퍼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투쟁해야겠다.


백영경: 그렇다. (웃음) 우리도 변화해야 하고.




또 다른 이야기들


진행자: 공통 질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동선 공개로부터 촉발된 온라인 정죄, 불안정한 여성 고용, 정치인의 태도, 개신교의 부패 등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많이 떠 올랐는데, 이 책에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보고 이야기해 볼 만한 주제들이 있는지 질문을 주셨다.


유현미: 이건 개인적인 관심사일 수도 있는데, 코로나 담론의 경우에도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해야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시민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비대면 상황을 겪으며 디지털 기술이라든지, 다양한 담론들이 많이 형성되면서 전문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더 강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책 작업이나 코로나를 거치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사실 사회과학 안에서도 빅데이터라든지, AI 기술이라든지, 이런 것에 다들 미쳐있다. 이런 것이 학문이고, 과학이고,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고. 그렇게 잘해야지(그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만) 뭔가 더 권위를 얻을 수 있고,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기본적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나 고찰은 더 약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지식이 만들어지는 것, 누가 이 지식을 말하고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 있어서 어떤 권위를 얻게 되는가, 이런 부분들을 더 고민해보고 싶고, 좀 더 다뤄졌으면 좋을 주제라고 생각을 했다. 


백영경: 요즘 중요하게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는 '시설 격리 - 코호트 격리' 문제다. 사실 코로나 초기 '코호트 격리'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냥 해야 하니까 하나보다‘, ’저렇게 해도 되나?'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코호트 격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장애인 시설 사례를 보면, 걸린 사람, 안 걸린 사람 모두 한곳에 두고 격리를 하고 있는데 이 상황이 누구를 보호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집단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지. 그리고 이 사람들의 인권은 없어지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형태다.

    장애인 탈시설 운동에 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직접 보지 못해서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것 중에 하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정신질환자들을 병원에 수용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고 지역 공동체로 돌려보냈다고 하더라. 정신 병동이라는 것을 없앤 경우다. 아주 긴급한 상황의 경우 입원을 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신 질환자들을 수용한다는 개념 자체를 없앤 것이다. 잘 된다고 한다. 잘 돌아간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탈시설의 흐름이 사회적으로도 점점 한 흐름으로 (관심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코로나랑 맞물리면서 시설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 문제가 좀 더 크게 등장한 것이다.

    코로나 국면에서 '코호트 격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아마 개선이 금방 되고 그럴 수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우리가 시설에 수용한 사람들, 사회에서 요구하는 평균적인 인간형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설에 수용해서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치워놨던 사람들, 이 사람들의 인권 문제는 바로 코로나가 드러내 준 민낯 중의 하나다. 이것은 앞으로도 굉장히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코호트 격리라는 것이 시민들이 끝없이 '나만 안전하겠다' 하면서 '관리 안 될 수 있으니 그 집단을 격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시민의식을 가진 사회이냐, 아니면 '그렇게는 안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피차간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서 약간의 위험,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의식을 가진 사회이냐에 따라서 방역의 모습이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조금 더 좋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진행자: 사전에 받은 질문 말고 온라인 참석자들의 질문도 두 분 정도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 채팅창, 수하님 질문을 읽어드리겠다. 돌봄 영역에 관한 질문인데 "돌봄 활동은 밀접한 개인적 인간관계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돌봄이 지나치게 산업화하여 사회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제공되고 소비되는 서비스/상품으로만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돌봄 활동 참여자들이 체력적 부담뿐만 아니라 감정적 소모도 클 것 같아요. 돌봄을 사회화할 때의 구체적인 방식이 중요할 듯해요. 실질 부담의 과도한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노동 관련 제도나 가치 인정에 근거한 보상 체계뿐만이 아니라, 돌봄을 일상적 공공 활동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시민 문화 변화도 같이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린이나 장애, 노화, 만성질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민적 일상에 적극적으로 초대하는 도시의 기반 구조도 필요하겠고요."

    와.. 이건 뭐 대안을 주셨다.


현장의 사람들: (감탄) 동의한다!


