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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나 라잎 Apr 29. 2022

숲 속의 작은 컨테이너 호텔, 아틴 마루

서울 근교 여행: 아틴 마루

잠이 안 오는 어느 날 밤, 봄바람에 마음이 살랑살랑해졌는지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졌다. 봄은 여름과 다르게 가까운 곳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 서울 근교의 숙소를 찾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아틴 마루'. 그때가 새벽 4시였는데, 내 여행 메이트인 그래서씨한테 당장 말하고 싶어 일어날 때까지 뜬 눈으로 새벽을 지새울뻔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키보드를 두드렸는데 그래서씨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불었는지 단번에 OK.


아틴 마루는 양평 어딘가 꽤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한 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곳이다. 가는 길에 보이던 편의점엔 '마지막 편의점'이라고 표시를 해놓을 정도. 다행히도 우리는 각자 와인 한 병과 간단한 안주를 챙기고, 출발 전엔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먹을거리를 사 길을 떠났기 때문에 더 필요한 것은 없었다.


아틴 마루에 꽤 가까워질 때쯤엔 벚꽃 길을 지난다. 아름다운 벚꽃 길을 지나 아틴 마루에 다 다를 쯤엔 길이 상당히 좁고 가팔라진다. 눈이 내린 겨울엔 어떻게 올라가지 싶다.


우리가 고른 (컨테이너는?) Spring, Summer, Autumn, Winter 중에 'Summer'. 보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Summer 컨테이너. 우리가 머물 공간


방에 들어가면 CD 플레이어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CD에는 들어올 때 문에서도 보였던 아름다운 계절 이름이 적혀있다. 봄에 미리 맞이한 '여름'.


하지만 우리의 여름에는, 아직 봄도 채 오지 않았다. 나뭇가지엔 이제야 새순이 맺혔다.


생각해보니 집 주변에도 아직 푸르름이 오지 않았는데, 이곳에 봄이 왔을 리가 없다. 마음에 봄바람이 불어서 설레발을 쳤나 보다.


계절에 상관없이 늘 푸른, 초록 나무들마저 보이지 않았다면 정말 황량할뻔했다.


여기서 할 것 이라곤 이렇게 창가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 것 밖에 없다. 놀랍게도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곳이라 미리 영화를 다운로드오거나, 할 것을 준비해와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건 창가에 앉아 먹고 마시기.


우리는 '숲'과 어울리는 와인을 가져오기로 했다. 보통 음식과 어울리는 것을 가져오는데 장소에 어울리는 와인을 준비했다. '숲'과의 페어링이다. 그 첫 번째 와인은 도그 포인트. 마셔보니 숲과 그리 잘 어울리진 않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여름 과일 향에 신이 났다. 의도치 않게 'Summmer'와 어울렸던 와인.



곁들인 안주로는 엔다이브(벨기에 양배추), 안에 치즈가 들어있는 피망과 그릴드 버섯, 블루베리 잼과 크림치즈. 그리고 여름을 느낄 수 있는 꽃도 눈으로 맛보는 안주다.


혹시나 심심할까 봐 컬러링북도 챙겼다. 수많은 그림 중에 창밖에 보이는 것과 비슷한, 나무가 많은 그림을 골랐다.


와인이 칠링 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컬러링북에 색칠도 해보다가 컨테이너 주변을 돌아보았다. '생각의 의자'같은 모양새의 의자와 테이블. 우리에게 주어진 텐트. 각 방마다 텐트하나씩 주어진다.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여름 날씨였던 날. 텐트에 누워보니 놀러 온 기분도 나고 색다르긴 했지만,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산 내음 맡을 수 없어 아쉬웠다.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고, 어두워질 무렵엔 두 번째 와인을 오픈했다. 레드 와인은 흙 내음이 나는 얼씨한(earthy) 와인으로 준비했는데, 이번엔 숲과 페어링에 성공했다!


저녁엔 메인 건물에서 영화를 상영해주는데, 이날의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 개봉했을 때와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내 기억 속에 아직 너무 생생해 열심히 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금 불편했던 건 등받이도 턱을 괼 테이블도 없었다는 것. 오래 앉아있기 힘들어 금방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두 번째 와인도 비우고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의 조식. 빵과 감자수프, 토마토 마리네이드, 아메리카노.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그동안의 여행에서와는 다르게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남았다. 몇 개의 나무에 더 색했다.


단점을 찾자면 취사가 안된다는 것과 냉장고가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한다는 부분이 있지만, 새로운 하루를 보내게 해 준 아틴 마루. 풀이 무성한 여름이나 눈 내린 겨울에 한 번쯤 더 이곳에 갇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왼) 다음 날 아침을 먹을 때 창 밖으로 보이던 풍경, (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를 배웅해 준 벚꽃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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