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한국영화 산업대담을 읽고

by Renaissance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행하는 한국영화 웹매거진에서 2025년 한국영화 결산 기사를 냈다. 제작사, 배급사, 펀드운용사, 극장운용사, OTT 관계자가 함께 모여 한국 영화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도모 자리를 대담 형식으로 기록한 기획 기사다. 한국 영화 시장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은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게 참, 코미디가 따로 없다.

https://magazine.kofic.or.kr/webzine/web2/2759/pdsView.do


서로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관계자들이 나와서인지, 속 시원한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아부성 멘트가 더 자주 나오는데 만약 기자의 의도가 이런 눈치보기와 대기업 영향력을 고발하는게 기사의 목적이었다면 정말 탁월한 기획이었다고 박수쳐주고 싶다. 한국 영화의 위기는 원투데이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5년간 이어왔던 이야기라 이미 굵직한 이유들은 합의가 되어있다. 근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유일하게 나온 이야기는 홀드백이었고, 모두 속 시원하게 홀드백 하지 말자고만 한다.


1. 홀드백

홀드백은 극장에서 상영한 영화를 극장에서만 걸어야 하는 기간을 뜻한다. 극장이 아닌 다른 매체에 풀지 못하게 법제화 하는 것이다. 대담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홀드백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말한다. 영진위 정책위원까지 나와 홀드백을 해봤자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통계 자료를 인용한다. 프랑스는 1년이 넘게 홀드백이 설정된 것에 대해서 프랑스만 특이한 거고, 다른 나라들은 전부 홀드백이 짧아지는 추세라고 덧붙인다. 홀드백은 단순히 통계 조사로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극장에 걸린 영화는 극장에서 보지 못하면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통계 조사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문화를 만드는 제도다. 극장 영화는 극장에서 보라는. 홀드백 해봤자 관객들이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마치 증명된 사실인양 얘기하는 모습들이 우습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에서 자국 영화가 인기 있는 나라가 미국, 중국, 인도, 프랑스, 일본다. 헐리우드가 있는 미국과, 국가에서 외국 문화를 통제하는 중국은 논외로 하자. 그러면 세 나라가 남는다. 일본은 홀드백 기간이 6개월이고 프랑스는 17개월이다. 자국 시장이 살아남은 세 개의 나라 중 두 개의 나라가 홀드백이 있는데 이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관객의 변화된 관람 문화나 산업의 유연성 등을 말하려면 왜 프랑스가 17개월이나 홀드백을 유지하면서도 극장 관객 수 회복이 한국보다 훨씬 빠른지에 대해서도 반박을 해라. 프랑스가 '특이하게' 유독 홀드백이 길다고 얘기할거면 프랑스 영화시장이 한국보다 안 좋다는 논거를 들어야 할 거 아닌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되고 있는 나라를 예로 들면서, 그건 거기거 특이해서 그렇고 하고 넘어가는게 이게 논리적으로 합당한 일인가. 더 웃기는건, 일본은 영화 시장이 2025년에 활황이었는데, 그건 2025년만 반짝 그런거라고 언급하고 넘어간다. 홀드백에 관련돼서 긍정적인 논거들은 언급하지 않거나 이런 비약적인 논리로 넘어가버린다.


2. 극장객단가

세계에서 극장 티켓값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국가는 한국이다. 코로나기간동안 50%가 올랐다. 하지만 네 편으로 나눌 만큼 긴 기획기사에서 티겟 가격 얘기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너무 올라버린 제작비를 얘기할때 극장 객단가 얘기를 잠깐 언급할 뿐이다. 극장운영사가 나와있으니 눈치가 보일 수는 있다. 적어도 대담을 이끄는 사람이 질문은 던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영진위가 롯데 눈치를 보나.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 이전의 8~90% 회복세를 보이는데 반해 유독 한국 영화 시장만 50%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이유를 티켓값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이 간단한 질문을 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일까? 그리고 객단가 얘기를 꺼냈으면, 아직도 객단가 책정을 깜깜히로 하고 있는 극장에게 따져야 하지 않나. 롯데가 패널로 나와있는데, 이거 언제 투명하게 공개할 거냐고 따져야지. 통신사와의 비밀유지 협약 때문에 못 밝히는게 말이 되냐고, 그럼 그 계약을 2026년부터는 더이상 연장하지 말라고 말을 해야지. 만약 이 대담을 서로의 얼굴을 까지 않고 블라인드로 목소리 변조로 했으면 완전히 내용이 달라졌을거라는데 1달러 걸 수 있다.


