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아쓰

by Poison After Feeling
Find what you love and let it kill you - 찰스 부코스키

미국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항상 찰스 부코스키를 꼽는다. 그를 좋아하게 만든 문장이 바로 “Find what you love and let it kill you”라는 문장인데, 여전히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은 조금 서글프다. 좌우지간 이 책은 서른아홉 살 여자가 스물다섯 살 남자를 만나서 생기는 좌충우돌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그보다는 욕망의 탐구와 자기혐오의 관점에서 이 책을 보려고 한다. (연애 감정으로 접근하기에는… 마음이 좀 쓰리기 때문에…)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간의 간극. aimez vous brahms는 분명 의문형이지만 물음표가 붙지 않는다. 작가는 이 부분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은 찾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는 이 질문이 질문으로 시작해서 망각에 대한 자각으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대상의 망각 혹은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다고 오랜 시간 믿어 왔지만, 그 대상의 실체에 대한 망각. 난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경우이다. 앞서 소개한 대로 내가 믿고 살아온 삶의 방향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었다. 나에게 그 대상은 오랜 시간 영화… 혹은 영상이었는데, 그와 가까운 ‘대체적인’ 일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해오면서 스스로 ‘그래도 그 엇비슷한 길을 가고 있잖아’라고 세뇌시키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질문을 회피하게 되면서 이제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그 실체에 대한 의문만이 남았다. 용기 있는 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겠지만, 겁쟁이인 난 그런대로 이 질문을 끝까지 덮어두고, 가끔 이렇게 뼈 때리는 글을 볼 때면 뜨끔하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끝까지 답을 찾는 자들은 지금부터 할 말이 넘쳐나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말을 줄인다.


혐오를 좋아하는…

최근에 재밌게 본 드라마 중에 <베이비 레인디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있다. 굳이 좋아하는 극의 분위기를 따지자면 희망차고 사랑이 넘치는 작품보다는 우울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드라마에 끌렸던 부분은 내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자기혐오’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자기혐오에 삶을 부식시키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 지긋지긋한 자기혐오의 가장 힘든 점은 내가 그걸 인지하고 있다고 해서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자기혐오의 모델 그 자체이다. 여주(폴)는 자신을 끔찍하게 좋아해 주는 차은우 뺨치는 존잘 연하남을 놔두고 자기를 두고 매일 바람이나 피우는 뚱땡이 (체격이 좋은) 로제에게 끊임없이 마음이 흔들린다. 로제는 차라리 혼자 있고 싶을 정도로 순간의 쾌락만 있을 뿐임을 잘 알면서도 폴을 두고 바람을 피운다. 차은우 뺨치는 조각 연하남은 상처받을 것을 알고 있고, 그 고통 때문에 폴을 좋아하고 있는가 의구심을 품기도 하지만 이를 사랑이라고 믿고 폴을 좋아한다. 제삼자의 독자 입장에서 보면 속 터지고 이해

가 가지 않지 당연히.

이해 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게 자기혐오의 핵심이다. 본인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지만 끊을 수 없는 파괴적인 행동에 중독되는 것. 이 지점에서 무서운 점은 자기혐오가 정말로 지독한 중독성을 가졌다는 거다.

뭐… 자기 계발서나 동기부여 영상이나 정신병원에서는 자존감이 낮아서 그렇다며 자존감 높이는 법 어쩌고 저쩌고 솔루션을 내놓겠지만, 그런 거 백날 봐서 자존감이 올라간다면 그게 어떻게 중독이겠냐. <베이비 레인디어>나 이 책의 결말이 이다지도 현실적인 것은 결국 그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실의 나 역시 이 중독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할 거 같다. (이 책의 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 (본명 프랑수아즈 쿠아레)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한 게 재밌다.) 자기 파괴와 자기혐오는 결이 조금 다른 거 같다. 정신 분석학이나 행동 심리학에서 이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지는 따로 찾아보지 않았지만, 자기 파괴와 혐오의 차이에는 ‘중독’이 있는 듯하다.

가령, Find what you love and let it kill you라는 문구 역시 자기 파괴적인 면이 다분하다. 담배를 피우는 행위 자체는 자기 파괴적 행위라고 볼 수 있지만, 건강 염려증이 있어서 담배를 피울 때마다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자기혐오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끔 이런 콘텐츠를 통해 따끔하면 한 번쯤은 다시 한번 본인을 통찰할 기회가 생겨 좋다. (어쩌면 이 역시 자기혐오일지도) 그럼에도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둘러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