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일기 66호

by 그럼

# 4월 23일 수요일.

아내가 감기에 걸렸다. 아내에게 옮았는지, 잠복기가 길었는지 나도 목이 건조했다. 어제부터 아내는 일찍 집으로 보내고 혼자 가게를 봤다. 점심시간만 어쩔 수 없이 같이 챙겼으나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 시간도 그렇게 바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둘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장사 걱정이 더 컸다. 이렇게나 가게에 매달려버리게 된 삶이라니, 덫에 갇힌 기분이었다.

엊그제 휴무일, 동네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의 카페에 갔었다. 작은 언덕 옆에 위치해 통창으로 푸른 나무숲이 바라다보이는 곳이다. 초록 충전이 필요했다. 플랫화이트와 시나몬롤을 주문하고 테라스 자리로 나가서 앉았다. 서늘한 바람이 산들 불었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 내부는 사람들의 대화소리로 시끄러웠지만 밖은 바람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렸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침묵을 지키며 영화 관람객처럼 파란색을 들여다보았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조심히 가라앉는 듯하다가, 일 생각이 막 침전한 생각들을 휘저었고 마음은 다시 흙탕물이 되었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는 두려움, 잘하고 싶다는 욕망, 가야 할 곳도,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빨리 이곳을 떠나 이동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들로 마음이 들썩거렸다.

몸 걱정, 돈 걱정보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들이 더 걱정이었다. 남들이 철없는 짓으로 보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른다. 욕심은 없는데 왜일까. 읽고 싶을 때 읽고, 굶지 않고, 내 삶을 살 수 있으면 충분한데. 이미 그런 자족적인 삶을 살면서도 못 깨닫고 있는 것인지, 가게가 서서히 침몰하는 중인데 기만에 빠진 것은 아닌지, 그 모호함이 몸을 더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몸이 으스스한 게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고 싶었지만 남극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이었다. 어디로 향하든 북쪽인 곳.

손님이 일찍 빠졌고 혼자 마감했음에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가게 문을 닫았다. 밖이 환했다. 부대찌개 사장님과 저녁 인사를 했다. 이웃과 인사만 하고 지내도 세상이 평화로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좇는 길, 새롭게 눈뜬 가치, 전망, 욕망, 야망, 이 모든 것이 종종 어쩌지 못할 만큼 공허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위태하거나 모호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삶, 암울함 이상으로 알 수 없는 불안의 근원이었다. 무엇인가 입을 무한히 크게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조르주 페렉 『사물들』



# 4월 25일 금요일.

금요독서회 날이다. 자기소개 시간에 한 참석자가 챗GPT에게 물어 책방을 찾아왔다고 했다. 이제 AI의 눈치도 봐야 한다. 그는 챗GPT를 누구보다 가까운 말동무로 삼고 있었다. 매일같이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그런데 연이은 참석자들의 챗GPT 고해성사가 이어졌고, 모임 참석자 중 절반이 AI를 심리 상담사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밤마다 챗GPT와 대화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었다. 또 다른 참가자는 그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유료 결제를 했다고 했다. 비싼 녀석이 마음을 더 잘 내어줄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돈에 대한 강박에 관해 막 이야기를 꺼낸 참이었다. 그들의 수줍은 고백을 듣다가 어쩐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책이 아닌 것으로 사람들이 묶였다.

한창 코딩할 때 AI 도구를 많이 사용했었다. 처음엔 사람처럼 느끼기도 했다. 고맙다고도 하고 괜히 말투를 신경 썼다. 도구라는 것을 되뇌면서도 이 도구가 가진 매력에 빠지지 않기란 쉽지 않다. 말 못 하는 돌멩이도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게 사람인데 하물며 이런 똑똑하고 친절한 녀석에게 마음을 느끼지 않을 요량이 있을까. 영화 'her'는 더 이상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아닌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은 이미 끝이 났고 사람들은 불쾌한 골짜기를 건너 간 모양이었다. 참석자들에게 사람이 더 좋지 않냐고 묻기에는, 가시 돋친 말들로, 무시와 외로움으로 이미 많은 상처를 안고 왔는지 몰랐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 상처를 입히는 고슴도치들처럼.

챗GPT 이전 GPT3가 발표되었을 때 놀랐던 점은 그 뛰어난 성능이 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혁신적인 아이디어였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네트워크의 사이즈만 커졌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신경망도 그와 같다면, 만약 우리 정신의 구석구석을 낱낱이 헤집어 볼 수 있다면. 파랑새를 찾고, 아름다움을 즐기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궁극의 경이로움을 마주하게 될까? 아니면 우리의 존재는 그저 먼지처럼 흩어져 버릴까.

우리는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왔다. 함께 책을 읽었고, 따뜻한 공감을 건네고 마음을 나누었다. 그 다정함을 접하며 새삼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가 우리이고, 우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삶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라는 것 말이다. 그리고 상처받기 쉽고 완벽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마음,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 말이다.

시대가 변해도 상상하는 것과 고민하는 것들, 가치들은 바뀌지 않는다. GPT를 위시한 AI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우리는 몰입하고 감탄하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매일 상처 입고 다치지만 꿋꿋이 온기를 나눈다. 그렇게 책과 함께, 사람과 함께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어려운 시절을 난다.



# 4월 30일 수요일.

책방일기 플랫폼을 브런치로 옮기기로 했다. 신청서를 작성하다 보니 내 물음에 내가 답해야 한다. 책방지기를 하면 무엇이 좋은지 떠올려보았다. 조바심이 없어진 건 내 일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책을 읽고, 아름다움을 하나씩 깨닫고, 앎이 늘어날수록 회사 책상에 앉아있는 8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젊음을 낭비하고 있었다. 인문학 작가들은 모두 자기 삶을 살고 있었다—혹은 살았다. 그들은 삶을 제대로 맛보았을 것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작품들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문학을 읽으면서도 종종 조바심이 났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많았다. 주업 외에도, 게임도 만들고, 앱도 만들고, 이모티콘도 그렸다. 복잡한 하드웨어를 만들어 소셜펀딩도 시도했다. 성공의 기준이 사람들의 관심과 돈이라면 제대로 성공한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끌리는 마음을 억누르기 쉽지 않다.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게 일상이 되길 바랐다. 일이라는 것이 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단지 돈을 벌거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그리고 표현하는 것이었으면 했다.

아이도 없고 아내와 둘이 같이 벌어 돈은 금방 모였지만 돈 버는 재미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고속열차를 탄 기분이었다. 남들보단 조금 빨리 가긴 하지만 절대로 레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멀리 보이는 멋진 장소는 내 옆자리까지 들어와 앉지만 난 결코 그곳에 이를 수 없겠다는 예감. 내일은 어제나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 그래서 내렸다. 진흙밭에 내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에 발을 내딛을지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온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다.

퇴사 후 바로 AI를 접목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분야에 발을 담갔고 남들보다 먼저 가능성을 보았으니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다. 돌아보니 느릿느릿하게 예술 작품 만들 듯 작가주의적으로 일했다. 빠르게 출시하고 피드백받는 스타트업 마인드로 일해야 했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잘하고 싶었던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번아웃이 온 아내도 일을 그만두고 함께 가기로 했다. 다시 책을 열었다. 책이 길을 알려주는 건지도 몰랐다. 글자 사이사이에서 발견했다. 그곳에는 나를 위한 공간이 있었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 그렇게 아름다움을 발견한 사람들, 공감해 주는 사람들, 나 자신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길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부담감을 조금은 덜어낸 마음으로 순전한 독자의 자리에 앉아 편하게 책을 읽는다. 읽고 싶은 책은 마음껏 장바구니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