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쓰
드디어 해냈다. 2년 전에 빌려줬던 책을 이제야 다 읽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그게 바로 접니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완독 하지 못했으리라…
이 독서모임을 주최한 상아감독님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끔찍하게 사랑했던? 끔찍하게 생각했던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초반부(아버지의 수기)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딸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버지의 복수극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딸을 끔찍하게 생각해 왔으며 충동적이긴 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딸을 죽인 진범이 아버지라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낌없는 사랑을 주어야 하는 부모가 딸을 배신하다니… 겉으로는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모두 가면이었고, 사랑받고자 노력했던 요리코의 진심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마음 한 켠에서는 증오하기도 했으니, 요리코의 입장에서는 철저한 배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코는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다.
진실을 마주한 결과
유지(요리코의 아빠)와 유미에(요리코의 엄마)가 끝까지 숨기고자 했던 진실, 남동생을 잃게 만들고 엄마를 하반신 마비로 만든 교통사고가 요리코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가 자신을 외면한 이유를 깨닫고 만 것이다. 요리코는 아빠의 사랑을 얻고 싶어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엄마와 닮아가는 본인의 외모를 이용해 아빠와 잠자리를 가져 아이를 가지려고 한 것이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사고로 죽었던, 아빠가 간절히 바라던 아들을 안겨주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여. 하지만, 아빠의 사랑을 받고자 했던 행동은 안타깝게도 요리코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
“요리코는 아빠를 보고 기쁜 마음에 마중을 나가려던 게 아니었을까요? 아이다운 애정표현이 아니었을까요?”
사실 사고는 어린아이였던 요리코가 맞은편에서 오는 아빠 차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뛰쳐나갔다가 일어난 것이었다. 요리코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를 사랑했고,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던 아이였기에. 그러나 유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상처 입은 아내와 상처받은 본인만 바라보며 요리코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저 이 사고의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만이 요리코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며. 요리코에게 가장 큰 상처는 아빠의 외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지에겐 간절히 바랐던 아들의 죽음과 아내의 하반신 마비가 상처였다. 시간이 지나가면 다 괜찮아진다고 하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척했다. 치료하지 않은 상처는 곪기 마련이듯, 유지의 마음속 상처도 그렇게 곪아가고 있었다. 유지가 본인의 상처를 드러내고 치료를 받았다면, 우미에에게라도 털어놨다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까지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이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상처는 드러내야 비로소 해결이 된다.
어긋난 사랑
유지는 우미에에게 자살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기를 썼다. 요리코를 임신시킨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죽어야만 아내의 영원한 사랑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살인자가 된다고 해도 딸을 죽인 사람을 죽였으니 우미에도 이해할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우미에는 알고 있었다. 요리코와 유지가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 요리코가 임신했다는 사실, 유지가 딸을 죽였다는 사실, 모두. 유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테스트하고 싶어서, 자신을 사랑하는 유지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 모든 사실을 묵인했다. 우미에가 수기를 믿는다고 생각한 유지는 유미에의 영원한 사랑을 얻고자 죽음을 선택했다. 아이들을 위해 가장 순수한 동화를 쓰면서 가장 순수하지 못한, 너무나도 잔인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어쩌면 유지와 요리코는 우미에가 쓴 잔혹동화의 주인공이었을지도..
어른 아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자기 잘못으로 돌리고, 어른들은 자기 잘못을 남한테 돌린다. 어른의 사과에는 늘 조건이 붙고 진심이 없다”
_ SBS <굿파트너>
어쩔 수 없는 사고였음에도 요리코는 아빠가 자신을 미워하게 된 이유가 자신의 탓인 양 자책했고, 근본적인 이유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임신을 하게 되자 아빠의 사랑을 드디어 받을 수 있겠다 생각했던 가엾은 요리코. 유지는 요리코를 죽인 뒤, 자신의 죄를 사과하고 뉘우치기는커녕 완벽범죄를 만들기 위해 무고한 사
람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끝을 내버렸다. 자신은 아버지로서 옳은 일을 한 것이란 가식적인 수기까지 써가며. 요리코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도, 용서도 구하지 않고 너무 쉽게 자신의 목숨을 포기해 버렸다. 마지막까지 요리코를 애틋해하기보다는 우미에만 생각하며.
'요리코를 위해'라는 제목과는 달리 요리코를 위한 사람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리코를 가장 생각해 준 사람은 부모가 아닌, 일면식도 없는 추리소설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였다. 저자는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탐정을 극 중에 만들어냈고, 요리코를 위해 진실을 밝혀주었다(알고 보니 린타로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소설 중 하나라고 한다). 탐정답게 한 명씩 인물을 찾아가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흥미로웠으며, 책이 술술 읽히는 요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찾아가는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이름을 외우는 데 머리가 아프긴 했다. 인물 관계도를 작성하면서 읽은 책은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딥하게 정리하면서 읽지 않아도 된다. 린타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요한 인물들만 남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