3. 대기업

시장을 살리는 응급처치 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차라릴 대기업을 지원해달라는 얘기를 한다. 영진위가 내놓은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금은 제작사 대상이다. 투배사는 제외인데, 영화의 투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건 대기업이니까 그들을 지원하는게 영화 제작 편수를 늘리는데에 도움이 될 거라는 논리다.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앉아서 뭔 놈의 대담을 한다는 것인가. 다행히도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게 영진위 정책위원이다. 대기업을 지원한다고 해서 그들이 그 돈을 영화를 만드는데 쓸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정확하다. 대기업이 티켓값을 올려서 그 돈으로 영화 제작을 했나? 단통법을 만들어 마케팅비가 줄어들면 여력이 생긴 통신사들이 통신비를 내릴 것이라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통신비는 내려가지 않았다. 기업은 무조건 수익을 좇게 되어있다. 아이맥스, 스크린엑스, 리클라이너, 레스토랑관 등 온갖 고급 관들을 늘릴 돈으로 영화 제작을 했으면 편수가 덜 줄었을 것이다.


4. 신인 기용 + 제작비

신인을 기용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투자 결정을 할 때 검증된 배우와 검증된 감독만 요구하니까 신인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환경이라는 거다. 그런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단다. 당신들이 바꾸는 거다. 바꿔야 할 사람이 도리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 하는 거다. 정치인들이나 사용하는 수사학이다. 영화계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글만 좋으면 돼'이다. 글이 아무리 좋아도 투자가 안 되는 시장이 된 지 오래되었는데 무슨 종교적 믿음도 아니고 글 얘기만 하는 사람들이 영화계 태반이다. 내가 제작사들과 미팅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감독님이 연출 안 해도 돼요?'다. 내 글만 사가서 다른 연출을 붙이겠다는 거다. 좋은 시나리오를 고를 안목부터 다시 길러야 한다. 그러려면 글을 많이 읽어야 하고, 독립영화를 많이 봐야한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고 있다. 내가 영화를 시작한 2016년도에도 이미 영화제에 영화계 사람들이 없었다. 술 마시러 가는 부산영화제 빼고. 신인을 기용할 거면 영화제에 가서 영화제가 선별한 영화나 다 보시라. 그리고 제작비가 상승한 것도 문제라며 이젠 손익분기 100만 영화를 만들 수 밖에 없으니 영화제작비를 낮추기 위해 촬영회차를 줄이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넷플릭스가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배우 개런티 얘기는 언급조차 없다. 이게 뭔 놈의 대담이냐. 차라리 연말 대담이 아니라 연말 송년회라고 해라. 신인 감독 기용해서 신인 배우로 영화 만들면 제작비를 1/10로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안 본다고? 기성 감독에 큰 배우 쓴 영화도 관객들이 안 본다고 지금 대담하고 있는 거잖아?


5. 결론

이미 붕괴된 영화시장이라 더 안좋은 전망만 하면 다들 힘빠지니 뭔가 그래도 희망적인 내용을 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는건 알겠다. 대담에서 그 언급도 나온다. 2024년도에 2025년 전망 했을때에도 좋은 지표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 위해 노력했었다고. 그때에는 그래도 붕괴는 안 했지. 지금은 더 안 좋으니 억지로 희망적으로 만들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그래도 방 안의 코끼리들은 언급을 해야하지 않겠나. 더이상 후퇴할 곳도 없는데. 언제까지 코끼리를 무시할건가. 지금이야말로 코끼리가 있다고 다같이 외쳐야 하지 않나.


정말, 당신들에겐, 코끼리가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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