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보는 갤러리
2019년은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자,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문을 연 지 50년이 되는 해였다. 이번 광장전은 중요한 역사적 순간들이 어떠한 파장으로 한국의 사회, 문화, 그리고 미술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거시적으로 살펴보는 전시이다. 때문에 한국미술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1부(1900~1950)는 덕수궁관(~2020.2.9) 2부(1950~2019)는 과천관(~2020.3.29) 3부(2019~)는 서울관(~2020.2.9)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기획전이다.
"미술은 대중을 교육시키는데 공헌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덕수궁관에서 진행 중인 1부 전시는 우리나라의 어두운 시기가 반영된 문화예술과 당시의 다양한 작품들을 교과서가 아닌 전시로써 대중들에게 접근성 좋게 다가오는 전시이다.
관람시간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화,목,금,일 10:00 ~ 19:00 *수,토 10:00 ~ 21:00 (19:00 ~21:00 야간개장 무료관람) 발권은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하지만 위치의 접근성도 좋고 보통의 미술관보다는 늦은 시간까지 운영을 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관람료
전시에 따라 상이하지만 공기관인 만큼 낮은 전시료와 다양한 무료, 할인 혜택이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이다.
덕수궁은 종합 선물세트라는 생각이 든다. 한옥의 아름다움과 근대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석조전, 그리고 미술관까지, 빌딩으로 가득한 서울의 시내에서 이러한 쉼터는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고 더욱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녹색의 푸르름은 덜하지만, 겨울만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외로움은 온전하게 혼자만의 시간도 선물한다.
1부 - 의로운 이들의 기록
RECORDS OF THE RIGHTEOUS
전시는 19세기 말 개화기에서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해방을 거치면서, 격동의 시대 한가운데에서도 '의로움'의 전통을 지켰던 역사적 인물과 그들의 유산에 초점을 맞추었다. 오래도록 후세에 기억되어야 할 올곧은 인물들의 유묵에서부터, 망국의 시대에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민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의로운 이들의 기록", "예술과 계몽", "민중의 소리", "조선의 마음"을 키워드로, 미술 작품뿐 아니라, 근대기 신문, 잡지, 문학, 연극, 영화 자료 등 시대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매체들이 총망라되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입장이 공존했던 역동적인 한국의 근대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1부 전시에서는 나혜석, 최익현, 고희동 등의 자화상을 볼 수 있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명함에 쓴 유서였다. 자신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의 명함에 유서를 써 지니고 다녔던 기분은 어땠을까? 동시대를 살지 않았기에 상상으로 그치지만 이러한 생각들이 전시에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 같다.
구석에서 은색의 소화기를 볼 수 있었다. 붉은색의 소화기보다 소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값은 더 비싼 아이러니, 이유는 심미성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 전시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올곧음과 의를 담은 작품들이 펼쳐져있다. 경관(景觀)을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2부 - 예술과 계몽
ART AND ENLIGHTENMENT
전시는 개화파들의 활동에 주목한다.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중국을 통해 세계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개화파들은, 역관 출신의 중인 계급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교육'을 통해 '계몽'을 하는 것이 곧 '애국'의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교육과 출판 사업을 통해 위기에 처한 국가를 '문명화'하는 일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오세창과 최남선을 필두로 그의 주변에 있던 많은 예술가들(안중식, 이도영, 고희동 등)이 이와 같은 문명의 보급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고, 교과서를 디자인하며,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내용을 담은 삽화를 제작하는 일 등이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이후 삼일운동이 일어났을 때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하며, 실직적으로 삼일운동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큰 실물을 보관, 보존하는데 힘쓰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교과서에서나 접했던 금속활자와 인쇄물들을 실물로 볼 수 있었다. 정교함에 카메라보다 시선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전시를 직접 관람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만족감이랄까.
3부 - 민중의 소리
SOUND OF THE PEOPLE
전시는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성장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대해서 살펴본다. 아나키즘(무정부주의)과 사회주의의 계보를 이어,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부터 자극받은 공산주의 이론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짧지만 강렬한 유행을 낳았다. 문예 분야에서는, 순수 문학과 순수 미술의 범주를 의도적으로 벗어나, 판화나 인쇄 미술과 같은 빠르게 복제 가능한 매체가 급성장해 갔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신분제가 사실상 무색해지는 대신, 불특정 다수로서의 '대중'의 개념이 전반적인 문화 현상을 지배했다. 각종 대중 매체의 발달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촉발하였다. '신극'이라고 불린 새로운 종류의 연극을 포함하여 각종 공연예술이 활발해졌고, '영화'가 수입 혹은 제작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프롤레타리아 - 무산계급(無産階級), 정치상의 권력이나 병력의 의무도 없고 다만 자식밖에 남길 수 없는 무산자들을 의미하는 라틴어 'Proletarius'에서 나온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활을 이어 가는 무산자 계급, 노동력 이외에는 생계 수단을 갖지 못한 빈곤층을 지칭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1840년대에 사용한 개념이다.
참고 - 네이버지식백과
이주홍 -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 중앙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셨고 동화와 소년소설에서의 사실성을 기저로 한 해학과 기지, 풍자로 엮어지는 대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 참고 - 네이버지식백과
3부의 전시는 수많은 포스터, 목판화, 일제강점기 시기 예술가들의 작고 다양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사진으로 담기보다는 마음으로 담을 것들이 많으며 종종 벽에 새겨진 문장들이 인상 깊은 3부였다.
4부 - 조선의 마음
MIND OF KOREA
전시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조선 고유의 미학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자 했던 일련의 예술가들에 대해 살펴본다. 이쾌대, 최재덕, 김환기, 이중섭 등 한국 근대미술사를 빛낸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들은 일본에서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으며 세계의 조류를 파악하는 한편, 조선의 전통 미학을 어떻게 서양의 흐름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소담한 백자의 미학,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고대적 상상력과 힘찬 기운, 수묵화에서 기원한 유려한 선표현 등을 강조하면서, 이들은 '조선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각자의 방식을 찾아나갔다.
가장 반가운 마음으로 봤던 마지막 4부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의 작품들과 이중섭의 작품이며 익숙한 화법을 띈 작품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근대미술과 현대미술 그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전해지는 느낌은 강렬하다. 마지막의 마지막 즈음 이쾌대라는 작가를 접하게 되었다.
거장의 그림을 실제로 마주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 아닐까? 작품의 크기에서부터, 분위기까지 역동적이고 힘이 넘친다. 우리의 역사이고 아픔이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였을까?
김환기 님의 기록이 생각난다.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 모두 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마지막 전시실의 마지막 작품에 걸맞았다.
광장 1부가 끝났다. 해가 짧아져 밤의 석조전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기억은 지워질 수 있지만 역사는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흐름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며, 배운다기보다는 느끼게 된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획전인 만큼 만족도도 아주 높았다. 광장의 2부는 과천관에서 계속된다. 동물원 옆 미술관으로 가는 날을 기약해야겠다.
ps. 눈 내리는 석조전 앞에서 기약 없는 옛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