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냄이

by 따뜻한 다경씨

수경, 정윤, 선하, 지연…….

네댓 개의 이름을 종이에 쭉 적은 후 성을 붙여 하나씩 불러보았다. 남편과 딸아이는 수경이란 이름이 지금과 비슷해 어색하지 않다고 하고 아들 녀석은 굳이 개명할 필요 있냐며 시큰둥하다.


예쁜 이름을 갖고 싶었다. 학창 시절 내 이름은 선심 쓰듯 흔하디 흔해서 A, B, C라는 알파벳까지 덤으로 얹혔고, 같은 이름 찾기라도 하면 동명이인이 어찌나 많은지. 남들은 부르기 쉽고 친근하다지만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오래 전부터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십 년 전 큰 시누이가 개명을 했다. 원래 이름은 ‘기자’로 성과 합하면 이기자이다. 여고시절 선생님이 출석부를 부르면 교실 안은 친구들 까르륵 웃는 소리로 야단법석이 났고, 운동회 때는 짓궂은 담임선생님이 반 구호를 ‘무조건 이기자’로 하는 통에 창피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큰 시누이는 전반전이야 놀림감이었지만 인생 후반전은 예쁘고 세련된 이름으로 멋진 골을 넣어보고 싶다며 오십이 넘어서 이름을 바꾸었다.


다행스럽게 내 이름은 놀림거리는 아니다. 그래도 흔치 않은 이름이면 어땠을까. 가끔 이름과 얼굴이 묘하게 매치되어 이름만 들어도 본 적 없는 그 사람 표정까지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올 때 있다. 귀여운 이름이면 얼굴도 귀염성 있고, 도회적 이름이면 외모에 까닭모를 차가움이 흐를 것만 같다. 그렇다보니 밋밋하고 흔한 이름 때문에 얼굴도 평범한 인상이 되어버렸나 싶어 이름을 바꾸면 분위기도 달라질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름만 듣고 표정이나 분위기를 읽어낸다는 것은 억측일 수 있다. 이름 따위가 별개냐고 여기면 그만이지만 이름이 그 사람을 드러내는 제2의 분신이라는 생각이 들 땐 이야기는 달라진다.


못냄이란 이름이 있다. 자란 후에야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이해되었지만 어린 시절엔 창피해서 견딜 수 없었던 이름. 엄마의 아잇적 이름인 못냄이다. 바닷가 마을인 외가 문턱만 닿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못냄이 딸 왔냐고 하는 통에 서릿발이 든 듯 차갑고 퉁명스러운 눈길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쏜살같이 외할머니에게 달려갔던, 구멍 난 그물망을 깁느라 바쁜 외할머니 손붙잡고 왜 우리 엄마가 못생겼냐고 엉엉 울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위로 아들 둘을 낳은 후 아래로 세 명의 아이를 더 낳았는데 낳자마자 안타깝게도 둘 다 첫 돌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도 태어나면서 여러 번 고비를 넘겼고, 불안한 마음에 네 돌이 되어서야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며 제대로 된 이름도 그때 지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그런 경우가 허다했고, 또 태어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이름도 천하게 지어 불렀다는데 엄마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못냄이란 이름은 호적에 적힌 이름 대신 불리어 외가 동네에선 그게 낯익은 엄마 이름이 되어 버렸다.


어린 날엔 외할머니와 엄마가 아무리 그 이야기를 해 주어도 소용없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밀어내고 싶었다. 이름 때문에 외가를 가지 않겠다고 버틴 적도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왜 다들 못냄이라 부르는지 얼굴도 보지 못한 외할아버지가 야속할 때도 많았다.


한번은 중학교 2학년인 오빠가 못냄이 아들이라고 부른 외가 동네 아주머니를 쫓아가 억지 사과를 받아낸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아주머니는 외가에 놀러온 옛 소꿉친구의 아들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인사한 것인데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철없는 까까머리 중학생이 자신의 집 마당 한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서서 주민등록증에 있는 엄마 이름까지 들먹이며 다시는 못냄이 아들이라 부르지 말라고 따지듯 덤벼들었을 때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기막혔을까.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이해시키다가 그래도 안 되니 결국 ‘다시는 부르지 않으마.’ 울며 겨자 먹기로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이 일은 삽시간에 온 동네로 흘러 넘쳐 못냄이 아들 당돌하고 버릇없는 녀석이라고 소문나고 말았다. 한창 예민한 나이다 보니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도 막상 또 그 이름을 부르면 그것만 화살처럼 뇌리에 꽂혀 기어코 사과를 받아내고야 철부지 속을 가라앉혔던 것이다.


엄마는 어땠을까. 뒤돌아보면 엄마는 단 한 번도 그 이름을 싫다고 한 적이 없다. 엄마한테 이름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을 토로하면 ‘못냄이를 못냄이라고 부르지, 무어라고 불러. 못생겨서 부르는 것도 아닌데 야단스럽게.’라며 웃고 만다. 그래도 나는 그 이름을 들으면 자꾸만 엄마가 못생긴 것 같아 어떤 날은 엄마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나는 눈곱만큼도 엄마 안 닮았어.’ 하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곤 했다.


호적에 오른 이름은 아니지만 본명보다 더 많이 불렸던 못냄이. 엄마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라도 자식인 나와 오빠는 그 이름 때문에 어린 시절 곤혹을 치르기도 했던, 평생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외가를 가도 못냄이를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고 못냄이 아들딸이라고 먼저 인사해야 알아보는, 추억 속에 머문, 옛 우물 같은 이름이 되어버렸다.


엄마 말대로 그깟 이름이 뭐 대수라고 야단스럽게 구는가 싶다가도 이름 때문에 웃고 운 사연들을 넌지시 떠올려보면 이름을 바꾸는 게 별난 일도 아닌가 싶다. 누군가 불러주지 않으면 글자뿐인 간판에 불과할지라도 좋아하는 이름으로 불린다면 즐겁지 않을까.


이름을 종이 위에 긁적여 본다. 나도 인생 후반전은 밋밋하지 않은, 좀 더 색다른 이름으로 새롭고 멋진 골을 넣어보고 싶다. 익숙한 이름이 아니라 처음에야 다소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새 이름으로 바꾸어 살아보는 것도 두터운 겨울옷을 훌훌 벗어던진 봄날의 여행만큼 가볍고 신선한 일일 것이다.


커버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freesia0627/120130229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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