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by Renaissance

2016년에 쓴 시나리오가 있다. 패기가 넘치던 시절이라 제작 가능성 따윈 생각하지 않고 만들고 싶은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내 세번째 장편 시나리오였고, 스스로 검열을 하지 않고 오로지 욕망만으로 쓴 시나리오는 이 작품 까지다. 네번째 시나리오부터는 제작 가능성, 현실성 등을 따져가며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 이 시나리오는 당연히 팔리지 않았다.


2020년, 우연한 기회에 웹툰 제작사 대표를 만났다. 내가 쓴 시나리오 중에 웹툰화 시키고 싶은게 있다고 말씀드렸다. 절대 영화화 될 가능성이 없으니, 그래서 더 웹툰에 어울린다고. 의외로 이야기는 잘 풀렸고, 2021년에 웹툰 기획계약을 하게된다. 정말 열심히 고쳤다. 웹툰이라는 매체에 대해 정말 공부를 많이 했고, 시나리오를 완전히 뜯어 고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내가 부족했는지, 회별 시놉시스를 쓰는 단계까지 왔는데 갑자기 프로젝트가 중단된다. 소설로 써보는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소설로 출간 후 웹툰화를 시키는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이 시나리오의 소설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023년까지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소설 쓰기는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렸다. 각색을 두 편을 했고, 오리지널을 장편 시나이로를 다섯편을 썼다. 영화로 돈을 벌던 시절이니 소설 쓸 시간이 어디있나. 그러다 2024년부터 일이 끊겼고, 다시 소설 프로젝트를 시작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시나리오야 많이 써봤지만 소설은 써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단편 소설 정도다. 그러니 소설이 잘 써질리가 있나. 영상으로 보여줄 거니까 묘사는 이 정도까지만 하자, 하고 넘어가는게 시나리오다. 소설은 그 공백을 전부 묘사로 채워야한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가며 소설 쓰기를 미뤘다. 이 일이 있으니 이것부터 하자. 제작지원 공고가 떴으니 저것부터 해보자. 이런 식으로 또 안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2025년이 되었다.


올해는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치유의 목적으로 소설을 썼다. 쓰다보니 탄력이 붙었고, 그러다보니 반절을 넘겼다. 올해도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에 점점 우울해지니, 성취를 하나라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이라도 완성하면, 난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아니게 된다. 무려 장편소설을 완성한 거니까. 그래서 더 달렸다. 올해 꼭 끝내고 싶었다. 하루에 한 페이지 쓰는 것을 목표로 하다가, 두 페이지를 쓰고, 세 페이지를 썼다. 2021년에 시작된 장편소설 프로젝트가 드디어 끝났다. 올해 수익은 0이고, 제작사 미팅 한 번 못 해봤고, 취업 원서도 다 떨어졌지만, 해낸게 한 개라도 있다.


쓰고나면 성취감이 클 줄 알았다. 뿌듯할 줄 알았다. 근데 허무하다. 이 허탈한 심정은 도대체 뭘까.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완성했을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미약한 정도라도 뿌듯함이 들면 좋을텐데. 이제 다음주면 2025년이 끝난다. 12월 마지막날, 그래도 덜 우울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면 됐다. 올해는 내가 첫 장편 소설을 완성한 해로 기억될 거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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