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숨내
엄마와 껴안을 때마다 코속을 가볍게 훓고 가는 내음,
알코올과 쥬스의 급한 뒤섞임.
엄마의 눈을 피해 거실 한 켠 쇼파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지만,
정작 나는 부엌 한 켠에서 내 눈을 피해 소주와 탄산쥬스를 급한 손놀림으로 섞어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오랑제리의 누리끼리한 색깔을 내는 엄마의 칵테일은 내게 눈속임으로 딱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속내를 다 알고 있다.
나와 함께 하는 하루를 온정신으로 버티지 못할 엄마의 약하디 약한 정신은 새벽부터 술을 부른 것이다.
엄마가 정신과를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부터다.
내가 5살 때부터니까 아마 10년이 맞을 것이다.
엄마는 커피를 좋아한다.
오랜 유학생활을 한 엄마에게 남은 것이라곤 진하게 내린 모닝커피의 추억과 알량한 외국대학 졸업장 한장 뿐일 것이다.
그 흔한 친구 한 명 조차 남기지 못한 엄마는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캐리어에 경영학이라 쓰여있는 전공 서적 한 권에 강박증 환자처럼 사날랐던 질나쁜 아베크롬비 옷덩이들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가 새벽마다 보약처럼 내려마신 것은 검은색 스타벅스 커피였다.
그러다 나의 병이 발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마시는 것의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찍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한다던 엄마에게서 싸구려 웃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삼겹살을 먹으러 갈 때마다 들리는 옆테이블의 웃음소리.
중년 남성의 걸죽한 허허허의 소리도 아니고, 중년 여성의 피식 하고 마는 웃음 소리가 아닌,
젊의 여자들의 하하하, 웃음 뒤에 꼭 걸쳐지는 걸쭉한 욕지거리,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 중년의 아빠는 서둘러 자리를 뜨곤 했다.
그런데 엄마가, 늘 무표정에 감정없는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새벽부터 그런 웃음소리를 내면서 나는 삼겹살집의 소주냄새를 어렴풋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오늘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가지 못한 게 맞다.
나는 학교 냄새만 맡아도 숨이 가빠 눈이 돌아갈 것처럼 현기증이 나는 병에 걸렸다.
병원에서는 형형색색의 약을 주지만 나의 머리는 그 약들에게 전혀 양보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학교 생각만 하며 울렁거리는 속때문에 찬물을 마셔보지만 도리어 위의 노란 액체가 나오고 엄마가 등을 쓸어 넘겨줄 때까지 토악질을 해야한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만날 천날 학교에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공식적으로 학교 가지 않아도 제적당하지 않는 날짜들을 학기초에 세어두고 정말 힘든 날은 안가는 것이다.
요새는 공식적으로 학교 안가도 되는 제도가 많아서 나같은 병약자, 외톨이에게 좋은 하루하루다.
아빠가 출근하고, 엄마는 나를 가슴 깊이 안아준다.
그리고 내가 학교를 못가겠다고 한 날에는 어김없이 쥬스와 삼겹살집 소주가 뒤섞인 엄마의 숨내음을 맡았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학교를 안가서 텅텅 빈 시간을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거실을 지나가는 길에 롤리춤을 추며 엉덩이를 잠깐 흔들었는데도 자지러지게, 야하게, 경박스럽게 웃어대며 '넌 너무 귀여워'를 수십번 말하신다.
아마도 나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학교를 가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15살이나 먹은 내가 엄마에게 귀엽다는 소리나 들으려고 학교를 가지 않는 다는 말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