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여전히 취직을 못했다. 영화를 그만하겠다는 결심이 어려운 거지, 취직은 금방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 고용 시장은 최악이고, 내 경력도 변변치 않다. 상황 탓과 내 탓이 합쳐져 결과는 서류 탈락이다. 물론 내가 까탈스러운 면도 있다. 내 커리어 상 받을 수 있는 최대의 대우를 받으려고 노력하다보니 여전히 취업을 못 했다. 객관화의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시장에서 내 몸값은 이정도구나. 후두려 맞으면서 깨닫는 과정이다.
그와중에 광고를 찍었다. 내 커리어로 대단한 광고를 찍을 수는 없고, 유튜브 브랜드 필름이다. 인포머셜과 웹예능 사이의 줄타기 같은 포맷이랄까. 연출은 물론 촬영, 편집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남길 수 있을 만큼의 예산을 받았다. AI의 발전으로 영상 단가가 계속 내려간단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작게 받아서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최저임금도 안 나올 수준이다.
예산을 듣고도 이거라도 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했다. 그리고 처절하게 후회하는 중이다. 관찰 예능에 버금가는 편집을 해야하고, 거기다가 온갖 디자인적 요소를 직접 만들어야한다. 그런걸 다 차치하고, 내가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내가 편집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영화 제작에는 크게 세가지 단계가 있다.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이다. 프리 프로덕션은 영화를 찍기 위해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각색, 스토리보드, 미술, 스케쥴, 예산 등. 프로덕션은 촬영이다. 포스트 프로덕션은 촬영 후 영화의 후반작업을 뜻한다. 편집, 음악, 색보정, 믹싱, CG 작업. 감독의 성향마다 어떤 단계를 좋아하는지 나뉘는데, 내 경험상 포스트 프로덕션을 좋아하는 감독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방구석에서 혼자 영상을 만지는게, 작업자와 1대1로 작업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감독이 많더라. 그래서 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 난 프로덕션을 좋아하는 감독이니까. 나를 제외하고 프로덕션을 좋아하는 감독을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다들 현장에 가는게 토할 정도로 싫다고 하는데, 난 현장이 좋았다. 내가 상상하는게 현실로 이뤄지는 광경을 지켜보는게 싫을게 뭐가있나. 시간안에 촬영을 마쳐야 한다는 압박, 배우나 스태프와의 의견차이 조율, 예상치 못한 난관의 출현 등 현장의 불확실성에 대해 부담감을 많이 느끼시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런 것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특이하다. 대신, 나는 포스트 프로덕션을, 정말정말 싫어한다.
편집을 직접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편집을 직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산상의 문제로 직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편집자가 편집 거부를 한 적도 있었다. 편집자가 편집 중간에 그만둔 적도 있다. 이래저래 편집을 많이 했는데, 프레임 단위로 쪼개가며 영화 리듬을 만드는 그 과정이 너무 괴로웠다. 편집을 하면 살이 빠지고, 술이 늘고, 담배가 늘었다. 글을 쓸 때에나 촬영을 할 때 그렇다는 감독이 많은데, 난 편집할 때 그렇다. 후반작업만 하면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된다. 그런 성향의 사람이 직접 편집까지 하는 유튜브 브랜드 필름을 맡다니. 무슨 생각이었던 거냐.
정 취업이 안 되면 마지막으로 가려고 했던 곳이 유튜브 채널 편집자다. 재고해야할 것 같다. 제 명을 다 못살 것 같다. 그럼 뭐하지. 난 뭘 할 수 있을까. 난 뭘 해야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을 끝내면 브랜드 필름도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더이상 안 하려고 하는데, 자꾸 도망치면 내가 갈 곳이 남아있기는 할까. 그러고보니 스스로 도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언제까지 방황만 할 건데. 사춘기가 40대까지 가면 안 되지 않을까. 오호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