진행자: (이어서) "의료적, 실질적 돌봄이 잘 이루어지더라도 그러한 돌봄이 일상에서 보이지 않도록 은닉되는 작동 방식이라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근데 많은 사람이 부동산값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에서 어떻게 물리적인 공공의 영역이 능동적으로 돌봄 활동을 수용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백영경: (격한 공감) .. 이건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그렇지 않나?


유현미: (격한 공감) 적극 동의한다. 동감하고 지지한다!


백영경: 사실 앉아서 생각만 할 때는 이것이 잘 될까 싶은데, 이렇게 나와서 공감을 해주시고, 이렇게 생각을 발전시켜서 말씀해주시는 분들, 독자분들을 만나면 '막 될 것 같은' 생각이 좀 들지 않나? (흥분)


유현미: 그렇다.


기술자: 현실은 좀 극과 극인 것 같다. 아까 언급된 개인정보 수집 같은 경우도, 워낙 많이 드러나는 사회를 살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아까 질문하신 분들처럼 맞춤형 광고라든가 그런 것들에 불편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다 밝혀지고 기록되니까- 라는 생각으로 극단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여기서도 의견을 주는 분들을 보니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또 막상 생각해 보면, 이런 북토크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백영경: 그래도 이런 북토크 같은 게 자꾸자꾸 생기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새로운 흐름이지 않나. 사실 10년 전과 지금만 해도 흐름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다른 흐름이 생겨나는 것 자체만으로 그냥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지금 이상한 분들도 한때 다 젊었거든. 나이 먹으면서 드는 생각 중의 하나가, 윗세대를 욕하면서 그 아랫세대가 뭔가를 할 때쯤 되면 세상이 뭔가가 바뀔 줄 알았는데 안 바뀌고, 더 나빠지기도 하더라는 거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하면 다 좋아진다고 생각할 만큼 나이브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계속해서 새로운 흐름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저 흐름도 결국은 안 될 거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새롭게 생겨나는 흐름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키워낼 것인가, 결국 거기에, 가꾸는 마음으로 생각한다. 정원을 가꾸는 마음이 결국 그런 거라고 본다. 이게 안 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구 안에서 함께 살다 가는 것처럼, 우리가 피어나는 계절을 살고 있는 가운데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활짝 피우고 조금 더 잘 가꿀 것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무 공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일 수는 없지만, 이렇게 새롭게 돋아나는 것들을 보면 끝없이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진심인 것 같다.



진행자: 여기서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우고 가시는 것 같다. (웃음)


백영경: 그렇다. 아니면 어디 가서 얻겠나. 씨앗이 허공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시장에 가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웃음) 결국은, 이것이 작아 보여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조금 더 의미 있게 하고, 더 많은 새로운 흐름을 연결을 하고,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이후의 세계


진행자: 마무리 질문이다. 우리나라가 이제 2월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해서 하반기까지는 전 국민이 다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정부에서 이야기하는데, 코로나가 물러나고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때가 오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코로나가 물러가고 난 이후 시대는 어떻게 예측하시는지, 어떻게 상상하시는지 궁금하다.


유현미: 사실 끝난다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신을 맞고, 마스크를 벗게 되더라도, 이 경험을 통해서 익숙해진 것 중 새롭게 일상으로 자리 잡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온라인 회의도 좀 더 익숙하게 하게 될 것 같고, 친밀성의 방식, 그러니까 관계 맺는 방식도 좀 이전과는 다르게 되지 않을까.

    그랬을 때 필요한 것은, 좀 더 장기적으로 조직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꼭 투쟁, 거리에 나가는 투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끼리, 흩어지고 다시 모인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계속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사실 이 책을 내고 이렇게 불러 주신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웠다. 이렇게 인문 독서 토론 모임이 있다는 것도 굉장히 신기했고, 독자들의 반응을 받으면서 오히려 배우게 되는 지점들도 많았다.

