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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18. 2023

“엄마! 산타 마라기가 뭐야?”

- 당신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루돌프 사슴 코는 개! 코!
매우 반짝이는 코! 딱! 지!
만일 내가 봤다면 라! 면!
      불붙는다 했겠지! 캘! 시! 퍼!     


6세 어린이가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유치원 친구들과 만든 구호도 외친다. 역시 동요는 개사해서 부르거나 뭘 첨가해야 제맛이지. 나도 6세 어린이와 함께 괜히 외쳐본다. 그렇게 신나게 루돌프 사슴 코를 부르는데 딸이 묻는다. 엄마! 산타 마라기가 뭐야? 나는 딸의 질문을 듣자마자 빵 터졌다. 내가 어릴 때 헤맸던 부분을 딸이 똑같이 답습해서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는 유튜브가 없었다. 자막 기능도 없었고. 내 기억에 내가 캐럴을 듣는다는 것은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거나 아니면 라디오에서 나오거나 그것도 아니면 텔레비전에서 스쳐 지나가듯 나오는 거였다. 정말 정말 이건 엄청 옛날얘기 같은데 리어카에 테이프를 파는 아저씨가 틀어놓은 캐럴이거나? 요즘 아이들은 길보드 차트를 모르겠지?

노래를 귀로만 들으면 문제가 생기는데 바로 가사를 오해해서 들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 사태가 머릿속에 장기간 발생하면 산타 마라기와 같은 일이 생긴다. 나도 어릴 때 정말 궁금했다. 산타 마라기는 뭘까. 안개 낀 성탄절 날에 산타 마라기가 루돌프 코가 밝다고 했는데 마라기는 정말 뭘까! 마라기의 비밀은 우연히 루돌프 사슴 코의 가사를 읽으면서 풀렸다. 아. 마라기가 아니고 산타 말하길 이었구나. 요즘 같으면 노래 가사 검색을 바로 해서 확인할 수 있지만, 예전엔 아니었다. 딸도 귀로 들었으니 그런 일이 발생했으리라~

산타 마라기와 같은 시리즈는 우리 집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하루는 6세 어린이가 집안 여기저기에 “포캣몬나라해오세요”라고 종이에 적어서 붙여놨다. 처음엔 그걸 보고 이 방은 포캣몬 나라이니까 뭔가를 해와야 출입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 방에 포켓몬 나라를 만들어놨으니까 놀러 오라는 광고였다고 한다. “포켓몬 나라에 오세요~”를 써야 했는데 들리는 대로 쓰다 보니 엉뚱한 문장이 등장한 것이다. 올해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6세 어린이니까, 이 정도 시도했음에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수정도 해줬다.

    

왜 이 이야기를 시작했냐면 귀로만 듣는 삶을 살면 세상을 부정확하게 살기 때문이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분이 SNS에 글을 올릴 때마다 틀린 단어를 올려서 매번 놀라고 있다. 처음엔 오타가 난 줄 알았는데 꾸준히 똑같이 올려대니 의심이 확신이 됐다. 가장 경악했던 것은 청와대를 청화대라고 쓴다는 것. 귀로 듣기만 하면 청와대가 청화대로 들릴 수 있다. 청와대라고 10번 소리 내서 말해보시라. 신경 써서 발음하지 않으면 청화대로 들린다. 내가 아는 그분은 나이가 40대 후반인데도 청와대를 청화대로 아는 삶을 살고 있다니. 분명 스치듯 청와대라는 글자를 봤을 텐데 정말 스치듯 지나가 버리니 머릿속에 전혀 입력되지 않은 것이다. 에이~ 청와대를 청화대라고 부른다고 해서 삶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데 뭐 그리 예민하게 남을 탓하냐고 할 수 있다. 너는 맞춤법을 안 틀리냐고도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틀리지 않기 위해 듣고 읽고 새기는 작업을 하는 사람과 그저 듣고 아는 척하는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크다. 청와대(靑瓦臺)도 왜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됐는지 확인해 보는 과정에서 세상이 보인다.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을 갖기 이전에 경무대(景武臺)에서 시작했고 그전에 일제강점기에 조선 총독이 사용했고 그 뒤 미군정 사령관의 관저로 사용했으며 원래는 경복궁의 일원이었고 등등의 이야기 말이다. 그러니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알고자 하는 노력은 흐릿하게 보였던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습득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런 시간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할 것이고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어감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 내는 능력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온다. 책을 읽으면 이것과 저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데 하나하나 세세히 나누다 보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불필요한 갈등을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어느 정도 독서를 해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단련시켜야 한다.

      

6세 어린이는 요즘 받침 공부에 빠져있다. 많다. 싫다. 읽다. 끊다. 맑다. 앓다. 옮기다. 볶다. 닮다. 밟다. 뚫다 등 말로는 할 수 있었는데 쓰기엔 알쏭달쏭했던 단어들을 배우고 있다. 연필로 단어를 쓰는 6세 어린이를 보다 보면 아이의 시선이 여물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귀로 들었을 땐 이해할 수 없었던 ‘산타 마라기’가 눈으로 보고 읽고 쓰며 ‘산타 말하길’로 변하는 과정처럼 말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세상에서 왜라고 물으면 구체적으로 답변해 주는 어른이 없었다. 그러면 나는 많이 읽는 것이 강요처럼 느껴져서 괜히 책을 들기 싫어졌다. 조금 커서는 다독을 했다. 그냥 읽었다. 그러다 보니 왜 읽는지에 관한 나의 관점이 없었던 것 같다. 산타 마라기 덕분에 왜 읽어야 하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성장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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