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쓰
프롬과 매티, 지나의 사랑 이야기
책을 읽기 시작하면 지나는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알 수 있는데 - 지나, 제노비아 부인 - 그 때문에 초반에 누가 진짜 프롬의 아내인지 혼란스러웠다. 프롬과 지나는 부부다. 프롬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마저 병을 얻게 되자 어머니의 간병을 하며 힘든 시기를 지내던 프롬의 곁을 지켜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지나였다. 비록 지금은 잦은 잔병치레로 인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쇠약하지만, 이전에는 프롬의 어머니를 직접 간호할 정도로 건강했다. 투병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지기 두려웠던 프롬은 지나에게 “함께 있어달라” 말했고 그 한 마디로 둘의 부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프롬과 지나의 이야기는 이게 다다. 이 책은 줄곧 매티를 향한 프롬의 사랑과 프롬을 향한 매티의 행동들 만을 묘사하고 있다. 프롬은 지나가 사
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매티를 갈망했다. 프롬에게 지나는 매일 불평을 늘어놓는 병약한 아내에 불과했고, 매티는 보는 것만으로도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존재였다. 함께하지 못할 바에야 죽는 게 나은, 강렬하고 뜨거운 사랑. 그것이 프롬과 매티의 선택과 결말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소설에서 프롬은 자신의 마음이 변한 이유가 지나의 병과 불평불만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프롬은 진정 지나를 사랑한 적이 없으며, 그가 사랑한 사람은 그의 온 생애에 매티 하나였을까? 나의 대답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모든 싫증에도 갖은 이유들이 있었다.
떡볶이는 속이 쓰리기 시작해서 멀리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난 나의 단짝 친구는 너무 제멋대로 굴어서 싫어졌다. 20살에 처음 만났던 남자는 살이 쪄서 싫어졌고 매일같이 듣고 부르던 힙합은 시끄러워서 싫어졌다. 나는 떡볶이 대신 삼겹살을 찾았고 단짝친구 대신 새 친구를 사귀었으며, 같이 카페에서 일하던 남자애를 좋아했고 클래식을 즐겨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들이 싫증이 먼저였는지 새로운 것에 대한 애정이 먼저였는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시에 일어났다. 내가 클래식을 접하지 않았다면? 함께 일하던 남자 애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힙합을 즐겨 듣고 살이 쪄서 배가 나온 그 애를 계속 만나고 있을지도 몰랐다. 프롬도 그렇다. 프롬은 자신이 지나에 대한 마음이 떠난 후 메티를 만났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메티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지나를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지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명확하고 그것이 선제되어야만, 매티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인간의 욕구와 도덕, 그 사이의 갈등
꿈과 현실, 자유의지와 사회적 억압, 자연적 본능과 도덕성. 인간은 언제나 이것들 가운데서 갈등한다. 늙고 병약한 지나보다 어리고 생기 넘치는 매티에게 마음과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일 테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가장 우등한 생물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바로 도덕성과 윤리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행위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도덕적 판단에 따라 사회적으로 행위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이러한 의문이 생긴다. “도덕의 기준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사회까지 이것에 관한 논의는 계속해서 이루어져 왔다. 다수가 옳다고 말하면 그것이 도덕이 기준이 된다는 사상,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도덕의 기준이 된다는 사상 등 … 이것에 대한 여러 답변들이 각 국가의 사회적 사상으로 자리 잡고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를 만들어 냈다. 불륜 혹은 바람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동, 서양의 차이나 세대 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그 반증이다.
세드 엔딩? 해피 엔딩?
이 책의 결말은 앞서 말한 개인의 도덕적 관점에 따라 해피엔딩 일 수도, 비극적이기 그지없는 세드 엔딩일 수도 있다. 나의 관점에서는… 그냥 엔딩이다. 영원히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닐 줄 알았던 매티는 그날의 사고로 지나와 다를 바가 없어졌고 프롬은 영원히 - 죽을 때까지 -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 속으로 끝도 없이 걸어가고 있다. 프롬과 매티의 강렬한 사랑은 결국 이전에 프롬이 지나와 경험했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은 평범하디 평범한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뭐…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전 로맨스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선프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연달아 읽으면서 사랑의 정의는 더욱 모호해졌고 작중 인물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바람과 불륜에 대한 포용력까지 높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개인의 인성과 도덕성, 능력 이런 것들에 대한 연관성도 어지럽게 흩어졌다. 찰스 3세는 지금도 불륜녀와 결혼 생활을 (아주 잘) 이어나가고 있고 마크롱은 유부녀와 불륜을 저질렀지만 프랑스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다. 사랑과 불륜의 한 끗차이, 그게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