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 JD 샐린저

아쓰

by Poison After Feeling

대학생 시절 우리 과에는 특이한 조교님이 한 분 계셨다. 외모나 풍기는 분위기도 그랬지만, 글을 잘 쓰는 걸로 유명했다. 그분이 쓰는 필명이 '문홀든 1'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이름인 홀든에 자신의 성을 붙인 것이다. 그 탓인지 <호밀밭의 파수꾼>은 왠지 나에게 있어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작품 중 하나'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질풍노도 청소년기 책하면 머리에 곧장 떠오르는 책이 2권 있는데, <데미안>이 하나고, 나머지 하나가 <호밀밭의 파수꾼>2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대학생 때인가 한번 읽고 그 뒤로 읽은 적이 없는데 비교적 최근에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인 JD 샐린저의 연대기적 영화인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고 다시 읽게 됐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샐린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샐린저의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번 퇴학당하는 모습 등이 주인공 홀든을 통해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귀찮은 사람은 책 대신에 이 영화를 보시면 되겠다.


인간 실격, 아니 짐승 합격


JD 샐린저는 말 그대로 신비주의 작가로 은둔 생활을 오래 해서 대중에 그의 삶에 대해 잘 알려진 바가 없다. 위 영화 역시 그리하여, 평전에 픽션을 가미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르겠음)

<호밀밭의 파수꾼>은 출판 이후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고, 영화에 따르면 당시 극 중에서 홀든의 시그니처인 빨간색 사냥 모자를 쓰고 샐린저를 스토킹 하는 수준, 안 그래도 인간 혐오자인 샐린저는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사실이 그런 걸, 오빠는 어떤 학교나 다 싫어해, 싫어하는 것투성이야. (...) 한 가지만이라도 좋아하는 걸 말해 봐." "한 가지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 말이냐?" 하지만 곤란하게도 나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극혐 하는 것은 차고 넘치지만 좋아하는 것은 한 가지도 생각하기 어려워하는 홀든이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동생 피비다. 위 대화는 동생 피비와 홀든이 나누는 대화로 홀든의 성격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너는 장래 희망이 뭐니?

? : 호밀밭의 파수꾼


인간 혐오의 달인 홀든이 유일하게 아끼는 것이 자신의 동생 피비인 것은 단지 자신의 동생이기 때문이 아니라 피비가 순수한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본단 말야. (...)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럴 때 내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지."

이 책의 제목이자 주요 테마가 되는 구절이다. 자신 또한 아직 학생임에도 홀든은 이다음에 장차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가 방황하며 낭떠러지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꿈꿀 수 없는 그런 장래희망을 홀든은 꿈꾸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책에서나 샐린저 (=홀든)은 꽤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다자이 오사무도 그렇고 어째 부유한 애들이 더 우울한 맛을 타고나는지 모르겠다... 몸 편하게 귀하게 자라서 생각이 많아져서 그럴까...?) 타고난 성향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린 시절의 어떤 PTSD를 갖고 있어선지는 모르겠지만, 샐린저는 어린 시절 겪은 방황기에 이를 제대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어른의 부재를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당시에도 스토킹을 당할 만큼 많은 팬을 뒀을 정도면 귀한 집 도련님이던 머슴 자식이던 만국 공통으로 누구나 자신을 제대로 인도해 줄 '어른'에 대한 갈증은 똑같은가 보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라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갈증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일 테고. (생각해 보니 변호사 '따위'는 안 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생각 자체가 도련님 대가리 꽃밭에서 만 나올 수 있는 생각인 거 같기도...)


어른 실격


영화에서 샐린저가 은둔 생활을 할 때 유일하게 응한 인터뷰가 학교 신문에 올리고 싶다고 인터뷰를 요청한 학생의 인터뷰였다. 이후에 그 기사가 대형 신문에 올라간 걸 보고 샐린저가 광분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어린아이들을 아끼고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을 사랑하는 샐린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나 또한 어린이에서 어른이 됐다는 사실을 까먹고는 한다. 시끄럽게 울어 되는 아이들, 쿵쾅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화딱지부터 난다. 나에게 어린이들이란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나에게 어른이란 결혼한 친구들, 운전 잘하는 친구들 이런 친구들이 '어른'이었는데... 홀든한테 뒤통수 세게 맞았다. '어른'과 '어린이'의 구분이 있는 이유는 어린이들은 보호가 필요하고 지도가 필요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는 인간 실격 + 어른 실격인 건가... 1)

나는 언제쯤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냥 적당히 반숙된 어른이라도 될 수 있긴 할까. 1 언제까지 아이들이나 괴롭히고 시간에 쫓기며 사는 네버랜드의 후크 선장처럼 살 텐가.라고 얘기해도 크게 변하는 일은 없겠죠 내 자신.

거위들은 모든 알을 품는다고 한다. 자신의 알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알이 아니더라도. 얼마 전에 당구공, 전구, 타조알까지 품는 거위 영상을 봤다. 자기 알이 아니더라도 자기 알처럼 품어주는 것이다.

"겨울이 되어서 호수가 얼면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나요?"

홀든은 인간 존재에 회의론적인 캐릭터지만 동시에 많은 것에 애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다. 특히나 연약하고 어린 생명체들에 말이다. 나 자신 하나 건사하고 내 아픔도 외면하기에 일수인데 다른 무언가에 애정을 갖고 걱정해 주는 건 사실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이런 마음의 여유는 주머니에서 나오는 걸까...)


홀든이나 거위처럼 내 것도 아닌 거에 진심으로 애정 어린 시선을 갖는 건 여전히, 앞으로도 어렵겠지만, 나도 여전히 방황하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가끔은 같이 길 잃은 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같이 길 잃을 수 있음 주의)




1 이 분이 쓴 시를 너무 좋아서 내 왼쪽 팔뚝에 문홀든 님의 시가 새겨져있기도 하다.

2 그래서인지 최근 릴리즈 된 <약한 영웅 CLASS 2>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인용되기도 했

다. + 영화 <파수꾼> 안 봤지만... 영감을 얻은 듯...?

1 저도 조용히 손을 들어봅니다...ㅎ... - 예쓰

1 ㅋㅋㅋㅋ표현 너무 좋다ㅋㅋㅋㅋㅋ 비빔인간 아니고 반숙인간^_^ - 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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