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사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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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끈이 뚝 끊어졌다. 가방을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토트백이 거추장스러워서 급하게 샀을 것이다. 손에 노트북 가방을 들고 토트백도 들고 가방에 넣어지지 않는 책까지 들고 다녔으니 얼마나 번잡스러웠겠는가. 그래서 새롭게 백 팩을 장만했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샀던 5만 원짜리 검은 백 팩. 내 딴에는 가방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나의 백 팩은 나의 지갑과 서류, 단행본과 물티슈, 가제 손수건, 기저귀 등을 담아주는 잡탕 같은 역할을 잘 수행해줬다. 나의 가방은 아이 엄마이자 직장인이자 대학원생이었던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듯 보였다. 그 삶이 고단했을까, 뚝 끊어져 버린 끈을 보며 이별을 깊이 아쉬워했다. 십 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무도 너덜너덜해져서 소생할 수 없어 보였던 검은 백팩. 가방 병원에 간들 이 아이를 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새로운 백팩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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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새로 바꾸게 된다면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좋은 브랜드의 가방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아주 작은 에피소드에서 시작된다. 가끔 만나서 밥을 먹는 친구들과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에 대한 칭찬이 시작됐다. 그때 가장 인상적인 칭찬이 등장했으니 내가 허영이 없어서 옷을 사도 빈티지 샵 등에서 산다는 소리.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헉했다. 사실, 나는 브랜드를 잘 모른다. 그래서 못 사고 있던 것이다. 어떤 브랜드의 옷을 사야 나의 경제적 상황에 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돈을 모아서 좋은 브랜드의 옷을 사는 것이 나에게 어떠한 이점을 주는지도 전혀 몰라서 안 샀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몰라서 못 산 것이지 수수하게 살기 위해 일부러 안 산 것이 아니다.      

그날의 충격은 내가 브랜드 옷을 기웃거리게 인도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나는 좋은 브랜드의 옷을 사지 않았다. 가끔 연예인이 예쁜 옷을 입어서 그 옷을 나도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이 셋을 낳은 뒤에 달라진 나의 체형 때문에 번번이 포기했다. 살 빼면 입어보기로 한 약속은 몇 년째 지켜지지 않았고 임부복을 입는 시간도 길었으니 굳이 좋은 옷을 살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옷은 펑퍼짐해서 내가 숨을 쉬기 좋은 옷이다.     

나 자신에게 브랜드 옷을 사주지 않은 나였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달라진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좋은 브랜드 옷을 사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시장 안에 있던 옷가게에서 옷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시장 안에 있던 옷가게에는 싸고 예쁜 옷들이 많았기 때문에 계절마다 사서 입고 버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것이 습관이 돼서 어른이 돼서도 좋은 옷 하나 못 사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아이들 옷만큼은 좋은 것으로 사주기 시작했다. 나중에 엄마처럼 브랜드 옷 하나 못 사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좋은 옷보단 편한 옷을 선호하는 듯 보이고 브랜드가 뭔지 전혀 관심이 없지만 말이다.     

가방끈이 끊어진 뒤, 가방 하나만큼은 좋은 것으로 들어보자고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브랜드를 잘 아는 친구가 몇몇 가방을 추천해 줬고 이것저것 둘러보았다. 나는 가방에 5만 원 이상 투자하지 않는데 친구가 추천해 준 가방은 50만 원 정도는 투자해야 예쁜 것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은 가방을 고른 것 같다. 처음엔 50만 원도 과해 보였는데 계속 찾다 보니 어느새 300만 원짜리 가방이 사고 싶어진 나를 발견했다. 아, 내가 그동안 브랜드 가방을 안 샀던 이유는 정말로 몰라서였구나. 사람은 좋은 것을 보면 누구나 사고 싶어 지는구나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가방을 못 샀다. 여행을 갔다가 지갑과 물티슈를 넣을 가방이 없어서 아들 가방을 빌려서 가지고 다니거나 운동할 때 핸드폰을 넣고 뛸 가방이 없어서 딸의 핸드폰 가방을 빌리고 있지만 여전히 못 샀다. 내가 가방을 못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가방 하나 사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다니. 나는 무엇과 이별하기 싫어서 선택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