    또 한편으로는, 책에도 드러났지만, 페미니스트로서,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생각을 스무 살 때부터 해오긴 했지만, 항상 정말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하는 말이 먹힐 거로 생각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2015년도부터 있었던 대중적인 물결들을 전후로 사람들의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버틴 시간들이 있다. 그게 꼭 페미니즘 지향 안에 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관계들이나 물길들을 만나면서 지금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어떤 장기적인 기대를 가지고 만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백영경: 나는 말을 많이 해서, 짧게 끝내겠다. (웃음)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당장은, 사회는 훨씬 더 불평등한 곳이 되어가고 있고, 불평등은 더 심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지금 보면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한 불평등의 사회로 빠져드는 중이고. 코로나 못지않게 이 불평등이 우리의 집합적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버텨야 하는 것이고, 버텨서 살아남게 되면, 나 혼자 살아남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를 나 하나의 생존만이 아닌, 서로 조금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시급한 그런 시대를 우리가 맞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진행자: 좋은 말씀 감사하다.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인데, 지금 마이크를 켜고 작가님들께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분이 있는가?


지선 (잠옷을 입은 참가자): 저요! 중요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제 대학교 때 좋아했던 교수님을 만나 뵙고 왔다. 그런데 백영경 작가님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 교수님 수업을 듣던 때가 생각났다. 동양 관련 수업이었는데, 너무 좋아해서 한복도 입고 가고 그랬었다.


현장의 사람들: (환호, 두 작가님 모두 좋아하심)


지선 (잠옷을 입은 참가자): 오늘 이렇게 북토크가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의상으로 격을 좀 갖추고 올 걸 그랬다. 하필 잠옷을 입어 가지고.... 그런 생각이 들었고, 오늘 두 분 이야기 정말 너무 좋았다.

    코로나. 코로나를 가지고 이 감염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지?'라는 부분에서는 게을렀다. 코로나 시대니까 포장, 배달 음식 문제는 어쩔 수 없지- 라는 식으로 포기하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다음에 대한 상상을 할 수가 있었고, 내가 그동안 어떤 점에서 게으르게 생각했고, 부족했구나 하는 점을 정말 '팍'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정말 책을 읽을 때 보다 두 분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게 훨씬 더 좋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삼천만 대한민국 국민들 반성해야 한다! (진지)


현장의 사람들: (환호)


지선 (잠옷을 입은 참가자): 오늘 너무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두 분께 너무 감사하다.


두 작가님: 감사합니다


진행자: 한 분 정도 더 말씀 더 들어보겠다. 소감 공유해주고 싶은 분 계신가?


(온라인의 침묵)


진행자: 오늘따라 다들 수줍음을 타셔서... 지금 채팅으로만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면 채팅방에 자유롭게 소감을 남겨주시길 바라고 인사하도록 하겠다. 작가님 두 분 고생 많으셨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현장의 사람들: (오가는 인사)



그리고 채팅방에 남겨진 소감


해진: 오늘 두 분 말씀 너무나 공감하면서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상은: 네 정말 좋았어요. 저도 깊이 공감해서 눈물 찔끔 날 정도로 좋았습니다.


청하: 책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시점으로 생각을 많이 배워갑니다. 특히 커먼즈 부분에 대한 설명 정말 감사합니다. 신천지 부분을 이렇게 자세히 다뤄준 것도 인상 깊었어요. 해당 저자분에게도 감사의 말씀 꼭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


ROH: 두 분 작가님의 행보를 응원할게요. 책 많이 써주세요.


지선: 모두가 말할까 봐 빨리 손을 들었는데. 꿀잼+유익했습니다. 넘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수하: 정말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앗 그리고 저는 백영경 선생님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도 읽어서 ㅋ 다른 생각도 많이 났어요. 삼 주 동안 같이 이야기 나누어주신 분들도 릴리쿰 현장에서 수고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상욱: 감사합니다!


SOYEON: 감ㅅㅏ합니다 :)


hyunwoo: 두 분 선생님 고생하셨어요. 제주에서 뵙는걸로ㅎㅎ


혜영: 재미난 시간이었습니다. 뿅~!


yoona sun: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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