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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06. 2023

싫어하는 사람의 자료를 모아본 적 있나요.

- 나는 누군가를 싫어하면 진력이 날 정도로 싫어한다.

나에겐 약간 이상한 취미가 있다. 바로 싫어하는 사람에 관한 자료 모으기. 일부러 어떤 자료를 찾아서 모으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것들을 캡처해서 저장해 놓는다. 나중에 싸우게 되면 유리한 자료로 쓰려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닥치고 저장한다. 저장하는 것에 긍정적 효과는 전혀 없다. 그냥 그 사람이 계속 싫은 데에 보탬이 될 뿐이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것이 올라올 때마다 좋은 소식이면 짜증이 난다. 싫어하는 사람은 뭘 해도 안 됐으면 좋겠는데 SNS의 특성상 안 좋은 소리는 보통 올라오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언제나 과장된 면이 있다. 그러니 항상 행복해 보이고 나는 그 사람이 더 싫다.

나는 누군가를 싫어하면 진력이 날 정도로 싫어한다. 왜 그러냐면 일방적으로 꾹 참으며 버티는 시간이 꽤 길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도 그저 참는다. 상대방에게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빨리 알린다면 어느 정도 하다가 멈췄을 텐데 1악장부터 4악장까지의 헛소리를 가만히 지켜본다. 상대는 나의 침묵이 자기 말에 대한 동의라고 생각하는지 주제넘은 교향곡을 미친 듯이 지휘한다. 참는 것도 한두 번 하다가 그만해야 하는데 몇 년을 참은 뒤에 한 번에 폭발하므로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명명할 때 즈음엔 영원히 싫어진 상태다.


오늘도 나는 매우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누군가를 저주하며 산다. 나의 억울함에 대해 통쾌한 복수도 못 하면서 그저 아주 사소하게 미워하고 증오한다. 그렇게 싫어하는 인간 컬렉션은 몇 년 치가 쌓여 나의 메모리를 갉아먹고 있다. 그런데 재밌게도 나는 캡처한 뒤에 그 자료를 다시 안 들여다본다. 그저 캡처다. 저장하고 아~ 짜증나하고 끝이다. 매번 똑같다. 올라온 것을 캡처한 뒤, 아 정말 싫어. 짜증이 나는 인간이야 하고 끝나기 때문에 모아놓은 자료를 시간순으로 쭈욱~ 볼 생각을 전혀 못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주 우연한 계기로 그것을 하게 됐다.


미워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 것은 정말 사소한 이유였다. 싫어하는 사람 1호(내가 6년을 참았다)가 쓴 글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글이 너무 지루해서 나도 모르게 미워하다 말고 다른 짓을 했다. 나는 그 사람의 글을 3개째 내리 캡처했는데 3개가 다 그랬다. 아니, 미운건 둘째치고 왜 이렇게 글을 재미없게 써? 끝까지 읽을 수가 없네! 아니. 글을 써서 올리면서 퇴고도 안 하나? 이건 그냥 자기 일기장에 써야 하는 건데 왜 거창하게 제목을 달고 올려놨지? 아니, 제목도 이거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문장이잖아?


나는 글 쓰는 행위를 엄청 좋아한다. 이번 생애 나의 달란트는 글쓰기라고 생각할 정도다. 올해 글쓰기로 수상을 여러 개 했기에 자부심도 엄청나다. 내 재주는 일상의 이야기를 쉽게 글로 그려내는 것이라며 남편에게 자주 자랑한다. 그 정도로 나 자신에게 취해있다. 뭐, 다른 곳에 자랑할 수가 없어서 남편한테만 자랑하는 게 다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런 내가 읽기에 너무 재미없는 글을 보고 있자니 내가 왜 이런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아가며 미워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서 하나의 검은 독을 깨부술 수 있었다. 6년 동안 억울했고 그 후로 5년을 미워한 사람을 이제 지워냈다. 이젠 그 사람의 글을 캡처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이런 상태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엔 4년을 참아줬던 사람의 글을 쭈욱 살펴봤다. 패턴이 드러난다. 겉으론 자신이 착한 일을 하고 능력 있는 사람임을 공표하고 있지만 쉼 없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그것이 나였고 그다음엔 주변 사람, 그다음 주변 사람. 상대만 바뀌고 있지 계속 싸우며 산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싸운 이유는 본인의 부도덕함 때문인데 그걸 지적한 사람들이 비열하고 잔인하다며 뒤집어 씌우고 있다. 패턴도 똑같다. 자신에게 온갖 못된 짓을 한다, 저 인간은 제정신이 아니다, 상스러운 욕을 하고 다닌다며 용서 못 한다고 난리다. 정작 본인은 타인을 이년. 저년. 그놈. 그 새끼로 표현하면서 말이다. 뭐 그건 각자 자신을 방어해야 하니 그렇다 치고. 나를 사로잡은 것은 엉뚱하게도 추석에 뿌린 글이었다. 비문투성이의 문장이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화면에 둥둥 떠 있었다. 와. 나 지금 누구를 미워하고 사느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 거야? 그제야, 언어가 깨진 그 사람의 문장이 들어온다. 실수로 가끔 깨진 것이 아니라 너무 여러 번 깨져서 보기 흉하다. 이런 경우, 절대 독서량이 부족해서 귀로 들은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사람 때문에 괴로워했다 이거지. 갑자기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두 사람을 보니 나랑 안 싸워도 매번 다른 사람들이랑 싸우고 있어서 굳이 나까지 보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상대방들 다들 힘내요! 나처럼 참지 말고 화나는 걸 내뱉어요!


수많은 시간, 그들이 올린 글을 보며 나 자신을 괴롭혔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드디어 나는 괴로움의 굴레에서 해방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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