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펜팔의 추억
1999년도의 일이다. 미스터케이에 심취해 있던 감성뿜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잡지에 나온 주소로 용감하게 편지를 보냈다. 지금 같으면 집 주소와 이름, 나이 등을 잡지에 공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 시절엔 그것이 가능했다.
잡지를 부-욱 찢어 콩콩이 편지지를 정성스레 오린 후,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이마가 넓어 좋았던 콩콩이 캐릭터와 함께 나의 손길이 우체통에 넣어졌고 며칠이 지나 답신이 왔다. 그렇게 나는 생애 최초로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펜팔을 시작하게 되었다.
편지는 경기도와 경상남도를 오가며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기록해서 토로했는지 기억나질 않지만, 무척이나 사소한 일이었던 것 같다. 수학여행 때 찍은 사진을 인화해 편지와 함께 넣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펜팔의 금기를 어기는 것만 같달까.
우리의 펜팔이 왜 끊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어렴풋하게 아른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짙은 연둣빛의 편지지를 받고 함박웃음을 지었던 나의 모습이다. 방송실 한편에서 편지를 열어 여러 번 읽었던 기억도, 그곳에서 답장을 썼던 기억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왔던 냉기와 함께 각인돼 있다. 우리의 이별은 아무래도 겨울이었던 것 같다. 편지의 마지막이 왜 이렇게 기억 안 날까. 희한하네.
아니다. 기억이 났다. 우리가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게 된 이유는 전화 때문이었다. 한참을 편지로 이야기하던 우리가 어느 날 전화 통화를 하게 됐다. 그렇게 몇 차례 목소리가 오간 후, 더 이상 편지를 쓸 필요가 없어져서 펜팔이 끝났다. 맙소사. 전화가 참 나빴네!
그 당시에 통화라는 것은 집전화를 써야 했는데 부모님이 옆에 계시다 보니 그들의 외출을 기회삼아 통화를 했었다. 부모님이 집에 없는 시간을 편지로 써서 정보를 교환한 후, 디데이를 잡았다. 나는 집에서 전화를 기다렸고 펜팔을 했던 친구는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매우 번거롭게 말이다. 전화를 시작하자 편지는 쓰지 않았고 매번 부모님 눈치를 보며 겨우 이어졌으니 훗날 지쳐서 연락이 끊겼던 것이다. 의사소통 수단이 변해서 인연이 끊겼다니, 너무 슬프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핸드폰이 생겼다. 중학교 배정 때 뿔뿔이 흩어졌던 친구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내 기억엔 버디버디만 열심히 했던 추억이 남아있다. 도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떠든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오묘한 문자의 조합으로 아이디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내 필명으로 꾸며본다면 “┖☆『ⓙaeⓗa』★┓”이런 느낌이었다. 맙소사. 왜 저랬지? 저땐 저게 최선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놀랍다.
버디버디에 심취했던 날들이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싸이월드와 함께였다. 종이에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담았던 초등학교를 지나 친구들과 짧은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교환했던 중학교를 거쳐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전시해서 고객을 유치해야 하는 미니홈페이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생의 인간관계라는 것에 한계가 있어서 방문자 숫자는 크게 늘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된 후로도 싸이월드의 시대는 계속됐는데 학교를 2년 휴학하고 돌아가 보니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의 시대가 열려있었다. 누군가의 홈페이지에 방문하지 않아도 새로 올라온 사진과 글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 온종일 스크롤을 내리고 있거나 멍청하리만큼 카카오톡만 들여다보고 있는 짓을 했다. 방학 중에 친구들과 만났는데도 친구를 앞에 놓고는 스마트폰만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함께 있는데도 모두가 고립된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지금도 그러는 것 같지만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속상해졌다. 의사소통 수단의 발전으로 아주 손쉽게 상대방과 이어지는 바람에 서로가 더 많이 때리고 할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생각해서 안 해도 될 말은 소멸시켜도 되는데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지다 보니 생각나는 대로 상대에게 쏟아붓는 시대가 도래했다. 보고 싶어, 사랑해와 같은 말보다 잿빛의 언어가 넘치는 시대가 됐다. 그렇게 글자가 마음을 베고 간 날이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그런 날이면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다 없었던 시절이 좋았다고,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 입은 악당이 나의 행복을 빼앗아 간 것 같다고 투덜댔다.
내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긴 호흡의 글로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우편함에 꽂혀있던 편지를 반갑게 꺼냈던, 일주일에 한 통 정도 편지가 오가면 빠르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득 그 친구가 궁금하다. 경상남도 진주에 살았던 친구야, 잘 지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