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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May 29. 2018

우리 가족은 주말가족입니다

한 살 때부터 나는 엄마와 둘이 살았다. 내 기억 속에 아빠는 유치원에 다닐 때 크리스마스에 왔던 사람, 초등학교에 다닐 때 여름휴가를 한 번 같이 보낸 사람, 초등학교 졸업식에 등장한 사람이었다. 만날 때마다 너무 낯설어서 ‘저 사람이 내 아빠라고?’하며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아빠가 자기소개시간에서 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아빠로 둔갑했다.      


“우리 가족은 주말가족입니다. 아빠가 춘천에서 일하고 계셔서 주말마다 볼 수 있습니다.”     


새 학기마다 하는 자기소개를 대비해 엄마는 나에게 열심히 발표 연습을 시켰다. 절대 기죽으면 안 된다며 나에게 새하얀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 입히고 머리를 동그랗게 올려줬다. 잔머리가 나오지 않게 스프레이를 뿌리는 순간에도 엄마는 자기소개 연습을 시켰다.  

    

“엄마가 뭐라고 말하라 그랬지?”

“우리 가족은 주말가족입니다. 아빠가 춘천에서 일하고 계셔서 주말마다 만나요”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면 안 된다며 연습시킨 저 말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때까지 나의 자기소개 단골멘트가 됐다. 처음엔 아빠 없는 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나중엔 조건반사처럼 자기소개 시간이 되면 줄줄줄 흘러나왔다. 6살 때부터 했던 자기소개가 16살까지 이어지니 어느 날부터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망각한 채 ‘나는 아빠가 있는 매우 행복한 아이다.’라는 표정으로 연기를 한 것 같다.     


나의 연극이 종료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집은 한 번도 친구들에게 문을 열어준 일이 없었다. 아빠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 안됐기 때문이다. 그 금단의 문이 열린 것은 꼭 가지고 나와야했던 물건을 두고 나와서 친구들과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향했을 때였다. 현관문을 열고 내 방에서 물건을 들고 나오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는데 내 친구는 뭔가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 친구가 뭔가 눈치 챘다는 것도 나는 전혀 몰랐는데 며칠 뒤 친구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아이가 순식간에 내 마음의 문을 부수어 버리는 문장을 던졌다.     


“너, 아빠랑 같이 안 살지?”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친구의 말에 대답하기까지 2초 정도가 걸렸는데 그 찰나의 순간 내 마음 속 갈등은 엄청 났다. 나는 오늘부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되거나 어릴 때부터 해오던 거짓말을 계속 하는 아이로 남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응, 아빠랑 같이 안살아, 우리 집은 어릴 때 이혼했거든. 근데 어떻게 알았어?”

“우리 집도 엄마랑 아빠가 이혼했거든. 나랑 내 동생도 엄마랑 사는데 어느 날부터 아빠가 없는 집은 아빠 없는 느낌이 나더라고. 희한하지?”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매우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 자기소개 시간에 주말가족이라서 아빠랑 자주 못 만난다고 한 게 나는 엄청 인상적이었는데? 진짜 행복하게 말해서 엄청 부러웠는데?”

“그건 엄마가 시킨 거야. 아빠 없으면 무시당할까봐”     


그렇게 나의 연극은 부분적으로 종료됐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에서 얼마나 곤란한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날의 나의 고백과 내 친구의 고백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셋의 비밀로 남았다.      


대학을 가고 나서부터 나는 거짓말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했다. 성인이 돼서까지 거짓말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학자금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 문을 두드렸을 때 아빠가 친권자여서 아빠가 직접 은행에 오지 않으면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번엔 타 지점에서 사인하고 이쪽 은행으로 팩스 보내줘서 통과됐는데 왜 안 되냐고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무시를 당했다. 그 날 그 은행원은 학자금 대출 거부 신고를 한 내 전화덕분에 이를 부득부득 갈며 학자금 대출 신청을 완료해줬다.


한 번은 남자친구와 만나고 있는데 친구 어머니가 찾아와 나에게 다짜고짜 따졌다.      

“너 때문에 내 아들이 공부를 안 하잖아. 솔직히 너는 엄마랑 둘이 살았었고 지금은 새아버지랑 살잖아. 집안환경이 많이 기우는데 내가 뭘 믿고 결혼을 허락하겠니?”, “저는 얘랑 결혼할 생각이 아직 없는데요.”     


거짓말로부터 해방되면 정말 편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편견과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그것의 크기가 그렇게 클 줄 모르고 덤볐던 내가 잘못된 것인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잘못했다고 매번 혼내는 사회가 잘못된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 괴로움은 어이없게도 엄마의 재혼으로 인해 해결됐다. 없던 아빠가 생기자 세상은 나에게 아빠가 없다고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나 재혼 가정이라는 새로운 편견이 새롭게 나를 덮쳐왔다.     

 

추석 날 아이와 놀이터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놀고 있는데 동네 아이가 나에게 뛰어와서 같이 놀아도 되냐고 물었다. 그래도 좋다 했더니 한 참을 놀다가 저 멀리에 있는 아빠를 한 번 힐끗보며 내게 말했다.      


“아줌마, 저는 엄마가 없어요.”

“그래? 아줌마는 아빠가 없었어”     


나는 엄마가 없는 아이인데 저 아이와 놀아도 되겠냐 허락을 맡는 그 아이의 심정이 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어린아이에게 그동안 사회가 무슨 결례를 저질렀기에 아이들끼리 노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하는지 한숨이 나왔다. 엄마가 없고 아빠가 없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저 부모 사이에 발생한 사건일 뿐이다. 아이와 말했던 것처럼, 아빠나 엄마가 없다는 것이 그냥 별거 아니라는 듯이, 안부처럼 스쳐지나가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 <좋은생각> 창간 26주년 기념, 제 13회 '생활문예대상'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공모전에 제출한 요약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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